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저축만으로는 노후 대비는커녕 집도, 차도 살 수 없을 것 같아 주식 투자를 시작했다는 A(25)씨는 지난 20일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고 이같이 푸념했다. A씨는 지난해 말, 저축해둔 돈으로 미국 주식을 하다 수익을 냈고 종잣돈을 불려야겠다는 생각에 은행으로부터 2500만원을 대출받았다. 그러나 투자 실패로 투자금은 3분의 1 토막이 났다.

A씨는 ‘코인 붐’을 기회 삼으려 했지만 결국 대출금을 탕진했다. 그는 “빚을 갚겠다는 생각으로 남은 돈을 전부 가상화폐에 전부 투자했고 선물거래에까지 손을 대다 전부 잃었다”며 “대출 만기까지 7개월이 남았다. 오늘부터 배달 일을 시작하려 한다”고 했다.

일러스트=정다운

2030 청년층 사이에서 가상화폐 투자 광풍이 불고 있다. 취업난과 부동산 가격 상승 등으로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끊긴 청년들에게 가상화폐는 단숨에 큰 수익을 낼 수 있는 유일한 희망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권은희 국민의당 의원이 빗썸·업비트·코빗·코인원 등 주요 4대 거래소로부터 제출받은 투자자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 1분기 신규 가입자(249만5289명) 가운데 3분의 2가량이 2030세대였다. 20대가 32.7%(81만6039명)로 가장 많았고 30대가 30.8%(76만8775명)로 뒤를 이었다.

그러나 고공 행진을 거듭하던 가상화폐 시장은 최근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발언과 중국의 가상화폐 규제 등 악재가 맞물리면서 곤두박질치고 있다. 지난달 8000만원을 돌파한 비트코인 가격은 5000만원선을 오르내리고 있고, 이더리움과 도지코인 등도 이달초에 비해 30~40% 급락했다.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 업비트에 따르면 이날 오후 3시 30분 기준 가상화폐 시세는 대부분 약세를 보이고 있다. 비트코인이 4915만원이고, 이더리움 338만3000원, 에이다 2120원, 리플 1380원, 도지코인 480원 등이다.

18일 오전 서울 강남구 빗썸 강남센터 전광판에 비트코인 시세가 표시되고 있다. /연합뉴스

좀 더 풍족한 삶을 살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이라 여기고 가상화폐에 적극적으로 투자했던 청년들은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다.

최근 사고를 당해 하던 일을 그만뒀다는 B(33)씨 가상화폐 선물거래에 나섰다가 2000만원을 손해봤다고 했다. B씨는 “거의 전재산에 가까운 돈이었다”며 “돈은 벌지 못한 채 생활비만 빠져나가는 게 아까워 가상화폐에 투자했는데 있던 돈마저 날려버렸다”고 말했다.

대출금 2억원에 결혼자금까지 끌어모아 가상화폐 이오스를 샀다던 C씨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2주 만에 1억원이 날아갔다”며 “불면증에 우울증까지 겹쳤다”고 했다.

가상화폐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에 투자금을 잃은 사람들에게 10만원을 보내주겠다는 글이 올라오자 댓글과 게시글에 계좌번호가 올라와있다. /디시인사이드 캡처

급기야 가상화폐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엔 ‘급전’이 필요하다며 읍소하는 글이 매일같이 올라오고 있다 . 디시인사이드 비트코인 갤러리 등에는 “전재산을 날려 휴대전화 요금도 못 내게 생겼다. 1만원만 보내달라” “마진거래로 대출금과 전재산이었던 5000만원을 탕진했다. 도와달라” “이거면 흙수저 벗어날 수 있다고 해서 투자했더니 죽겠다. 살려달라”는 등의 글이 계좌번호와 함께 올라오고 있다.

실제 투자 중독 증상이나 우울증을 호소며 상담·의료기관을 찾는 사람들도 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에 따르면 지난 1~3월 비트코인과 주식투자 중독 관련 상담은 1362건으로 작년 같은 기간의 두배가 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