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생 정모(26)씨는 매일 밤 유튜브 요약본을 시청하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를 세 개나 구독 중이지만, 콘텐츠를 모두 보기엔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정씨는 “지난 월요일에는 넷플릭스 시리즈 ‘수리남’을 50분짜리 유튜브 요약본으로 시청했다”며 “요즘엔 OTT에서 재밌어 보이는 콘텐츠의 제목을 기억했다가 유튜브로 시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튜브에 올라온 콘텐츠 요약본./유튜브 캡처

보고 싶은 영화와 드라마를 유튜브 요약본으로 시청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적게는 10분, 길게는 두 시간 만에 화제작을 결말까지 압축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OTT 구독을 해지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직장인 노모(32)씨는 OTT 두 개를 구독 중이지만 이용하지 않은지 반년이 넘었다. 유튜브에 올라오는 ‘결말 포함 요약본’으로 발길을 돌렸기 때문이다. 노씨는 “OTT별로 콘텐츠가 쏟아지는데 재밌을지도 모르고 분량도 길어 어느 순간 요약본만 보게 됐다”며 “요약본만 봐도 어디 가서 대화를 하는데 무리가 없어 OTT를 해지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OTT가 활성화되면서 콘텐츠양이 방대해진 점이 요약본을 찾는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본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는 “OTT가 다양해지고 경쟁도 치열해지면서 콘텐츠양이 급증했다”며 “정해진 시간에 모든 콘텐츠를 소비할 수 없는 시청자들이 ‘정주행’을 포기하고 ‘요약 주행’을 택하고 있다”고 말했다.

황 평론가는 이어 “요약본을 보는 문화가 정착되다 보니 콘텐츠 전체를 향유하기보다는 핵심만 주입하는 방식으로 시청행태도 변화하고 있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요약본의 인기에 콘텐츠 제작사들은 유튜버들과의 협업을 늘리고 있다. 올해 큰 화제를 모은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제작사는 방영 시점에 맞춰 유튜버와 협업에 나섰다. 해당 요약본 영상은 누적 조회수 1700만회를 넘기며 우영우의 인지도에 크게 기여했다. 지난달 21일 개봉한 영화 ‘늑대사냥’의 제작사도 영화 리뷰 유튜버와의 협업을 통해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

박기수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저작권 문제로 적대 관계였던 콘텐츠 제작사와 유튜버의 관계가 점차 공생 관계로 변모하고 있다”면서 “원칙적으로 어떤 영상이든 원작을 가져다 쓰는 건 저작권 위반이지만 요즘엔 제작사 측에서도 득이 되는 부분이 있어 어느 정도 묵인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다만 원작을 훼손할 경우 저작권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박 교수는 “일부 요약본 중에서는 자의적인 평가가 개입되거나 원작이 지나치게 훼손된 영상도 있다”면서 “이런 영상에 대해서는 제작사가 여전히 법적 책임을 묻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