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서울 서초구 빗썸 고객센터에 비치된 태블릿PC에 이더리움 가격이 130만원대를 나타내고 있다./뉴스1


#지난 1월 30일 오전 경북 영주의 한 공장 직원인 A(29)씨가 신병을 비관해 세상을 떠났다.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는 유서를 남겼다. 경찰 조사 결과, 그는 평소 주식과 비트코인 등에 투자해 큰 손실을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비트코인 시세는 지난해 11월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뒤 지난 1월 폭락했고, 최근에는 더 큰 폭으로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법원이 가상화폐와 주식 투자로 손해를 본 투자자들을 구제하는 정책을 발표한 가운데 법조계에서는 이들의 경제 활동 복귀 시간을 단축할 수 있어 긍정적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회생법원은 실무준칙 제408호를 제정하고 지난 1일부터 시행했다. 제408호는 채무자가 주식 또는 가상화폐에 투자해 발생한 손실금을 ‘채무자가 파산하는 때에 배당받을 총액’ 계산 시 고려해선 안 된다고 규정한다. 주식이나 가상화폐에 투자했다 손실을 본 경우 손실금의 액수나 규모를 원칙적으로 고려하지 않고 회생을 보다 적극 돕겠다는 취지다.

이에 따라 앞으로는 주식이나 가상화폐로 잃은 돈을 제외하고 ‘남은 재산’을 기준으로 개인회생 절차를 진행하게 된다. 다만 채무자가 투자 실패를 가장해 재산을 은닉한 것으로 파악됐을 때는 투자 손실금도 갚아야 한다.

통상 일정한 소득이 있지만 빚을 갚기 어려운 채무자는 개인회생을 통해 빚을 감면받을 수 있다. 개인회생은 번 돈으로 빚의 일부를 갚으면서 나머지는 면제받는 제도다. 개인회생을 통해 채무액 10억원 이하의 급여소득자 또는 영업소득자는 3~5년간 일정 금액을 갚으면 남은 채무를 면제 받을 수 있다.

법원은 채무자의 자산과 소득 등을 놓고 채무자가 갚을 수 있는 범위에서 변제할 총금액인 ‘변제금’을 정한다. 이때 변제금은 채무자의 현재 자산을 모두 처분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금액인 ‘청산가치’보다 커야 한다.

그동안 법원은 재산 기준에 주식과 가상화폐 ‘투자 손실금’까지 포함해 계산해 왔다. 즉, 회생 절차에서 부동산 등의 가치를 따질 때는 구입 당시 가격이 아닌 최근 실거래가를 기준점으로 삼지만 주식과 가상화폐는 ‘구입 당시 가격’을 기준으로 매겨온 것이다.

예를 들어 기존에는 전 재산 1억원을 주식이나 가상화폐에 투자한 뒤 7000만원을 잃었다면 개인회생시 손실을 본 금액도 채무자 재산으로 분류돼 최소 1억원 이상을 갚아야 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손실액(7000만원)을 제외한 현재 가치만 채무자 재산으로 인정되면서, 3000만원 이상만 갚으면 개인회생할 수 있게 된다.

특히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호황이던 주식과 가상화폐 투자에 뛰어든 이들이 투자에 실패해 줄도산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게 법원의 설명이다. 다만 대법원 통계상 개인회생 전체 건수 수치는 잡히지만, 2030 청년층에 대한 통계가 별도로 나오진 않는다.

서울회생법원 관계자는 “가상화폐 등 투자 실패로 인한 20~30대 청년층의 부채에 대한 부담이 날로 커지고 있고 개인회생 신청 또한 증가하고 있다”면서 “하반기에는 채무자들의 경제적 파탄 및 도산신청 사건의 수가 폭증할 것으로 예측된다”고 밝혔다.

법조계에서는 청년층에게 재기의 기회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주식이나 가상화폐에 투자했다가 실패했다고 해서 원금까지 재산으로 간주했던 것 자체가 부당한 평가였다는 것이다.

최복기 법무법인 세종 도산팀장은 “주식이나 가상화폐 투자도 적법한 경제활동 중 하나인데, 투자에 실패할 경우 청산가치 보장원칙을 지킬 수 없었다”면서 “개인회생으로 신속하게 사회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제도 취지에 걸맞다”고 말했다.

이번 조치로 ‘도덕적 해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지만 회생은 기본적으로 구제하는데 방점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말이 좋아 투자지 한탕주의에 따른 투기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면서도 “하지만 채권자 입장에서 개인회생을 통해 채무자가 조금씩이라도 빚을 갚아나가는 게 오히려 유리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