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 테라·루나 폭락 사태의 핵심 인물인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가 검찰 수사망을 피해 싱가포르, 아랍에미리트를 거쳐 동유럽 세르비아로 이동해 주소지 등록까지 마쳤다.

법조계에서는 권 대표가 한국 수사기관과 공조가 어려우면서 도피자금으로 쓸 가상자산을 입출금하기 용이한 국가를 택했다고 본다. 검찰이 권 대표 소유로 추정되는 가상자산을 1000억원 가까이 동결했다고 밝혔지만 그의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대로 권 대표가 해외를 떠돈다면 검찰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기 어려울 가능성이 높고, 신병 확보가 되더라도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 등 범죄 입증이 어려워 중형 선고까지 상당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권도형 테라폼랩스 최고경영자(CEO) /뉴스1

‘달의 몰락’이라고도 불리는 테라·루나 폭락 사태는 지난 5월 테라와 루나 가격이 99.99%가량 떨어지며 발생했다. 미국 달러화와 일대일로 가치가 연동돼 ‘스테이블 코인’이라고 평가받던 루나는 한때 시가총액 기준 세계 10위권 안에 들며 안정성을 인정받은 코인이었다. 그러나 갑자기 대규모 매도가 이어지면서 국내외 투자자들이 50조원대 피해를 입었다.

검찰은 테라와 루나가 자본시장법상 ‘투자계약증권’에 해당해 ‘증권성’을 가진다고 보고, 발행사인 테라폼랩스 권도형 대표에 대해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 등을 적용해 수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당초 ‘때가 되면 수사에 협조하겠다’는 권 대표는 해외 도피를 이어가면서 국내에 입국조차 하지 않고 있다. 이에 검찰은 그의 행적을 추적하며 신병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 수사공조 안되고 현금확보 용이한 세르비아... 검찰 추적 어려울 듯

법조계 일각에서는 권 대표가 국제 수사 공조가 상대적으로 어려운 국가를 택해 도피를 이어가고 있다고 본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검찰 관계자는 “권도형 측이 세르비아가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의 수사 공조가 빠르지 않은 국가인 점을 염두에 두고 도피를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점을 악용해 체류를 장기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① 세르비아, 韓과 범죄인 인도 전례 無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도 “신병 확보를 위해선 세르비아에서 범죄인 인도가 이뤄져야 하는데, 범죄인 인도는 상호호혜적 성격을 띤다”며 “상대 국가에서 범죄인 인도에 적극 나서려면 우리 쪽에서도 세르비아 범죄인을 돌려보내야 하는데, 아직 세르비아는 전례가 없는 국가”라고 지적했다.

승 연구위원은 이어 “이 같은 유인이 없을 경우 범죄인 인도를 위해 모든 공권력을 집중해야 하는데, 얼마 전 테라폼랩스 관계자들에 대한 영장 기각만 보더라도 국가 차원에서 신병 확보와 범죄 입증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다고 보긴 어렵다”며 “범죄인 인도가 짧은 시일 내에 이뤄지긴 힘들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② 권도형 도피자산 ‘가상화폐’ 입출금 용이

도피 자금을 지키기 유리하다는 점 역시 권 대표가 세르비아를 택한 이유로 보인다. 검찰 출신 이홍열 법무법인PK 변호사는 “세르비아는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지난해 가상화폐 거래와 채굴을 합법화하는 법률을 제정하는 등 가상화폐 투자가 활발한 국가”라며 “수도 베오그라드 등에 가상화폐를 현금화할수 있는 ATM이 있어 도피자금을 보호하기 위한 권도형 측의 선택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권도형의 체류가 장기화될 경우 검찰이 동결하지 못한 가상화폐 등 범죄 수익을 세르비아에 있는 블록체인 벤처 회사 등에 재투자하는 방식으로 자금 세탁도 충분히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③ 檢, 가상자산 950억 동결했지만 추가 동결 어려워

권 대표의 가상자산에 대한 추가적인 동결도 어려워 도피 자금을 빼앗을 수도 없는 상황이다. 블록체인상 개인 지갑을 이용할 경우 명의 추적이 어렵고, 해외 거래소 계정을 이용하면 해당 국가에서 범죄 혐의가 있어야 동결을 요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태언 법무법인 린 변호사는 “블록체인 지갑의 경우 실명이 아니기 때문에 추적이 어렵고, 블록체인 시스템상 공인인증서 같은 ‘개인키’를 모르므로 동결이 불가능한 구조”라면서 “해외 계정도 그 나라에서 혐의점이나 영장이 없으면 동결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앞서 검찰은 지난 9월 가상자산 거래소 오케이엑스와 쿠코인의 협조로 권 대표가 은닉을 시도한 것으로 추정되는 가상자산 950억원을 동결한 바 있다.

◇신병 확보되더라도…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 입증 ‘첩첩산중’

검찰이 적용한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 입증도 관건이다. 앞서 검찰은 테라와 루나를 ‘투자계약증권’으로 보고,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권 대표에 대한 체포영장을 청구했다. 투자계약증권이란 어떤 사업에 여러 사람이 함께 투자하고, 그에 따른 수익을 분배받기로 약속한 증권을 의미한다.

테라폼랩스 공동창립자인 신현성 전 차이코퍼레이션 총괄대표 등 핵심인력 8명에 대해서도 검찰은 같은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그러나 지난 3일 법원이 이들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 적용이 가능할지에 법조계 내부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다. 현재까지 법원에서 가상자산 관련 사건에 자본시장법이 적용된 선례는 없다.

법조계에 일각에서는 ‘수익 보장’을 언급했다는 점에서 테라·루나에 ‘증권성’이 있다고 보고 자본시장법 위반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한상준 법무법인 대건 변호사는 “테라가 코인을 예치하면 19%가량의 수익을 보장해준다는 약정이 있었다는 점에서 ‘증권성’이 가미됐다고 볼 순 있지만, 선례가 없다 보니 이를 재판부에서 명확하게 ‘증권성’이라고 규정하긴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증권성’이 인정될 경우 ‘국가 배상’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구태언 변호사는 “테라와 루나는 금융위 FIU(금융정보분석원) 신고를 통해 운영되는 거래소에 상장이 되고 있었는데, 자본시장법 위반이 적용될 경우 불법 증권 거래를 금융위가 방치했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며 “그렇다면 관련 공무원들과 금융위 차원에서도 책임이 발생해 국가 배상이 이뤄져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전문성을 가진 주무 부처의 판단을 뒤집고 검찰이 ‘증권성’을 입증할 수 있을지, 테라와 루나와 다른 토큰들은 어떤 점에서 차이가 있는지 등을 검찰이 명백하게 입증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