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2019년 4월 17일 안인득이 진주의 한 아파트에서 방화와 흉기난동으로 5명을 살해하고 17명을 다치게 한 지 1000일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안인득은 조현병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고, 안인득 사건 이후 ‘조현병 포비아’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조현병 환자에 대한 공포심이 커졌다. 하지만 안인득은 살인자 이전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방치된 환자였다. 전문가들은 안인득이 제대로 된 관리와 치료를 받았다면 이런 끔찍한 사건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올해로 정신분열증을 조현병으로 부른 지 10년이 됐다. 병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편견을 없애기 위해 병명을 바꿨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선 조현병을 제대로 바라보지도, 적절히 관리하지도 못하고 있다.

매일같이 혐오와 낙인을 마주하는 조현병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듣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들은 혐오와 낙인을 피해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몸을 피하고 목소리를 낮춘다.

그런 그들을 대신해 책을 쓰고, 목소리를 내는 조현병 당사자가 있다. 자신이 조현병을 극복한 과정을 풀어낸 책 ‘바울의 가시’를 쓴 이관형 작가다. 지난 11월 3일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관형 작가는 우리가 조현병 환자를 생각했을 때 흔히 떠올리는 이미지와는 전혀 달랐다. 두 시간 동안 인터뷰를 하는 내내 이 작가는 담담하고 침착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조심스럽게 단어를 고르고, 조현병에 대한 국내의 열악한 치료 환경과 사회적 인식을 비판할 때는 단호했다.

이관형 작가/본인 제공

이 작가는 조현병에 대한 우리의 편견이 얼마나 잘못됐는지 자신의 모습을 통해 보여주는 듯했다. 그는 “조현병 환자는 많이 아프고 무능력하고 범죄를 일으킨다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서는 강하다”며 “하지만 조현병을 갖고 살아가면서도 자기 능력을 발휘하고 전문직에서 활동하는 사람도 많다”고 했다.

정상적인 일상 생활을 하는 조현병 환자들은 혐오와 낙인이 무서워 자신의 병명을 숨기고 살기 때문에 언론에 보도되는 조현병 환자는 치료를 제대로 받지 않은 범죄자가 대부분이다. 이 작가가 책을 쓰고 강연을 다니고 언론 인터뷰에 나서는 이유다. 그는 “내 모든 활동은 나를 위한 게 아니라 약자를 위한 것”이라며 “사람들이 조현병 환자들도 다양하고 넓은 스펙트럼이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19년 안인득 사건은 조현병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식을 몇 단계 후퇴시켰다. 아무런 문제 없이 일상생활을 살아가던 수많은 조현병 당사자들에게 ‘연좌제’처럼 작용했다. 안인득이 저지른 끔찍한 죄를 다른 조현병 당사자와 가족들이 연대책임을 지고 있는 셈이다. 사건 이후 언론은 조현병 당사자들에 대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으로 묘사하고 조현병 당사자들을 괴물로 만들었다.

이 작가는 “조현병 당사자들과 관련된 범죄가 일어나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명분이 되어서 조현병 환자 50만명을 범죄자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안인득은 나쁘다. 그러나 만약 조현병이 무조건 안인득과 같은 강력범죄를 일으키는 병이라면, 그런 범죄가 50만건이 일어나야 하지 않나”라며 모든 조현병 당사자를 안인득과 같은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시선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조현병은 발병 초기에 치료만 시작하면 얼마든지 관리할 수 있고, 일상 생활도 가능한 병이다. 하지만 조현병 환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사회적 인식과 편견이 조현병 환자를 음지로 숨어들게 하고, 치료를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한국과학기술 한림원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정신건강에 이상이 생기면 국민 중 약 15%만 정신건강 서비스를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신건강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은 이유로는 ‘몰라서’가 1위, ‘알고도’가 2위를 차지했다. 자신이 정신 질환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도 사회적 시선이 무서워 제대로 치료받지 않는 것이다.

이 작가는 어떤 ‘F코드’를 받더라도 꿋꿋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F코드’는 의료계에서 통용되는 공식적인 정신 질환 코드다. 그는 “안인득 역시 자신이 조현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라며 “치료를 미루다 보면 암이 1기에서 4기가 되듯, 조현병도 더 악화된다”고 말했다.

조현병은 사회적 질병이다. 가정폭력과 입시경쟁, 왕따, 성폭행 같은 문제를 겪은 뒤에 조현병이 발병하는 경우가 많다. 안인득도 산재 처리 문제를 놓고 회사와 갈등을 하는 과정에서 조현병 증상이 발현됐다.

이 작가는 “사람이 병들어서 사회가 병드는 게 아니라, 사회가 병들어서 사람이 병드는 것”이라며 “우리 사회가 자꾸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스스로 나아지라고 강요하는데, 그건 잘못된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많은 조현병 당사자가 극단적인 선택을 택한다. 조현병 같은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을 나약하고 혐오스럽게 보는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세상을 등지는 것이다. 이 작가는 “어떤 F코드를 받더라도 병원에 다니며 꿋꿋하게 생존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작가는 크리스천이기도 하다. 그가 조현병을 극복한 과정을 담은 책 ‘바울의 가시’는 사도 바울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내가 자고하지 않기 위해 하나님께서 내 육체에 가시를 두었다”

사도 바울은 누구보다 똑똑한 사람이었지만 육체의 가시 때문에 스스로를 낮출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이 작가는 모든 사람이 사도 바울처럼 크고 작은 가시를 안고 살아간다고 말한다. 이 작가의 가시가 조현병일 뿐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가시, 조현병을 축복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조현병은 원래 ‘정신분열증’으로 불렸다. 그러나 그 어감이 부정적이라고 해서 10년 전부터 ‘조현병’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조현(調絃)’은 현악기의 현을 조율한다는 뜻이다. 이 작가는 현 하나하나를 조현병 환자에 비유했다. 그는 “사회에서 보기 싫은 한두 집단을 배제하면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없다. 약자도 건강하게 조율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가 저마다의 가시를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면 차별과 편견의 악순환이 사라지고 아름다운 악기 소리가 그 자리를 채울 수 있지 않을까.

이 작가도 하나의 현으로서 소리를 내고 있다. 그는 “작가로서, 강사로서 소리를 내며 주변 약한 조현병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전달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 역시 조현병이 완치된 건 아니다. 그러나 조현병 당사자도 치료와 관리를 통해 일상을 영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는 다음 책을 준비하고 있다. 이 작가는 “조현병 당사자로서 같은 질환을 앓는 사람들은 대변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