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을 협박해 성착취물을 제작하고 이를 온라인 메신저 텔레그램을 이용해 유포한 ‘n번방’ 사건이 세간에 큰 충격을 준 지 500일이 넘었다. 사건 당시 n번방으로의 통로 역할을 했던 건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SNS)였다. n번방 사건의 주범들이 잡힌 이후 과연 SNS는 달라졌을까.

조선비즈가 9월 한 달 동안 트위터를 비롯한 여러 SNS를 추적한 결과, 여전히 일부 SNS가 성범죄의 통로로 활용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트위터의 상황이 심각했다. 트위터에는 유해 사이트 홍보 게시물이 넘쳐났다. 아무 키워드나 검색해도 ‘출장마사지’ ‘콜걸’ 등 성매매 관련 글이 줄줄이 나오는가 하면 ‘일탈계(일탈하는 계정)’가 버젓이 운영되고 있었고, 일부 랜덤채팅 앱(어플리케이션)은 이를 이용한 광고까지 하고 있었다.

◇‘강남역’ ‘치킨’ ‘남친룩’ 검색해도 성매매 알선으로 통했다

서울 자치구 가운데 유흥업소가 가장 많은 곳 중 한 곳인 ‘강남’을 트위터에 검색해봤다. 그 결과 지난 17일 오후 2시부터 3시까지 올라온 343개의 게시물 가운데 72.9%가량인 250개가 성매매를 홍보하는 게시물이었다.

트위터에 '강남'을 검색하자 성매매를 알선을 광고하는 내용의 글이 가장 먼저 떴다. 한 시간 동안 올라온 343개의 게시물 가운데 250개가 이같은 게시물이었다. /트위터 캡처

다른 24개 자치구도 마찬가지였다. 트위터에 자치구 이름을 검색하고 최근 1시간 동안 올라온 게시물을 분석한 결과, 전체 게시물의 77.3%가 성매매 홍보 게시물이었다. 검색 결과가 가장 많았던 강남을 제외하면, 시간당 평균 44개의 게시물이 올라왔고 이 가운데 30개가 성매매 관련 글이었다.

대부분은 계정 이름에 웹사이트 주소를 노출시킨 뒤, 검색 키워드를 무작위로 나열해 게시글을 올리는 식이었다. 이들이 사용한 키워드는 성관계나 성매매 관련 은어도 있었지만, 이와 전혀 무관한 단어들도 많았다.

‘강남’을 검색하자 나온 250개 성매매 홍보 글에는 성매매 관련 키워드를 제외하고 총 211개의 키워드가 이용됐다. 키워드는 ‘떡볶이’ ‘제주도가볼만한곳’ ‘팬미팅’ ‘남북경협주’ ‘거북목 교정’ 등과 같이 이렇다할 기준 없이 무작위로 쓰였다.

키워드별로는 ‘ΟΟ스타그램’이 34회로 가장 많이 쓰였고 ▲’선팔’ 13회 ▲'ΟΟ(지역 이름) 맛집’ 12회 ▲'ΟΟ 여행’ 9회 ▲‘ΟΟ 휴게소’ 7회 ▲‘좋아요 반사’ 6회 ▲‘강아지’ 5회 ▲‘코로나19′ 4회 ▲‘대출’ 4회 ▲‘재테크’ 4회 ▲‘반려묘’ 4회 등이었다.

이밖에 ‘귀여운 짤’ ‘일기예보’ 등 키워드와 아이돌 가수 이름, 음식 이름 등 성매매와 무관한 키워드들이 많았다. 트위터에서는 어떤 것을 검색하든 유해 게시물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트위터에 '강남'을 검색하자 이같은 키워드를 앞세운 성매매 광고 글이 한 시간 동안에만 250개 올라왔다. /이은영 기자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시 인터넷 시민감시단이 지난해 잡아낸 성매매 광고 등 유해정보는 6만8711건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으로 대면 활동이 줄어 인터넷 사용이 늘어나고 유흥업소 운영이 막히면서 업소 광고보다는 출장 형태의 성매매 알선 광고가 많았다.

분야별로는 출장 안마, 애인대행, 조건만남 알선·홍보가 4만2330건(68.4%)으로 가장 많았고, 성매매를 암시하는 은어, 가격 조건, 연락처, 이용후기 등을 통해 성매매 업소로 유인하는 광고가 1만173건(16.4%)이었다. 이어 청소년 접근제한 표시가 없는 불법 음란물이 7340건(11.9%), 오피스텔, 마사지 업소 홍보가 2049건(3.3%)으로 뒤를 이었다.

◇신체 노출하는 ‘일탈 계정’… ‘건전하다’는 랜덤채팅앱 광고판 역할

트위터에선 이같은 노골적인 성매매 광고 뿐만 아니라 보다 은밀한 방식의 광고도 이뤄지고 있었다. 게시글을 도배해 홍보 글의 노출 빈도를 늘리기보다 음란물로 팔로워를 끌어모은 계정을 이용해 특정 랜덤채팅 앱으로의 유입을 늘리는 식이다.

조선비즈는 랜덤채팅 앱을 광고하고 있는 팔로워 1만명 이상의 계정 15개를 조사했다. 채팅 앱이 광고에 활용한 계정들은 이른바 ‘일탈계’였다. 일탈계란 자신의 신체 사진이나 영상을 올리는 계정으로, 일부는 SNS를 통해 오프라인 만남을 갖기도 한다. 이 때문에 범죄에 악용될 우려가 크다.

많게는 12만여명의 팔로워를 둔 이 일탈계는 오프라인 만남을 알선하는 글부터 자신의 신체를 노출한 사진과 영상을 다량으로 올리고 있었다. 일부는 성관계 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해당 영상들에는 자신과 만나자는 내용의 댓글이 수십개 달렸다.

일탈계에 1만명 이상의 팔로워가 붙으면 곧바로 광고가 따라왔다. 프로필 메시지나 게시글에 ‘변녀 많은 곳’ ‘(여성을) 사 먹을 수 있는 곳’이라며 특정 사이트의 도메인을 올린 뒤 여성과의 불건전한 만남을 원하는 사람들이 이를 클릭하도록 유도하는 식이었다.

해당 랜덤채팅 앱들의 공식 홈페이지에 접속해봤다. 밝고 건전하거나 낭만적인 분위기의 사진들과 함께 운명의 상대를 찾을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문구들이 눈에 띄었다.

트위터 '일탈계'가 광고하고 있는 랜덤채팅 사이트 화면. /인터넷 캡처

그러나 일탈계가 광고하고 있는 도메인으로 접속하자 전혀 다른 분위기의 홈페이지가 떴다. 사이트에 대한 정보 없이 여성의 신체 노출 사진부터 보여졌다. 메뉴판처럼 여러 여성의 노출 사진이 줄지어 정렬된 채 외설적인 문구가 쓰여진 모습은 음란물 사이트 팝업 광고를 방불케 했다.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동네 친구 만들기’ ‘반쪽 찾기’ 등의 홍보 문구를 내걸어놓고는 일탈계로 접속한 사람들에게는 정반대의 홈페이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에 따르면 이같은 랜덤채팅앱은 자신을 노출하지 않고 불특정 다수와 일대일 대화가 가능한 데다 위치정보 공유도 할 수 있어 성매매와 디지털성범죄의 주요 유인·접촉 통로로 악용되고 있다. 이에 방심위는 지난 8월 30일 랜덤채팅 앱 내 성매매 암시 정보 691건에 대해 이용해지를 의결하기도 했다.

◇'19홀’은 필수라는 오카방… 네이버·카카오도 변종 성매매에 눈 감아

중년 이용자가 많은 네이버 밴드에선 ‘무료 골프’가 미끼였다. ‘국내 최대 VIP 남성회원’을 보유했다는 모임에 가입하자 ‘담당 매니저’로부터 이같은 내용의 메시지가 왔다. 그는 20여개의 항목으로 이뤄진 프로필 양식을 보내며 “프로필 작성은 필수사항”이라고 했다. 밴드 운영자가 만남만 알선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 회원들의 프로필을 수집해 점수를 매긴 뒤 관리하고 있는 것이었다.

밴드 운영자들은 남성들로부터 원하는 시간과 장소 등을 의뢰받아 밴드에 의뢰인의 직업, 체격, 거주지, 선호하는 여성상 등을 올린 뒤 여성 회원들의 신청을 통해 만남을 알선하고 있었다.

이들은 “애프터(골프 후 성매매)는 알아서 하는 것”이라면서도 회원들로부터 가슴 크기, 닮은 연예인, 전신 사진 등 정보를 요구했다. ‘프로필을 작성해야 매칭 시 우선권이 주어진다’고도 했다. 또 다른 운영자는 공지사항을 통해 “골프 갈 때 간식을 준비하라” “민낯이나 레깅스 운동복은 안 된다”고 했다.

지난 27일 카카오톡 오픈채팅에 '여성 무료 골프'를 빙자한 성매매 알선 채팅방이 만들어져 있다. /카카오톡 캡처

네이버 밴드보다 일회성 성격이 짙은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선 요구가 더욱 노골적이었다. 대화방 방장은 밴드 운영자와 마찬가지로 인적사항과 신체 사이즈, 주량, 전신 사진, 얼굴 사진 등을 요구했고 “‘알바 라운딩’을 하려면 ‘19홀’을 꼭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19홀은 골프 라운딩을 마친 뒤 갖는 뒤풀이 자리를 가리키는데, 성매매를 뜻하는 은어로 쓰인다.

성매매 금액은 여성의 나이에 따라 10만~30만원에 매겨졌다. 제안을 수락하자 한 남성으로부터 카카오톡 메시지가 왔다. 남성은 “골프를 꼭 치고 싶냐”며 “하루에 얼마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골프는 뒷전이었다.

밴드와 오픈카톡방을 운영하는 네이버와 카카오 측은 이용자들의 사생활을 이유로 ‘변종 성매매’를 눈감아 주고 있었다. 네이버 측은 “운영자의 승인을 얻어 가입해야 하는 비공개 밴드에 대해선 모든 게시물을 모니터링 할 수 없다”며 “신고된 게시물에 대해서만 모니터링을 하고 있으며, 수사기관 협조 요청에도 성실히 응하고 있다”고 했다.

카카오 역시 같은 입장이었다. 카카오톡 관계자는 “(개인정보 등 이유로) 채팅방 내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오픈채팅 이용자들은 유해 콘텐츠에 대해 신고할 수 있고, 신고가 접수되면 제재가 적용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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