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고 싶으면 계단에 신문지 깔고 앉아서 쉬죠. 그마저도 학생들이 혹여나 볼까 싶어서 지하 계단에 앉아서 쉬어요. 한여름에 비닐하우스 안에 있는 느낌이에요.”

지난 19일 서울대학교 관악학생생활관(기숙사)에서 만난 청소노동자 A씨는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훔치며 이렇게 말했다. A씨는 기숙사 한 동을 맡아 청소를 하고 있지만 건물 전체에 A씨를 위한 공간은 어디에도 없었다. 쉬는 시간도 딱히 정해져 있지 않아, 일하다가 힘이 들면 알아서 쉴 곳을 찾아 쉬어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A씨는 “1층 전면이 유리라서 한낮에는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를 만큼 덥다”며 “이런 데서 하루 종일 일하는데 마치 비닐하우스에 있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구역마다 휴게실이 있지만 수십개의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해야 하는 탓에 A씨는 “오가려면 무릎이 아프고 힘들어 점심을 먹을 때에나 이용한다”고 했다.

19일 방문한 서울대 기숙사. 이곳에서 근무하는 청소 노동자는 청소 용품과 쓰레기를 보관하는 장소에 목욕탕 의자를 두고 휴게 공간처럼 사용하고 있었다. /김효선 기자

지난달 26일 서울대 기숙사에서 근무하던 청소노동자 이모(59)씨가 휴게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기숙사 안전관리팀의 직장 내 괴롭힘이 원인으로 지적됐다. 이보다 앞서 지난 2019년 8월에는 서울대 공과대학에서 근무하던 60대 청소노동자가 휴게실에서 휴식을 취하던 중 숨졌다. 지하 1층 계단 아래 마련된 비좁은 휴게실엔 창문과 에어컨 없이 환풍기 한 개만 설치돼 있었다. 반복되는 사고에 대학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계단 아래, 주차장, 화장실 앞… 이름뿐인 휴게실

지난 19일 조선비즈 취재진이 직접 방문한 서울 소재 대학 4곳 중 3곳은 청소노동자 휴게실이 여전히 열악한 상태 그대로였다.

문제가 된 서울대의 경우 학교 측이 청소노동자 휴게실을 구역마다 마련했지만 점심시간에만 한정적으로 이용하는 분위기라 청소노동자들이 자체적으로 휴게실을 꾸리는 경우도 있었다. 기숙사에서 근무하고 있는 청소노동자 B씨는 청소용품 보관 창고를 휴게실로 이용하고 있다. 창고엔 빈 종이 상자와 플라스틱 쓰레기들이 쌓여있었고, 곳곳에 청소용품들이 늘어져있었다. B씨는 이곳에 목욕탕용 의자 하나를 갖다놓고 쉬고 있었다.

그는 “잠깐 쉴 곳이 없어 겨우 공간을 마련해 이렇게나마 쉰다”면서 “어디까지나 창고인 탓에 에어컨이나 선풍기가 없어 문을 열어둬야 한다”고 말했다.

동국대 한 강의동 건물의 청소노동자 휴게실은 지하 2층 계단 밑에 자리해있었다. 키 172cm인 기자가 허리를 다 펴지 못할 정도로 층고도 낮았다. /김효선 기자

동국대 한 강의동 건물에서 만난 50대 청소노동자 C씨는 “점심시간에 잠시 누워서 쉬려고 해도 ‘쿵쿵’ 울리는 계단 소리 때문에 마음 편히 쉴 수가 없다”고 말했다. 다섯 명의 청소노동자가 함께 쓰고 있다는 휴게실에 가보니 쪽방이 떠오를 정도로 층고가 낮고 비좁았다. 휴게실이 지하 1층 계단 바로 아래에 위치하고 있어 사람이 오갈 때마다 발소리가 들리기 일쑤였고, 창문 하나 없어 지하의 먼지를 그대로 들이마셔야 하는 구조였다.

C씨는 “요즘은 방학이고 비대면 수업 때문에 학생들의 왕래가 평소보다는 덜 한 편”이라면서 “이전에는 소음이 말도 안 되게 컸다. 학생들이 계단을 오르내리는 소리가 이 안에 있으면 몇 배로 더 크게 들린다. 휴게실 전체가 울릴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또 “요즘 같은 시국에 이 좁은 공간에 옹기종기 모여 쉬는 게 위험하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고령의 청소노동자는 이용하기 쉽지 않다. 이곳에서 일하는 70대 청소노동자 D씨는 “이 나이에 한 층 오르내리기도 쉽지 않은데 지하 2층까지 오면 다리가 너무 아파서 안된다”면서 “쉬고 싶으면 그냥 의자 하나 화장실 앞에 두고 앉아서 쉰다”고 말했다.

지난 19일 중앙대 기숙사 청소노동자 휴게실. /김효선 기자

중앙대 한 건물엔 지하주차장 2층에 휴게실이 마련돼 있었다. 차량 출입구 바로 앞에 위치한 탓에 자동차 소음이 이어졌고, 햇빛은커녕 창문조차 없는 이곳에는 환풍기 한 대만 겨우 돌아가고 있었다. 기숙사 청소노동자 휴게실은 지상에 위치하긴 했지만, 이마저도 온전한 휴식공간으로 보긴 어려웠다. 1층 화장실 바로 앞에 자리한 휴게실엔 책상 하나와 의자 몇 개가 전부였고 곳곳에 온갖 집기들이 쌓여있었다.

◇커지는 ‘휴게실 법제화’ 목소리… 전문가 “직고용도 방법”

더이상의 안타까운 사고를 막기 위해 휴게실 보장 등 청소노동자 처우 개선을 법제화해야 한다는 요구도 나온다.

지난달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는 ‘청소노동자들이 화장실에서 식사하지 않도록 휴게실을 보장할 것을 의무화해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왔다. 작성자는 “지금 정부청사나 대학과 같은 곳에서도 청소노동자들이 공공연하게 화장실에서 식사를 하는데, 도대체 사기업에서는 어떤 책임 있는 조치가 나오겠느냐”라며 “명목상 휴게실을 만들어놓고 접근성이 떨어지거나 공간이 부족해 근무시간 내에 사용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고 썼다.

이어 “청소노동자들이 화장실에서 식사하지 않도록 휴게실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것을 의무화해달라.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냉난방과 환기, 편의시설을 보장받도록 강제해달라”고 했다. 오는 21일 마감을 앞둔 이 청원은 이날 오전 10시 기준 총 23만655명이 동의했다.

중앙대 한 건물 지하 2층 주차장에 마련된 청소 노동자 휴게실. 차량 출입구 바로 앞에 위치한 탓에 자동차 소음이 이어졌고, 햇빛은커녕 창문조차 보이지 않는 이곳에는 환풍기 한 대만 겨우 돌아가고 있었다. /김효선 기자

대학 측은 청소노동자 휴게실 환경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서울대 관계자는 “휴게실을 구역마다 마련해뒀는데 점심시간을 제외한 잠깐의 휴식시간에 어디서 쉴지는 노동자 재량”이라면서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숙사 관련 인권센터 조사가 끝나고 휴게실 관련해서 미흡한 점이 나오면 적극적으로 개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동국대 관계자도 “청소 노동자의 휴게실이 너무 열악하다는 지적을 받은 것은 사실”이라며 “당장 휴게실을 증축하는 건 어렵겠지만 계속해서 발전해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청소노동자 처우 개선 법제화까지는 갈 길이 아직 멀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은 보편성을 가져야 하는데, 휴게실이 필요한 근로자는 경비원과 청소노동자 등 극히 일부 직군에 한정된다”며 “청소노동자 처우 개선의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휴게실을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는 내용의 법률을 제정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결국 법을 새로 만들기보다는 특수 상황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했다.

대학 측의 청소노동자 직고용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조혁진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일부분 국공립대학을 제외하고 보통의 대학에서는 대부분 간접고용하고 있다보니 처우 개선 등의 의무를 용역업체에 미루는 경향이 있다”며 “청소노동자를 간접고용한 상태에선 대학이 처우 개선 비용을 지출하는 것을 손해라고 여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 연구위원은 “휴게실 설치 등을 법적으로 의무화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직접고용을 통한 처우 개선이 하나의 대안이 될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