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제작진이 만든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수리남’이 인기를 끌고 있다. K-드라마의 힘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한편에는 웃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드라마에서 ‘마약국가’로 묘사된 수리남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들이다.

남아메리카의 작은 나라인 수리남은 드라마가 공개되자 법적 대응을 예고하고 나섰다. 드라마 속 수리남의 이미지가 국가 정체성을 왜곡한다는 것이다. 논란이 커지자 수리남을 담당하고 있는 주베네수엘라 한국대사관도 수리남에 거주하는 교민들에게 “조심하라”는 당부를 남겼다.

정말 수리남은 위험한 나라일까. 조선비즈는 수리남의 정확한 상황을 들어보기 위해 이재원(74) 주수리남 한인회장을 지난 18일 국제전화로 인터뷰했다. 50년 간 수리남에서 수산업에 종사한 이 회장은 “드라마에 너무 허구가 많이 들어갔다”고 지적했다. 드라마에서 묘사된 것과 달리 수리남은 남아메리카에서도 치안이 좋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수리남 교민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혐한’ 정서였다. 인구가 58만~59만명 정도인 작은 수리남에서 드라마 때문에 한국이 수리남을 비하했다는 소문이 퍼질까 우려된다는 게 이들의 걱정이다. 이 회장은 수리남 국민 사이에서 혐한 정서가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수리남의 유력 일간지에 ‘드라마에 오해가 있다’는 취지의 기사를 올리는 등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수리남 참전용사회장(가운데)과 수리남에 있는 한국전쟁 참전기념비 앞에서 사진 촬영한 이재원(74) 주수리남 한인회장(오른쪽)./주수리남 한인회 제공

현재 수리남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은 50명 정도다. 과거에는 수리남에 설립된 한인 선박회사가 19개에 교민 수가 800여명에 달했지만, 지금은 거의 한국으로 돌아간 상태다. 이 회장은 “남아있는 한인 대부분이 수리남에서 열심히 일하고, 여기 국민과 함께 먹고 살아온 사람들”이라며 “수리남 사람들도 온순하고 신사적인데 이런 오해가 생겨 안타깝다”고 말했다.

국제마약범죄자 조봉행의 실화를 다룬 드라마 ‘수리남’은 이달 9일 넷플릭스에서 개봉했다. 극 중에 묘사된 수리남은 부패한 독재정권이 들어서 마약상 전요환(황정민 분)이 범죄를 저지르기 좋은 마약국으로 나온다. 중국인과 한국인 등 이민자 조직이 흉기를 휘두르고 총을 쏴도 아무런 제재가 없는 ‘무법천지’다.

이 회장은 “아직 수리남 국민 사이에서 부정적 감정이 심하게 표출되고 있지는 않다”면서도 조마조마한 감정을 숨길 수 없었다. 그는 “알베르트 람딘 수리남 외교·국제사업·국제협력부(BIBIS) 장관이 지난 12일(현지시각) 법적 대응을 예고하면서, 수리남 국민이 예상치 못한 반응을 보일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이 회장과의 일문일답.

-수리남 국민이 드라마 ‘수리남’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할 부분은 무엇일까.

“수리남 인구 4분의 3이 마약 산업 관련자라는 부분이다. 2000년대에는 국가지도자가 마약에 관여됐다는 소문도 있었다. 하지만 당시 대통령은 징역형을 받은 상태다. 오히려 현 대통령은 마약 단속 전담 경찰국장이었던 찬 산톡히(Chan Santokhi)다. 국가적으로 마약을 없애기 위해 노력했는데 부정적 이미지로 묘사되니 상당히 실망한 기색이다.”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수리남 참전용사회’도 부정적 의견을 표명했다고 들었다.

“수리남에는 유엔(UN)군 소속이었던 115명의 참전용사가 있다. 참전용사회에서도 ‘수리남’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냈다. 주수리남 한인회는 참전용사회와 함께 올해 7월 ‘수리남’의 영문 제목을 바꾸라는 공문을 보냈다. 제작사에서 이 의견을 받아들여 영문 제목을 ‘나르코스-세인트(Narcos-Saint·마약상-성자)’로 바꿨다. 영문 제목이라도 변경돼 천만다행이다.”

-주수리남 한인회 차원에서 ‘수리남’과 관련해 하고 있는 대응은.

“주베네수엘라 대사관에서 교민들의 안전을 걱정했다. 한인회에서는 수리남 국민의 ‘혐한’ 정서가 걱정돼 ‘DWT(De Ware Tijd)’라는 수리남 유력 일간지에 해명 기사를 실었다.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SNS)에도 오해를 풀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넷플릭스 '수리남'

-드라마 ’수리남’에 대한 한인들의 평가는 어떤가.

“사실을 바탕으로 만들었다지만, 허구가 99% 이상이다. 수리남 인구 75%가 마약에 관련돼 있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수리남에는 차이나타운도 없다. 중국인이 조금 살 뿐이다. 모티브가 된 조봉행도 대놓고 마약 밀매 활동을 벌이지 않았다. 교민들은 20년이 지나 어렴풋이 기억하는 정도다.”

-현재 가장 걱정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아직 수리남 국민 사이에서 혐한 정서가 표출되진 않았다. 수리남 사람들은 현실과 허구를 잘 구분할 줄 아는 사람들이고, 온순하고 신사적이다. 다만 수리남 정부의 법적 조치로 예상치 못한 반응이 나올까 걱정된다.”

-한국에 있는 동포들에게 국가 ‘수리남’에 대해 설명해 달라.

“수리남 사람들 참 좋다. 중산층 이상 주민 집에는 울타리도 없을 정도다. 중앙·남아메리카를 여행할 기회가 있다면 꼭 와봤으면 좋겠다. 우범지대로 묘사된 지역에 가보면, 알던 것과는 다르게 치안이 좋은 경우가 있지 않나. 한인회장으로서 수리남에 대한 오해가 없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