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를 강타한 지 2년이 지났다. 우리나라에서도 코로나19 누적 확진자가 60만명을 넘어섰고 사망자도 5000명을 돌파한 지 오래다. 정부의 방역대책이 오락가락하는 와중에도 바이러스 확산을 이 정도에서 막을 수 있었던 건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하게 맡은 일을 해내고, 희생을 감수하면서 방역조치를 따른 국민들의 노력 덕분이다. 조선비즈는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각자의 분야에서 노력한 이들을 인터뷰했다.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어머니이고, 누군가의 아들이자 딸인 이들이야 말로 코로나 시대의 숨은 영웅이다. [편집자주]

민관 협력을 통해 개발된 오미크론 변이 신속 판별 PCR(유전체 증폭) 시약이 지난달 말부터 지자체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짧게는 사흘, 길게는 닷새나 걸리던 오미크론 감염 여부 확인 기간을 3~4시간으로 대폭 단축했다. 기존 알파, 베타, 감마, 델타 등 4가지 변이에 오미크론 변이까지 5개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주요 변이를 한 번에 판별할 수 있게 됐다. 한 번에 5개 주요 변이를 모두 판별할 수 있는 PCR 검사는 세계 최초다.

델타와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 신속 판별 PCR 검사 도입을 이끈 인물은 질병관리청의 김은진 신종병원체분석과장이다. 그는 “변이 분석용 PCR 개발이 시급하다고 판단했고, 민관 협력을 통해 해외와 비교해 빠른 속도로 개발·도입을 마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 과장과 신종병원체분석과 직원들은 변이 바이러스의 전파가능 기간 등 영향력을 분석, 전체 대응 전략의 기반을 다지는 기초 데이터를 제공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진자의 격리기간이나 사회적 거리두기 강도 등을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한 자료들이다. 김 과장은 코로나19 사태가 일파만파 퍼지던 2020년 9월부터 신종병원체분석과를 이끌며 델타와 오미크론 등 주요 변이종을 상대하고 있다.

김은진 질병관리청 신종병원체분석과장. /최효정 기자

김 과장은 코로나19가 창궐한 이후 단 하루도 정시 퇴근을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의 하루는 새벽 6시부터 시작된다. 보고와 발표, 회의 등으로 쉴 새 없는 일과가 마무리되는 것은 새벽 2시쯤이다. 국내에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시작했던 2020년 1월부터 8월까지는 종합상황실에서 근무하며 초기 대응을 책임졌다. 주말 이틀을 모두 쉬는 것도 한 달에 한 번 가능할까 말까다. 매일 새벽까지 이어지는 야근에 번아웃 증후군이 올 법도 하지만, 체력이 되는 한 끝까지 맡은 바 소임을 다하고 싶다는 것이 김 과장의 소망이다.

김 과장은 공중보건행정가로서의 ‘사명감’이 매일 일터로 발걸음을 옮기게 한다고 말했다. 금세기 다시는 없을 최악의 보건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작지만 하나의 역할을 맡아 싸울 수 있었다는 것이 영광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는 “솔직히 처음에는 왜 하필 내가 있을 때 이런 위기가 터졌나 막막했다”면서 “하지만 지나고 보니 공무원으로 나라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보람이었다. 생애 다시 없을 이런 큰 사건에서 작게나마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기회”라고 말했다. 김 과장을 지난 4일 충북 오송 질병관리청에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현재 어떤 업무를 하고 있나.

“질병청 신종병원체분석과장직을 맡고 있다. 중앙방역대책본부의 검사분석팀장도 겸하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전파가능 기간과 중화항체 능력 등을 분석한다. 새로운 변이가 나타나면 어디에서 발생했는지 등을 모니터링한다. 이를 바탕으로 격리기간 등이 결정된다. 코로나19 발생 초기인 2020년 1월부터 8월까지는 종합상황실에서 근무하며 역학관리팀을 파견하는 등 종합방역업무를 맡았다.”

-초기 상황은 얼마나 급박했나.

“현장의 급박함 만큼은 아니었겠지만, 상황실도 24시간 돌아간다. 코로나19 초기에는 퇴근이라는 것이 아예 없었다. 2020년에는 한 번도 서울 본가에 가지 못했을 정도다. 주말에도 항상 출근했다. 기본적인 체계가 있긴 했지만, 이 정도 대규모 위기는 처음이었기에 직원들이 모든 역량과 시간을 투입해 체계를 구축해 나갈 수 밖에 없었다.”

-지난 2년 동안 가장 보람 있는 성과는 무엇인가.

“변이 분석 시간을 대폭 단축한 PCR 분석법 도입을 이끌어 낸 것이다. 변이 바이러스가 본격적으로 문제가 된 것이 2020년 8월부터인데, 9월에 과장에 부임해 변이 대응용 PCR 분석법 도입을 민관 협력 방식으로 추진했다. 전파력이 강한 델타 바이러스가 지난해 4월 처음으로 국내에 유입됐다. 발생 직후 3개월 만에 변이 분석 PCR 분석법을 도입했다. 기존에 3~5일 걸리던 걸 대폭 단축했고, 이 방식을 오미크론에도 적용해 국내 유입 한 달 만에 세계 최초로 5종 변이를 모두 가려낼 수 있는 PCR 분석법 도입에 성공했다.”

-연구관 경력채용으로 공직에 입문했다. 공무원이 되고 싶었던 이유가 있었나.

“미생물학, 그 중에서도 병원성 세균 전공으로 박사과정을 밟고, 미국에서 포닥(박사 후 과정) 과정도 마쳤다. 미국에서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매우 신뢰받는 기관이다. 보건행정에 관심이 생기던 차에 한국에 돌아와 질병관리본부를 알게 됐고, 마침 경력채용 공고가 나와 운 좋게 합격하게 됐다. 처음엔 에이즈종양바이러스과에서 근무하다가 미국 CDC로 연수를 갔고, 선진적인 보건행정을 배웠다. 그 때의 경험이 코로나19 대응에도 큰 도움이 됐다. "

-변이 바이러스가 계속 등장하고 있다.

“새로운 변이가 나오면 막막하다. 다시 헤쳐나가야 하니까. 하지만 바이러스에서 변이가 발생하는 일은 당연하다. 쓸데없이 패닉을 느낄 필요는 없지만, 경계는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확진자가 많이 발생하면 절망감이 크다. 하지만 국민들이 방역당국의 정책을 잘 따라주셔서 확진자가 줄어들 땐 코로나 사태 종식에 대한 희망감이 생긴다.”

-올 한 해는 어떤 한 해가 될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위드 코로나’로 가는 길목에 있다고 생각한다. 위드 코로나가 되면 확진자가 늘어나는 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본다. 언제까지 사회적 거리두기를 할 수는 없지 않나. 백신 3차 접종이 활성화되고 치료제도 들어온다. 누가 걸리는 지가 더 중요해진다. 확진자 수보다는 위중증 관리를 통해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는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 물론 위드 코로나가 된다고 해도 올해까지 방역당국은 비상체계로 가동된다.”

-2년 동안 방역 일선에 있으면서 삶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

“집에도 못 가고, 개인적인 삶은 아예 없어졌다. 밥도 매일 도시락 먹지, 사람도 못 만나지, 업무 회의마저 거의 비대면으로 진행됐다. 개인적인 교류가 다 단절됐다.”

-코로나 사태 2년이 지났다. 특별한 소회가 있을까.

“처음에는 ‘왜 하필 지금인가. 왜 내가 있을 때인가’ 하는 생각에 너무 막막했다. 지나고 보니 순간 순간 대처를 잘 해왔던 것 같다. 보건직 공무원으로서 나라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하는 계기였다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19 같은 위기가 생애 또 올까 싶은데, 그런 이벤트 안에서 작게나마 역할을 했다는 것이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나 뿐만 아니라 질병청 공무원 모두 간부부터 말단 직원까지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고 있다. 2년이 지나니 주위에 건강을 잃고 아파서 휴직하시는 분들이 많아 안타까운 측면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