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가폭법)을 위반해 기소된 사례가 1년 사이 2배 가까이 증가하면서 100건을 넘어선 것으로 파악됐다. 가폭법은 가정폭력을 한 차례 이상 저지른 피의자가 접근금지 명령 등 피해자 보호조치를 어기고 피해자에게 위협을 가할 경우 적용되는 혐의다.

가정폭력 특성상 가해자와 피해자 분리가 어려운 만큼 경찰이 보복·재범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해 구속영장을 적극 신청해도 법원이 절반 가까이 기각하면서 이런 상황을 사실상 방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러스트=손민균

26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실이 경찰청과 대법원 등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작년 가폭법을 위반해 기소된 피의자는 104명으로 전년(57명) 대비 2배 가까이 늘었다. 올해 상반기(1~6월)에 기소된 피의자도 85명에 달했다.

가폭법 위반 피의자 수가 세자릿수를 돌파한 것은 최근 5년 내 처음 있는 일이다. 2017년 42명이었던 피의자는 이듬해 51건, 2019년 64건으로 매년 상승 곡선을 그렸다.

반면 작년에 접수된 가정폭력 관련 112신고는 21만8680건으로 전년(22만1824건) 대비 14% 감소했다. 가정폭력 사건 자체는 줄었지만, 피해자 보호조치를 위반한 사례는 오히려 늘어난 셈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가정폭력 피의자에 대한 구속영장 절반이 기각되고 있는 상황과 연관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현재 경찰은 가정폭력이 보복이나 재범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적극적인 구속영장 신청에 나서고 있지만, 법원이 영장을 번번이 기각하면서 재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경찰은 작년 한 해 동안 가정폭력 피의자에 대한 구속영장을 750건 신청했으나, 이 중 받아들여진 것은 410건에 불과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구속영장이 기각되면 그 자체로도 죄가 가벼운 줄 알고 가폭법 위반을 하는 사람도 존재한다”며 “판사들 같은 경우 현장 상황을 잘 모르다보니 경찰과 판사가 현장 상황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가정폭력 사건을 직접 수사하는 경찰 내부에서도 법원이 보복·재범 가능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해 구속영장 발부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일선 경찰서의 한 경찰관은 “임시 조치 위반 후에 구속을 할 경우 최근 벌어진 스토킹 사건처럼 피의자가 법률 위반을 감수하고 보복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며 “사전에 법원이 영장 심사를 할 때 피해자 안전 측면에서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지난 6월 한국경찰학회보에 실린 ‘피해자 신변보호 제도 개선에 대한 경찰관의 인식 연구’에 따르면 현직 경찰관 3171명 중 83.6%(2652명)는 피해자 및 중요 참고인 등에 대한 위해 우려를 독자적 구속사유로 입법화하는 게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현재 피의자를 구속할 수 있는 사유는 ▲주거부정 ▲증거인멸 우려 ▲도주 우려 등 3가지다. 범죄의 중대성이나 재범의 위험성, 보복범죄 가능성은 고려사항으로만 규정돼 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가정폭력이나 스토킹 범죄 같은 경우 가해자·피해자 분리가 어렵기 때문에 재범 가능성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는데, 여전히 단순히 가정의 평화 또는 남녀 간의 일로 보는 인식이 남아있다”며 “외국처럼 가정 보호보다는 피해자 보호를 위해 영장 발부 등 강력한 분리 조치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용혜인 의원은 “가정폭력을 비롯한 친밀한 관계에서 벌어지는 여성폭력의 경우 피의자를 제대로 분리해 재범 혹은 추가범행을 막는 것 매우 중요하다”며 “수사 및 재판기관이 여성폭력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을 갖추고 법을 집행해야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