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으로 복무하다 퇴역한 미국인 아놀드 샘버그(65)씨가 지난 7일 서울 강남구 아이피지리걸 법률사무소 사무실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이학준 기자

2020년 3월 26일 오전을 생각하면 아놀드 샘버그(65)씨는 아직도 끔찍한 기억에 몸서리 친다. 주한미군에서 복무하다 퇴역한 샘버그씨는 그날 아침 치과를 가기 위해 경기도 평택의 자택을 막 나선 참이었다. 치과를 향해 평소처럼 길을 걷던 중 느닷없는 총성 소리가 들렸고 샘버그씨는 곧바로 바닥에 고꾸라졌다. 눈을 떠 보니 이빨은 물론 한쪽 턱뼈가 산산조각이 난 상태였다. 경찰이 도망치는 개를 향해 쐈던 총알이 빗나가면서 샘버그씨 얼굴에 맞은 것이다.

지난 7일 조선비즈와 인터뷰를 하던 샘버그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정신을 차려보니 피가 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 말을 마지막으로 손과 몸을 떨며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아내와 그의 딸도 눈물을 흘렸다.

당시 경기 평택경찰서 송탄지구대 소속 경찰관 5명은 ‘개 두 마리가 거리에서 싸우고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이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싸우던 개 한 마리는 이미 죽은 상태였다. 경찰관들은 나머지 개 한 마리를 쫓기 시작했고, A 순경이 도망치는 개를 향해 총을 쐈다. 그러나 총알은 빗나가 샘버그씨 오른쪽 뺨을 맞혔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것이다. 도망치던 개는 길을 지나던 주한미군이 맨손으로 제압했다.

샘버그씨 부인은 “연락을 받고 갔더니 전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얼굴이 부었고, 온갖 보철물을 끼고 있었다”며 울었다. 샘버그씨는 인터뷰 내내 “나는 잘못한 게 없다”는 말을 수차례 중얼거렸다.

아놀드 샘버그(65)씨의 투병 생활. 말을 하지 못해 종이에 글씨를 써서 의사소통을 하고 있다. /샘버그씨 제공

총에 맞은 샘버그씨는 평택 험프리병원으로 후송돼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그러나 2년 동안 온갖 수술과 치료를 받아야 했다. 턱 주위 신경을 재건하기 위해 허벅지·발목 신경을 절단하면서 걷기도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고, 사라져버린 이빨을 만들기 위해 임플란트도 해야 했다. 그가 자비로 부담한 병원비만 2억원이 넘는다.

그는 사고 이후 각종 트라우마와 환청·우울·불안 등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미 공군에서 24년 동안 복무하며 건강을 유지했던 샘버그씨는 현재 우울증 등 정신과 약을 비롯해 신장약, 심장약 등을 복용하며 지낸다. 의료진은 샘버그씨의 후유증과 장애는 평생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샘버그씨는 “밤에 잠을 자지 못하고, 잠을 자더라도 악몽에 시달린다”며 “더 이상 예전 같은 삶을 살 수가 없다. 모든 것을 다 잃었다”고 말했다. 이어 “2시간 이상 앉아있는 것도 힘들고, 걷는 것도 힘들고, 어떤 일에도 집중을 할 수가 없다”며 “집 밖을 나가는 것도 무섭다. 밖에 나가더라도 빨리 집에 들어가야 하는 편집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물로 입을 헹구는 것도 힘들고 씹지를 못해 ‘퓨레’만 먹고 있다”고 했다.

아놀드 샘버그(65)씨가 총알을 맞은 부위. 수술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이학준 기자

샘버그씨가 고통 속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반면 총을 쏜 A 순경은 아무런 징계를 받지 않은 채 여전히 경찰로 일하고 있다. 샘버그씨가 한 순경을 과실치상 혐의로 고소한 사건의 수사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았다는 게 징계를 받지 않은 이유다. 경기 평택경찰서 관계자는 “수사개시 통보가 오면 감찰조사에 착수할 수 있다”면서도 “형사사건이 계류 중이면 처분 결과를 보고 징계를 한다”고 말했다.

경찰은 A 순경이 잘못한 게 없다고 보고 있다. 앞서 사건을 수사하던 경기 안성경찰서는 작년 4월 A 순경의 행위가 ‘긴급피난’에 해당된다며 불송치했다. 형법상 긴급피난이란 타인의 생명·신체 등에 대한 급박한 위험을 피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가해행위를 한 것을 의미한다. 도망치던 개가 언제라도 사람을 물어 공격할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총을 발사한 것은 정당하다는 취지다.

샘버그씨 측은 수사 결과에 이의를 제기했고 사건을 검토한 수원지검 평택지청은 작년 6월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현재까지 안성경찰서는 아무런 판단을 내리지 않고 있다.

아놀드 샘버그(65)씨를 맞춘 총알. /샘버그씨 제공

샘버그씨 측은 실탄 발사가 적법한 직무집행이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A 순경 등이 쫓던 개는 결국 길을 지나던 주한미군이 맨손으로 제압할 수 있을 정도여서 총기를 사용할 정도의 긴급한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다. 샘버그씨는 “마취총이나 다른 방안이 충분히 있었을 것인데 그걸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샘버그씨 딸 재클린(33)씨는 “한국 친구들에게 물어봐도 경찰관이 총을 발사한다는 거 자체가 흔치 않다고 한다”며 “그것도 개를 향해 총을 쐈다는 것은 비상식적이다. 한국 경찰에 대한 신뢰가 아예 사라졌다”고 말했다.

특히 샘버그씨 측은 이 사건을 경찰이 수사하는 것은 불공평하다는 입장이다. 경찰관의 직무집행이 적법했는지 여부를 경찰이 수사하게 되면 결국 ‘제 식구 감싸기’가 된다는 것이다. 샘버그씨는 “경찰이 아닌 중립성을 갖춘 다른 기관이 수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라 이 사건은 검찰이 수사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경찰은 사건 이후 샘버그씨에게 사과 한 마디 하지 않고 있다. 샘버그씨는 “2년 정도의 시간 동안 경찰로부터 연락을 받은 적도, 사과를 받은 적도 없고 그 누구도 찾아오지 않았다”며 눈물을 흘렸다.

총알을 맞은 이후 아놀드 샘버그(65)씨의 엑스레이 사진. 오른쪽 엑스레이에서 샘버그씨 몸 속에 박혀있는 총알이 선명하게 보인다. /샘버그씨 제공

샘버그씨는 자신에게 총을 쏜 경찰관에 대한 처벌, 자비로 부담했던 병원비 등에 대한 손해배상, 그리고 경찰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샘버그씨 딸은 “다른 사람에게도 이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원하는 차원에서 가해 경찰관이 처벌을 받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미 공군에서 일하던 샘버그씨는 주한미군으로 복무하다 퇴역했다. 이후 한국의 바다와 박물관에 매료된 샘버그씨는 한국이 평화롭고 안전한 국가라고 생각하고 노년을 한국에서 보내기로 결심했다. 그는 사건이 발생하기 전 딸을 만나러 미국에 갈 예정이었는데,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출국이 늦어지다가 총을 맞은 것이다.

샘버그씨 부인은 “미군이 한국을 보호하기 위해 있는 것처럼, 한국 사람들도 한국 땅에 있는 미국인을 보호해줘야 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샘버그씨 딸은 “트라우마가 있는 사건이 일어난 장소에서 아버지가 계속 사는 게 좋지 않기 때문에 한국을 떠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샘버그씨는 “사건이 잘 끝나면 한국에서 살 생각도 있다”면서도 “그게 어려워지는 시점이 오면 한국을 떠나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