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오전 10시 서울 중구 황학동 주방·가구거리 한 골목에는 ‘중고’라고 적힌 의자·냉장고 등 가구와 고깃집에서 쓰이는 테이블·냄비들이 줄지어 있었다.

그러나 이를 구경하는 손님들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업체 사장들은 30도를 넘나드는 폭염에도 밖으로 나와 기약 없는 손님들을 기다리며 하릴없이 거리만 응시하고 있었다. 곳곳에 ‘임대 문의’라는 종이를 붙인 채 문을 굳게 닫아버린 업체들도 눈에 띄었다.

28일 오전 10시 서울 중구 황학동 주방·가구거리에 있는 임대를 내놓은 가게. /방재혁 기자

1980년대 황학동 중앙시장 뒤에 자리잡은 주방·가구거리는 한때 400여개 업체가 밀집돼 있었다. 이들은 가정용·업소용 주방·가구를 취급하는 한편 폐업하는 가게에서 나온 물품들을 사들인 뒤 개업하는 가게에 중고로 판매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상황이 어려워 폐업하는 이들과 새로운 꿈을 안고 개업하는 사람들이 몰리는 곳이 바로 주방·가구거리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자영업자들이 줄지어 폐업하면서 중고품 유입은 증가했지만, 개업하는 사람들은 사라져 판매량은 뚝 떨어졌다. 물건 회전이 되지 않으니 주방·가구거리에는 손님 대신 중고품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중고품 가격은 연일 하락하고 있다. 한때 8만원이던 중고 압력밥솥은 6만원으로 가격이 내려갔지만 수개월째 팔리지 않고 있다고 한다. 1만원 할인해 4만원에 판다는 쪽지가 붙은 철제선반 위에는 먼지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28일 오전 서울 중구 황학동 주방·가구거리에 있는 한 가게 앞에 중고 주방기구가 쌓여있다. /송복규 기자

이곳에서 20년 동안 장사한 주방기기 판매업체 대표 황모씨는 “개업하는 자영업자가 줄면서 손님은 90% 정도 줄었다”며 “중고는 회전이 안 되면 의미가 없기 때문에 좋은 물건이 들어와도 다 버려야 하는 형편”이라고 했다. 그는 가게 안팎으로 늘어서 있는 중고품을 쳐다보며 “이것도 이제 다 버리게 생겼다”고 중얼거렸다.

주방기기 판매점 실장인 문모씨는 “전기세나 월세 등 고정비는 그대로인데, 매출은 30%가까이 줄었다”며 “코로나 이전 월 매출은 5000만원 정도였지만 지금은 3500만원 정도”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장사가 안되니 떠나는 사람들이 많다”고 덧붙였다.

벼랑 끝에 몰린 업체들은 한껏 신경이 날카로워진 상태다. 한 주방기기 판매점 대표는 기자에게 “정산할 것도 없다. 그냥 집에 들어갈 거니까 물어볼 필요가 없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또다른 가구점 대표는 “울며 겨자먹기로 붙들고 있는 것”이라며 “더이상 해줄 말이 없다”고 했다.

매출은 매달 줄어들고 있지만 가게를 정리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가지고 있는 물건과 가게가 팔려야 폐업이 가능한데 물건을 사줄 사람도, 이곳에 들어오겠다는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6개월 전에 가게를 내놨다는 김모씨는 “2평짜리 월 임대료가 150만원으로 비싸다”며 “물건을 사러 오는 사람도 없고, 가게를 보러 오는 사람도 없고, 문의도 없다”고 하소연했다. 주방기구가게 사장 신모(65)씨는 “인근 가게 3곳이 임대를 내놨는데 팔리지 않아 가격을 계속 내리는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한 가게는 결국 중고품을 모두 폐기 처분하고 가게만 팔기로 했다”고 말했다.

28일 오전 서울 중구 황학동 주방·가구거리임대를 내놓은 가게들. /송복규 기자

황학동주방가구거리상인회 소속 가게 140곳 중 5곳이 코로나 이후 폐업했다. 그러나 폐업 통계에는 잡히지 않고 문을 닫은 가게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종철 상인회장은 “상인회에 속하지 않은 가구점 등이 200개 이상인데, 이들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며 “폐업하고 싶어도 물건 처리 등이 곤란해 억지로 운영하는 가게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가 소상공인 지원을 하고 있지만 소비가 얼어붙어 황학동 거리는 당분간 지원을 받아도 회복이 어려워보인다”며 “소비가 살아나 개업하는 사람이 늘어 거리의 활력이 회복되길 기다릴뿐”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