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년생 동갑내기 배구선수와 방송인이 악성댓글과 추측성 루머에 시달리다 잇따라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일이 벌어졌다. 삼성화재 블루팡스에서 활약한 고(故) 김인혁 선수와 인터넷 방송 스트리머 고(故) BJ잼미(본명 조장미)가 악성댓글의 희생양이 됐다.

이들을 죽음으로 내몬 이들 중에는 이른바 ‘사이버렉카’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다. ‘사이버렉카’란 교통사고 현장에 가장 먼저 달려가는 렉카(Wrecker‧견인차)처럼 온라인에서 이슈가 생길 때마다 재빨리 짜깁기한 영상이나 게시글을 만들어 조회수를 올리는 이들을 일컫는 말이다. 법과 규제의 사각지대에서 활동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마땅히 족쇄를 채울 방법도 없는 게 문제다. 플랫폼을 운영하는 유튜버나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미디어(SNS)들도 뒷짐만 지고 있는 경우가 태반이다.

9일 유튜브에 고(故) 김인혁의 이름을 검색하면 나오는 게시물. 고인이 세상을 떠난 지 5일이 지났지만, 유튜브에는 여전히 자극적인 제목의 영상이 게시돼 있다./유튜브 캡처

BJ잼미에 대해 ‘메갈 논란’ 같은 제목을 달아 영상을 제작한 유튜버 ‘뻑가’는 대표적인 사이버렉카 유튜버로 꼽힌다. 유튜브 수익 분석 사이트 녹스인플루언서에 따르면 약 121만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뻑가의 월수입은 9100만원에 달한다. 지난 세달간 받은 슈퍼챗 액수만 326만1287원이다. 슈퍼챗은 기존 아프리카TV의 ‘별풍선’과 같이 채널 운영자가 라이브 방송을 할 때 구독자들이 실시간으로 후원금을 보내는 제도다.

명예훼손이 인정되더라도 유튜브를 통해 버는 수익이 벌금보다 많기 때문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들은 영상 조회수에 따라 더 높은 액수를 지급하는 유튜브의 수익구조를 이용해 자극적인 제목과 사진으로 조회수를 올리는 데 매진한다.

사이버렉카가 등장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유명인만이 표적이 되는 것도 아니다. 무명배우 A씨(27)는 한 드라마 조연으로 등장해 대중의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자신의 가족관계, 사는 곳 등 A씨 신상에 대한 추측성 게시물이 올라오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하루아침에 사이버렉카의 표적이 된 것이다.

A씨에 대한 추측성 게시물이 일파만파 퍼지자 비공개 계정을 통해 욕설이 담긴 디엠(dm, 인스타그램 메시지)이 쏟아졌다. A씨는 인스타그램 측에 해당 계정들을 모두 신고했으나 악성 댓글과 메세지는 멈추지 않았다. 결국 A씨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삭제할 수밖에 없었다.

사이버렉카가 올리는 게시물은 피해자들을 평가하고 추측하는 수준에 그쳐 법망을 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추측을 사실인 것처럼 포장해 게시물을 만들지만, ‘논란’ ‘의혹’ 등의 단어를 써 명예훼손이나 모욕죄를 교묘하게 빠져나간다는 것이다.

박상오 변호사(법무법인 바른)에 따르면 온라인상 허위사실 유포 등을 포함하는 경우,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죄 등이 성립할 수 있다. 그러나 해당 내용이 사실관계가 아닌 추측에 그치면 게시자를 처벌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세상을 떠난 BJ잼미에 대해 ‘페미니스트’라며 저격한 유튜버들 역시 ‘의혹’ ‘논란’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현재 이들을 법적으로 처벌하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유튜버의 신상을 특정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박 변호사는 “유튜브처럼 해외에 서버를 둔 플랫폼은 게시자의 신분을 특정할 수 없어 경찰 수사가 난항을 겪어 피해자들이 쉽사리 고소를 진행하지 못한다”며 “국내 플랫폼은 회사가 바로 아이디를 추적해 수사에 협조하지만, 구글 등 해외 플랫폼은 명예훼손이나 모욕죄로 고소를 해도 해외 수사망에 의존해야 해 절차가 훨씬 복잡하다”고 전했다.

실제로 유튜브가 공개한 투명성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21년 7월부터 9월까지 두 달간 유튜브 자체에서 삭제한 게시물은 590만1241건이지만, 개인이 신고해 삭제된 게시물은 8만5791건에 불과하다.

플랫폼 업체들이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대응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튜브의 경우 자체적인 ‘가이드라인’과 혐오표현에 대한 자동감지시스템으로 제재를 가하고 있다고 하지만, 정작 피해자 본인이 신고를 하더라도 콘텐츠나 채널에 대한 제재에는 미온적이라는 것이다.

유튜브 관계자는 “사용자들이 신고한 콘텐츠를 담당팀이 리뷰하며, 가이드라인을 위반했다고 판단된 콘텐츠는 삭제된다. 반복적으로 가이드라인을 위반하는 사용자 계정은 해지하는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며 “사이버렉카와 같은 추측성 게시물에 대해서도 명예훼손 소지가 있으면 자체적으로 삭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번에 두 청년을 죽음으로 내몬 사이버렉카의 콘텐츠에 대해서는 별다른 제재가 없었다.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관계자는 “혐오, 차별, 성착취가 난무하는 플랫폼 이용 환경 속에 사회적 약자는 온라인에서도 쉽게 혐오의 대상이 돼 폭력에 노출되고 목숨을 잃는다. 가해자의 무한한 폭력의 자유가 인정되는 온라인 환경이 아닌 모든 이용자에게 안전한 온라인 환경을 만들기 위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