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동구에 거주하는 60대 여성 A씨는 지난 4월 19일 ‘1599-3333′ 번호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카카오뱅크에서 예금·적금·대출 등을 문의하는 고객센터 번호였다. 자신을 카카오뱅크 직원이라고 밝힌 B씨는 “흥국저축은행에서 빌린 1억4480만원을 카카오뱅크에서 저리로 대환해주겠다”고 말했다. 실제 A씨는 해당 은행에서 대출금을 상환하고 있는 상태였다. A씨는 카카오뱅크 공식 번호로 전화가 온 데다 카카오뱅크 직원 명함도 건네받은 터여서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고 대환대출을 신청했다.

대환대출을 신청한 뒤 일주일이 지나지 않아 흥국저축은행 직원이라는 C씨가 A씨를 찾아왔다. 그는 “다른 은행끼리 대출 대환을 하면 계좌 거래가 정지된다”며 “거래 정지를 풀기 위해서는 3000만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A씨는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고 아들 적금을 깨 2200만원을 인출해 C씨에게 건넸다. 그러나 B·C씨는 모두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이었고, 2200만원은 아직 돌려받지 못한 상태다.

A씨는 “처음에는 전화를 받고 이상하다 했는데, 전화번호를 직접 확인해보니 정말 카카오뱅크 고객센터 번호가 맞았다”며 “명함까지 받아서 의심을 하지 못했다”고 했다.

카카오뱅크 고객센터 전화번호(좌)와 피해자 A씨의 지난 4월 21일 통화 내역(우). 카카오뱅크 고객센터 전화번호로 금융사기 전화가 왔다. /카카오뱅크 홈페이지 갈무리 및 피해자 A씨 제공

최근 카카오뱅크를 사칭한 신종 대출 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카카오뱅크에서 대출 관련 상담을 받는 공식 고객센터 번호와 똑같은 번호로 전화를 걸고 서민들을 위한 저금리 대출을 지원한다고 속여 돈을 가로채는 수법이다. 070 또는 010 번호가 아닌 금융기관의 공식 번호를 도용해 보이스피싱을 하는 사례는 경찰도 처음 본다고 할 정도로 소수여서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인터넷에는 A씨와 마찬가지로 카카오뱅크 고객센터 번호로 저리 대출을 해주겠다는 전화를 받았다는 사례가 여럿 발견된다. 전화번호 조회 사이트인 ‘후스넘버’에 카카오뱅크 고객센터 번호를 검색하자 해당 번호로 보이스피싱 전화를 받았다는 이용자들 후기가 5개나 있었다. 직접 후기를 남기지 않은 이들까지 고려하면 실제 사례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보이스피싱 기술이 날로 교묘해지고 있다. 기존에는 ‘02′ ‘070′ ‘010′ 번호로 전화를 걸어 피해자들 돈을 가로챘다면, 이제는 아예 금융기관 공식 전화번호를 도용하는 수준까지 이른 것이다. 금융기관 공식 번호로 전화가 오기 때문에 피해자들은 더 쉽게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는 셈이다.

지난 3일 전화번호 조회 사이트 후스넘버에 카카오뱅크 고객센터 번호를 조회하니 보이스 피싱 전화가 왔다는 사이트 이용자들의 후기가 있다. /후스넘버 홈페이지 갈무리

경찰청에 따르면 대출사기형 보이스 피싱 발생 건수는 2016년 1만3656건에서 지난해 2만3965건으로 75.5% 증가했다. 피해 규모도 2016년 927억원에서 2021년 6003억원으로 5배 이상 늘었다.

이미 존재하는 금융기관의 공식 번호를 도용해 전화를 걸 수 있는 방법은 현재까지는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피해자 휴대전화에 악성 애플리케이션(앱)이 설치돼 있다면 상황은 다르다. 경찰도 A씨 휴대전화에 설치된 악성 앱이 전화번호를 바꿔치기 했을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실제 다른 번호로 전화를 걸어도 악성 앱이 작동해 피해자 휴대전화엔 카카오뱅크 공식 전화번호가 표시되는 식이다.

경찰 관계자는 “실제 번호와 다른 발신번호가 보이게끔 화면 표시를 변작하는 악성 앱이 있다”며 “피해자의 전화기에 발신번호를 바꾸어 보이게 하는 악성 앱이 피해자 모르게 설치됐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카카오뱅크 측은 “어떻게 번호를 위조하는지는 모른다”면서도 “카카오뱅크에 사법권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고객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시스템을 도입하고 모니터링 요원을 두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범행이 악랄해지고 있다”며 “카카오뱅크는 기본적으로 대출 권유 전화·문자를 하지 않는다. 소비자들의 유의를 부탁드린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