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9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가 엿새째 벌이고 있는 총파업과 관련해 시멘트 분야 운송거부자에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했다. 민노총은 “윤석열 대통령의 그릇된 노동관이 상황을 악화시키고 파국을 가져온다”며 업무개시명령 철회를 요구하며 반발했다.

29일 오전 인천시 연수구 인천 신항 선광신컨테이너터미널 앞에서 화물연대 인천지역본부 간부들이 삭발하며 파업 투쟁 의지를 다지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노총 “서울교통공사 노조·철도노조 투쟁 예봉 꺾으려는 것”

민노총은 이날 정부가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하자 성명을 내고 정부를 향해 “방귀 뀐 놈이 성을 내는 격”이라고 비난했다. 이어 “취임 후 7개월 동안 윤석열 정부의 문제해결 방식은 사안이 격화되면 발등의 불을 끄기 위한 조삼모사식 임기응변”이라며 “‘경제위기, 시민불편’을 앞세워 강경대응으로 마무리하는 식”이라고 주장했다.

민노총은 “업무개시명령은 정부가 밝힌 논리와도 배치된다”며 “정부 스스로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는 특수고용노동자, 개인사업자의 영업거부에 정부가 무슨 권한으로 ‘강제 노역’에 해당되는 영업개시명령을 내리는가”라고 했다. 정부는 화물차주가 근로자가 아닌 자영업자여서 집단행동을 노동법이 보장하는 ‘파업’으로 보지 않고, ‘집단운송거부’라는 표현을 쓴다.

업무개시명령이 위헌적이라는 주장도 했다. 민노총은 “업무개시명령이 발동되기 위한 요건인 ‘정당한 사유’ ‘커다란 지장’ ‘국가경제에 매우 심각한 위기를 초래할 우려’ 등은 지나치게 추상적”이라며 “이런 이유로 2004년 도입된 이래 단 한번도 적용이 된 적이 없다’고 했다.

서울 지하철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 노조는 오는 30일, 전국철도노조는 다음달 2일 전면 파업에 돌입한다. 두 노조는 지난 24일부터 이미 ‘준법투쟁’(태업)을 벌이고 있다. 민노총은 “이번 업무개시명령은 화물연대 투쟁은 물론, 서울교통공사 노조와 철도노조 등 투쟁의 예봉을 꺾기 위한 나쁜 의도를 가진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조합원들이 29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는 위헌적 업무개시명령이 아니라 국민 안전 위한 대화에 지금 당장 나서라'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공공운수노조·화물연대, 업무개시명령을 ‘계엄령’에 비유

공공운수노조는 이날 오전 용산 대통령실 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업무개시명령 발동과 관련해 “’화물연대와 대화는 하겠지만 협상은 없다’ 같은 말장난으로는 사태를 해결할 수 없다”며 “반헌법적이고 위법한 업무개시명령은 더더욱 아니다”라고 했다.

공공운수노조는 성명에서 “업무개시명령은 사상 초유의 노동 탄압이자 헌법 유린으로 기록될 것”이라며 “노동자에게 계엄령과 같은 업무개시명령은 행정권력을 앞세운 독재의 문을 연 권력”이라고 비난했다. 화물연대도 성명에서 “윤석열 정부는 화물 노동자에게 계엄령을 선포했다”며 “생계를 볼모로 목줄을 쥐고, 화물노동자의 기본권을 제한하겠다는 결정을 오늘 내렸다”고 주장했다.

일부 노조 간부는 삭발 투쟁을 하기도 했다. 화물연대 인천지역본부 노조원 100여명은 이날 인천 연수구 인천신항 선광신컨테이너터미널 양쪽 보행로에서 안전운임제 법제화와 일몰제 폐지를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김근영 화물연대 인천지역본부장을 비롯한 노조 간부 4명은 정부가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한 것을 이유로 삭발했다.

철도·지하철 노조의 준법투쟁이 이어지고 있는 28일 오후 서울역 대합실에 철도노조 태업으로 인한 운행 지연 안내문이 붙어 있다./연합뉴스

◇원희룡 “업무개시명령서 전달 회피하면 가중처벌”

윤 대통령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정부는 오늘 우리 민생과 국가 경제에 초래될 더 심각한 위기를 막기 위해 부득이 시멘트 분야의 운송 거부자에 대해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한다”고 밝혔다.

이어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국민의 삶과 국가 경제를 볼모로 삼는 것은 어떠한 명분도 정당성도 없다”며 “특히 다른 운송 차량의 진·출입을 막고 운송 거부에 동참하지 않는 동료에게 쇠구슬을 쏴서 공격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범죄 행위”라고 지적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무회의에 이어 정부서울청사에서 진행된 관계부처 합동 브리핑에서 “업무개시명령 발동에 따라 시멘트 분야 운송사업자와 운수종사자는 운송거부를 철회하고 즉시 복귀해야 한다”며 “복귀 의무를 불이행하는 경우에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히 대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업무개시)명령서를 전달받지 않고 회피하는 경우 형사처벌을 가중처벌할 방침”이라고 했다. 정당한 사유 없이 운송 업무에 복귀하지 않으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