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에 일상 브이로그(VLOG·일상을 기록하는 영상 콘텐츠)를 올리던 유튜버 김희영(22)씨는 최근 자신이 앓고 있던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영상을 통해 공개했다. 김씨는 “요즘 많이 힘들다”며 영상의 운을 뗐다. 이어 “잠을 못 잔 지 5일째가 되어가는데 숨 쉬는 것마저 답답하고 우울하다”며 “과연 누가 지금의 내 마음을 알아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털어놓았다.

출근 브이로그를 올리던 유튜버 최모(29)씨도 지난달 회사로부터 권고사직을 당한 사연을 영상에 알렸다. 최씨는 “지난해부터 회사에서 구조조정 이야기가 꾸준히 나왔다”며 “그 대상이 내가 될 줄 몰랐다”고 말했다. 이어 최씨는 “힘들게 취업했는데 다시 또 취업준비를 할 생각을 하니 막막하다”며 “우울하고 힘들어서 아무것도 할 기운이 없다”고 토로했다.

자신의 사연을 공개하는 영상들이 유튜브에 업로드돼 있다. /유튜브 캡처

최근 유튜브에서 먹방·브이로그·스타일링·하울(구매한 물건을 품평하는 내용을 담은 영상) 등 다양한 콘텐츠가 인기를 끄는 가운데, 우울증과 같은 자신이 처한 사연을 솔직하게 공개하는 영상이 증가하고 있다. 이들은 우울증에 걸리게 된 이유나 퇴사할 수밖에 없던 사정, 현재 가지고 있는 빚, 힘든 가정환경 등 자신의 어려운 사정을 솔직히 고백한다. 이를 보는 시청자들은 진심 어린 조언과 함께 희망적인 댓글을 달며 서로를 응원한다.

이들의 영상은 기존 유튜브 콘텐츠와는 다르다. 유튜버들은 주로 개인 채널을 통해 자신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여주거나 열심히 살아가는 일상을 공유한다. 혹은 명품 의류, 고급 외제차 등 ‘플렉스(FLEX·과시형소비)’하며 재력을 과시하기도 한다. 반면 자신의 사연을 공개하는 콘텐츠에서 유튜버들은 우울증·번아웃 증후군·권고사직·가난 등 보통 가까운 사이가 아니면 드러내지 않는 자신의 사연을 공유한다. 이런 영상 가운데 일부는 최대 100만 조회수를 기록하며 많은 시청자의 관심을 받고 있다.

시청자들도 이들의 처지에 공감하며 응원의 댓글을 보내고 있다. 가장 주를 이룬 댓글은 “나도 그렇다” “고생 많으셨다” “힘내라”는 공감과 위로였다. 댓글을 통해 유튜버에게 자신의 사연을 털어놓는 시청자도 있었다. 한 시청자는 번아웃 증후군을 공개하는 유튜버의 영상 댓글을 통해 “야근이 일상인 직장을 2년 넘게 다니다가 번아웃 증후군으로 일을 그만두고 방안에 폐인처럼 지냈다”며 “그러다 지금의 일을 찾아 지금 만족하며 인생을 즐기고 있다”며 자신의 사연을 공유했다.

실제 MZ세대 사이에서 우울증 환자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우울증 진료 인원은 총 65만1810명으로, 이 중 20대가 16.9%를 차지했고 60대가 16.5%로 그 뒤를 이었다. 국내 우울증 환자는 최근 5년간 60대가 가장 많았지만 2020년 20대 우울증 환자가 60대를 넘어섰고, 지난해 역시 20대 우울증 환자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나면서 청년 우울증 환자가 지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MZ세대 사이에서 우울증 발생률이 높아진 원인으로 취업난과 경제적 어려움 등이 있다. 또 직장이나 사회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번아웃 증후군이 우울증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지난해 직장인 75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최근 1년간 번아웃 증후군을 겪었다고 답한 응답자는 64%에 달했다. 번아웃 증후군을 장시간 방치하면 우울증, 불면증, 공황장애 등 정신질환으로 이어진다.

전문가들은 자신의 사연을 공유하는 영상이 유튜브 내에서 인기를 끄는 데에는 화려하고 부러움을 샀던 기존의 유튜브 콘텐츠 문법에서 벗어나 MZ세대의 솔직한 현실을 보여준 데 있다고 말한다. 임명호 단국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SNS 속 MZ세대는 대체로 굉장히 행복해 보이지만, 사실 MZ세대는 취업난이나 치열한 경쟁 등으로 사회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살아가고 있다”며 “최근 자신의 사연을 공개하는 영상이 인기를 끄는 데에는 나처럼 힘든 사람의 영상을 보며 서로 위로하고 함께 힘을 얻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오늘날 MZ세대의 솔직함이란 특성이 영상으로 자신의 사연을 공유하는 문화로 이어졌다고 진단했다. 임 교수는 “MZ세대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솔직함’”이라며 “어떻게 보면 공개하기 어려운 개인의 사연일 수 있는데, 기존 세대와는 다르게 솔직함이 특징인 MZ세대는 개인적인 사연까지도 솔직하게 공유한다”고 말했다. 이어 임 교수는 “영상을 통해 힘든 개인 사정을 공유하고 위로함으로써 ‘나도 할 수 있구나’ 하는 성취감도 얻고 있다”고 평가했다.

실제 유튜브를 통해 우울증을 고백한 김씨의 경우 “처음부터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유튜브에 올릴 생각은 없었지만, 우울한 모습도 나의 평범한 일상 중 하나인데 숨길 필요가 없다고 느껴졌다”고 말했다. 권고사직을 알린 최씨 역시 “백수가 된 내 모습이 내가 처한 현실인데, 솔직하게 공개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며 “내 영상을 통해 나와 비슷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댓글을 보며 응원받고, 나 역시 비슷한 사정을 가진 사람들에게 힘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