“우울증 극복을 위해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는데, 이젠 일하는 게 정말 즐겁습니다.”

지난 4일 방문한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의 한 GS25 편의점. 이곳에서 1년째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는 나모(67)씨는 전업주부 생활을 하다 서울 구로구에서 운영하는 노인 일자리 전담기관 구로시니어클럽을 통해 편의점 일자리를 구했다.

나씨는 “사람들과 대화도 나누고 돈도 벌 수 있어 매일 왕복 1시간이 넘는 출근길을 마다하지 않는다”며 “일하는 것이 즐겁다. 앞으로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일을 할 생각이다”고 말했다. 구로시니어클럽 관계자는 “아무래도 어르신들이 1020 세대에 비해 경험이 풍부하다 보니 돌발상황이 생겨도 여유롭게 대처하신다”고 말했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는 50대 박모씨는 최근 아르바이트 직원으로 60대 최모씨를 채용했다. 아르바이트 채용 공고에 ‘중장년 우대’ 조건을 내건 박씨는 “시니어분들은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하는 경우가 많아 함께 일하는 ‘동료’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직장에서 은퇴한 뒤 일거리를 찾다 아르바이트를 선택한 최씨는 “배달업같이 체력적으로 부담되는 일은 하지 못하지만 편의점처럼 꼼꼼함과 성실함이 필요한 업종은 젊은 친구들보다 잘 해낼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MZ세대가 몰리던 편의점과 패스트푸드점에 50대 이상 아르바이트생이 늘고 있다.

지난해 은평 어르신일자리 박람회를 찾은 구직자들이 이력서를 접수하기 위해 줄지어 대기하고 있다./뉴스1

5일 통계청 직업·연령별 취업자 통계에 따르면 전국 서비스 종사자 취업자 수는 2019년 상반기 309만1000명에서 지난해 상반기 318만7000명으로 3.1% 늘었다. 연령별로 보면 15~29세는 63만8000명에서 61만명으로 감소한 반면, 50대 이상은 139만1000명에서 153만3000명으로 증가했다.

1020세대가 서비스직을 떠나자 빈자리를 시니어층이 채우고 있다. 일자리 알선 플랫폼 ‘알바천국’이 개발한 중장년층 타깃 애플리케이션(앱) ‘알바천국 중장년’은 현재까지 50만건 이상의 다운로드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달 15일 오전 서울 마포구청에서 열린 노인 일자리 박람회에서 한 시민이 상담을 받고 있다./연합뉴스

◇ 맥도날드·스타벅스·GS25 등 중장년층 ‘러브콜’... “일자리 대이동 시작”

기업들도 앞다퉈 중장년층 채용에 나서고 있다. 맥도날드는 만 55세 이상 구직자를 대상으로 ‘시니어 크루’를 운영하고 있다. 시니어크루는 2019년 353명에서 현재 567명까지 늘어났다. GS25는 중장년층 아르바이트 직원만 채용하는 ‘시니어 스토어’ 35개점을 전국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스타벅스는 2019년 보건복지부, 한국시니어클럽협회와 함께 협약을 맺고 전국 500여곳의 시니어 카페를 위한 60세 이상의 시니어 바리스타 전문 교육장을 운영했다. 스타벅스 교육장을 통해 교육을 이수한 시니어 바리스타는 현재까지 830여명이다.

한국노동연구원장 출신인 최영기 한림대 경영학부 객원교수는 “최근 베이비붐 세대가 본격적으로 은퇴를 시작했기에 이들이 노동시장으로 쏟아지면서 아르바이트를 찾는 경우가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은퇴 후 아르바이트를 거친 뒤 완전한 은퇴로 가는 것이 일종의 정형화된 고용 패턴으로 굳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과거 시니어 업종이라고 불리던 자영업이나 전통시장 등에 디지털로 무장한 젊은 층이 진출하고 있다”며 “이곳에서 밀려난 중장년층이 청년층의 전용 업종이라고 불리던 편의점·패스트푸드점 등으로 빠지고 있다. 시니어마켓과 MZ세대 마켓의 대이동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