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총 17명의 사상자가 나온 광주 건물 붕괴사고와 관련해, 공사 과정에서 이른바 ‘다단계식 하도급’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에 따라 이번 사고 역시 인재(人災)였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면서 산업현장에서 고질적으로 지적되는 재하도급 관행을 뿌리뽑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0일 경찰 등에 따르면 전날 오후 4시 22분쯤,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4구역 재개발 부지에서 철거 작업이 진행 중이던 건물이 붕괴됐다. 5층 높이의 건물이 순식간에 무너져 인근 도로를 덮쳤고 정류장에 정차한 시내버스 1대가 잔해 아래에 깔렸다. 사고로 버스 승객 17명 가운데 9명이 숨지고 8명이 크게 다쳤다. 철거 작업에 투입됐던 인부들은 붕괴 직전 이상 징후를 알아채고 미리 대피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9일 오후 광주 동구 학동의 한 철거 작업 중이던 건물이 붕괴, 도로 위로 건물 잔해가 쏟아져 시내버스 등이 매몰됐다. 사진은 사고 현장에서 119 구조대원들이 구조 작업을 펼치는 모습. /연합뉴스

◇ “광주 건물붕괴, 불법 재하도급 있었다” 의혹 일파만파

광주 건물붕괴 사고도 불법 재하도급 공사에서 비롯한 인재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해당 주택재개발 정비사업을 추진하는 조합은 재하도급 계약 없이 시공사와 3개 철거업체만이 하도급 계약을 맺었다고 공고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자신을 하청업체 소속이라고 밝힌 한 공사 관계자는 다수의 작업자들이 원청→하도급→ 재하도급으로 이어지는 작업에 투입됐다고 증언했다.

시공사인 HDC현대산업개발의 정몽규 회장은 이날 오전 기자회견을 통해 “(하도급업체인)한솔기업과 계약 외 재하도급은 주지 않았다”며 “법에 위배되기 때문에 재하도급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의혹을 부인했다.

현행 건설산업기본법 제29조 4항에 따르면 하청업체의 재하도급은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다. 다만 종합건설업자가 전문공사를 위해 해당 전문건설업자에게 재하도급하는 등의 특수한 상황은 예외로 하고 있다. 전문건설업자가 시공 품질 향상을 위해 재하도급을 하는 경우에도 수급인(HDC현대산업개발)의 서면승낙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래픽=정다운

이를 위반할 시 발주자 등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과 함께 영업정지 또는 이에 갈음하는 과징금에 처해질 수 있다. 경찰은 불법 재하도급 여부를 수사하겠다는 방침이다.

◇ “산업현장 고질병… 발주자·시공사 책임 키워야 막는다”

다단계식 하도급으로 인한 인재 사고는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지만, 책임자들이 엄벌에 처해지는 경우는 드물다. 안전 관리 소홀로 재하도급 작업자가 목숨을 잃어도 원청 관계자에 대한 처벌은 벌금 수백만원이 전부다.

지난해 4월 재하도급 작업자 38명의 목숨을 앗아간 경기 이천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화재 사고가 대표적이다. 책임자들이 화재 예방에 대한 업무상 주의의무를 하지 않아 발생한 명백한 인재였다. 한익스프레스가 발주해 건우가 시공을 맡았고, 하도급업체와 재하도급업체 소속 작업자들이 건설 현장에 투입됐다.

건우 법인과 책임자 9명에 대한 1심 판결을 내린 법원에 따르면, 사고 당시 건우 측의 공사 기간 단축과 더불어 하도급업체에 의한 불법 재하도급이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재판부는 공기를 앞당긴 건우 소속 현장소장 A씨에게 징역 3년 6월, 같은 회사 관계자 B씨에게 금고 2년 3월, 감리단 관계자 C씨에게는 금고 1년 8월을 각각 선고했다. 한익스프레스 관계자 D씨는 금고 8월에 집행유예 2년, 무등록 상태로 업체를 운영하면서 불법 재하도급을 준 하도급업체 관계자는 벌금 700만원을 선고받았다. 건우 법인에는 벌금 3000만원, 나머지 피고인 4명에게는 무죄가 선고됐다.

지난해 경기 이천시 서희청소년문화센터에 마련된 이천 물류창고 공사장 화재 합동분향소에서 유가족들이 합동 추모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엔 안전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아 재하도급 근로자를 숨지게 한 하도급업체 임원들이 1심에서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다. 이들은 지난해 5월 17일 인천시 부평구 상수도관 교체를 위해 배관에 들어가 작업하던 용접공을 익사하게 한 혐의다. 이들은 작업자가 투입된 배관 내부로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막아주는 차단밸브의 안정성을 점검하지 않았고, 외부 감시인마저 배치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2019년 국토교통부 국정감사 과정에서 공개된 ‘5개년(2014년~2019년 8월) 불법하도급 적발현황’ 자료에 따르면 5년 동안 총 885건의 불법 하도급 사례가 적발됐다. 이 가운데 무등록 (재)하도급이 489건으로 가장 많았고, 일괄하도급(턴키 공사)이 174건, 동일업종간 하도급 112건, 재하도급 110건이었다.

전문가들은 “다단계 하도급이 관행으로 굳어진 건 결국 돈 때문”이라며 “재하도급을 근절할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병훈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하청을 줘야 이윤이 커지고 법을 안 지켜도 크게 문제되지 않으니 비슷한 사고가 반복되는 것”이라며 “이윤 극대화 과정에서 가장 먼저 삭감되는 건 안전 관련 비용이다. 그러다 보니 최대한 짧은 기간 안에 최대한 적은 인원으로 공사를 하는 것이 관행이 됐다”고 말했다.

다단계 하도급으로 인해 위험한 작업은 계속해서 ‘외주화’된다. 원청업체들은 안전사고의 책임을 회피함과 동시에 자신들의 재해 발생 정도를 줄여 산재보험료를 감면받는 등 이윤을 남긴다.

이 교수는 “처벌만이 능사는 아니지만, 기업들의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 만큼 따끔한 대책이 필요하다”며 “기업들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등에 대해 과도한 규제라고 주장하기 전에 안전사고를 막기 위한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