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저녁 서울 서초구 잠원·반포한강공원에선 자전거 이용자와 공원 나들이객이 한데 뒤섞이며 곳곳에서 위험한 상황이 연출됐다. 자전거 이용자들은 건널목에서도 보행자에게 길을 양보하지 않고 경적을 울리거나 “지나갑니다”라고 크게 외치며 도로를 빠르게 내달렸다. 바닥에 쓰인 ‘천천히’라는 문구와 시속 20km 제한 교통 표지판이 무색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한강공원 내 자전거 이용자 수는 2019년 1300만명에서 지난해 1600만명으로 늘었다. 한강공원에서 자전거 사고도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서울시 한강사업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한강공원 내 자전거 사고는 94건이었다. 신고되지 않은 사고를 포함하면 실제 사고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강공원에서 시민들이 자전거를 타고 있다./조선DB

상황이 이렇자 서울시는 한강공원에서 자전거 속력을 제한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2월 국무조정실 규제개혁신문고에 한강공원 내 자전거 운행 속도를 시속 20km로 제한하는 도로교통법 개정을 건의했다. 지금도 한강공원에서 자전거는 시속 20km 이하의 속력을 유지하도록 하는 권고가 있지만 처벌 방안이 없어 유명무실하다. 서울시 자전거정책과 관계자는 “속도를 제한하면 보행자뿐 아니라 자전거 이용자의 안전도 함께 챙길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경찰은 자전거 속도 제한이 현장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입장이다. 경찰 측은 “자전거는 속도 측정계가 없어 이용자 스스로 과속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며 “도로교통법상 자전거는 현재 속도 제한을 할 수 없다. 미국·독일 등 국가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금문교도 자전거 속도 제한 규정을 두고 위반시 100달러의 벌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시민 반발로 시행하지 못한 바 있다.

한강공원 내 자전거 속도 제한에 대한 시민들의 의견은 엇갈리고 있다. 로드 바이크 이용자 김병수(27)씨는 “속도 제한 지정 자체는 공감하지만, 한강공원 전체에 설정하기보다 사람들이 많은 구간에만 설정하면 좋겠다. 자전거 페달을 안 밟기만 해도 속도가 충분히 시속 20km 아래로 떨어지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박모(39)씨는 “라이더 입장에서 달갑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는 것 같긴 하다. 차라리 로드랑 서행하는 자전거 길을 분리해주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산책하던 김모(73)씨는 “제한뿐 아니라 자전거 이용자들의 의식 개선이 필요하다”며 “횡단보도 앞에 정지선이 있지만 누구 하나 지키는 사람이 없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횡단보도에선 손들고 건너면 된다고 배울텐데 여기서 그러면(정지선을 지키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냐”고 토로했다. 인근 주민 이모(70)씨도 “예전에 길을 건너려다 자전거 이용자와 다툼이 있었다”며 “길을 건널 때마다 늘 조마조마하다”고 호소했다.

전문가들은 속도 제한보다는 자전거 이용자 안전 교육이나 동선 분리 등의 방법으로 안전 대책을 마련할 것을 제안했다. 박무혁 도로교통공단 교수는 “자전거는 사고가 났을 때 자동차와 달리 운전자에게 직접적인 충격이 가해질 수 있어 더 조심히 운전해야 한다”면서도 “속도 제한만 고려하기보다 종합적인 관점에서 들여다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유정훈 아주대 교통공학과 교수는 “한강공원 자전거 이용자는 저속과 고속 이용자로 그룹이 분명히 나뉜다”며 “이용자 반발을 줄이고 한강이라는 관광자원을 활용하려면 자전거 고속도로와 저속도로를 구분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고 제안했다.

서울시는 내달 초까지 해외 사례들을 보완해 한강공원 내 자전거 속도 제한을 포함하는 도로교통법 개정을 다시 건의할 예정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개정이 되더라도 한강공원 내 모든 구간에 속도 제한을 도입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과속이 빈번하고 보행자가 많아 안전 문제가 생길 수 있는 곳을 검토해 제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