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은평구에서 치킨 프랜차이즈 가게를 운영 중인 김모(30)씨는 “같은 치킨 프랜차이즈인 동네 가게는 깃발 10개를 꽂았는데 우리는 가격이 부담스러워 5개 정도만 꽂았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깃발 광고 효과가 체감은 안 되지만, 배민이 다른 가게 깃발 위치를 알려주지 않으니, 서로 눈치 싸움을 하며 광고 경쟁을 이어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배달의 민족 '울트라콜' 광고. /배달의 민족 캡처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인한 배달 시장의 급성장으로 자영업자의 배달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는 가운데, 음식배달 앱 배달의 민족의 무제한 ‘깃발 꽂기’ 광고 허용으로 자영업자 간 광고 경쟁이 심해지고 있다. 업주들은 “배달의 민족만 실익을 챙기고 자영업자들은 광고비 부담을 떠안는 불리한 구조”라고 호소한다.

◇아무런 제한 없이 “광고비만 내면 OK”… 무한경쟁 내몰린 업주들

7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배달 앱 1위인 배달의 민족은 현재 ‘울트라콜’이라는 이름으로 광고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배달의 민족에 등록된 음식점 업주가 특정 지역에 ‘깃발’을 꽂으면 그 지역 이용자들의 앱 기본순서 정렬에 해당 가게가 노출되는 방식이다. 업주들이 배달의 민족의 광고 관리 사이트에 접속해 광고를 희망하는 지역의 주소를 입력하면 회사 측이 광고비를 받고 깃발을 꽂아주는 식이다.

깃발 하나당 광고비는 8만8000원이다. 보통 5~10곳에 깃발을 꽂는 점을 감안하면 매달 100만원 가까이 광고비가 지출될 수 있는 것이다.

배달의 민족을 이용 중인 40대 이모씨의 광고 현황. 가게 위치 인근 15개 지역에 깃발을 꽂은 모습. 해당 지역 이용자의 배달의 민족 앱에는 이씨 가게의 이름이 상단에 노출된다. /이신혜 인턴기자

업소당 깃발 개수 제한이 없는 탓에 비용만 낸다면 무제한으로 등록이 가능하다. 경쟁업체가 입점한 자리거나 실제 가게 주소와 거리가 먼 지역이어도 깃발을 꽂을 수 있다. 배달의 민족 관계자는 “다른 업체가 어디에 깃발을 꽂았는지는 공개되지 않으며, 깃발 꽂기와 관련한 규칙은 따로 없다”고 말했다.

이같은 방식의 광고비를 받는 건 주요 배달 앱 중 배달의 민족이 유일했다. 배달의 민족 경쟁사인 쿠팡이츠 역시 상위 노출 시스템이 있지만, 광고비를 받지 않고 자체적으로 별점, 조리시간 정확도, 주문량을 집계해 우선순위를 반영해 노출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 “배달 1위 앱인데…” 인건비보다 더 드는 광고비

여러 음식점 업주들은 경쟁업체들이 어디에 깃발을 꽂았는지 알 수 없는 데다 개수 제한도 없는 탓에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광고비를 지출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서울 마포구 홍대 인근에서 수제버거 가게를 운영 중인 신모(31)씨는 “깃발을 5개에서 10개로 늘리면 비용이 2배 이상 늘어나기 때문에 부담스럽다”면서도 “가게 운영을 하려면 10개 정도 깃발을 꽂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모든 업주들에게 부담스러운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은평구에서 프랜차이즈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40대 이모씨는 “배달의 민족 깃발 광고 비용으로만 130만원이 넘게 나가고 있다”며 “이 정도면 사람 한 명을 더 쓸 수 있는 인건비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지난 6일 자영업자 커뮤니티에 배달의 민족 깃발 꽂기 관련 고충 글이 올라와 있다. /네이버 카페 캡처

삼겹살 배달 가게를 운영 중인 김모(61)씨도 “깃발 광고비가 부담스럽지만, 안 하면 배달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라며 “경쟁업체는 깃발 10개를 꽂지만, 우리는 소상공인이라 3개 꽂는 것도 벅차다”고 했다. 그는 “매출이 높아서 광고비를 많이 내는 가게는 돈을 더 벌고, 그러지 못한 사람들은 광고도 뒤쳐지고 매출도 뒤쳐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고액의 광고비를 감당할 수 있는 대형 가게일수록 광고에 유리해 선순환이 발생하지만, 규모가 작은 가게일수록 광고에서마저 밀려나 경쟁에서 더욱 뒤쳐진다는 것이다.

◇소비자 “가까운 곳이 아닌 배달비 더 비싼 곳이 먼저 뜬다” 불편 호소

불만을 호소하기는 소비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배달지와 거리가 먼 가게가 상단에 먼저 올라와 배달비와 배달 시간을 더 소모하게 되는 등 혼란을 겪는다는 것이다.

배달의 민족에 특정 음식점 브랜드를 검색한 결과, 배달지와 거리가 가까운 순서가 아닌 먼 순서로 노출돼 있는 모습. /배달의 민족 캡처

깃발 꽂기는 지역과 무관하게 업주가 광고를 원하는 곳이라면 무제한으로 꽂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 종로구 광화문에 있는 가게가 7~8km 이상 멀리 떨어진 마포구 공덕, 서대문 등에 깃발을 꽂아도 마포구 지역 배달의 민족 이용자의 앱에는 광화문 가게가 먼저 노출될 수 있는 것이다.

또, 배달의 민족 앱은 음식 종류 선택시 소비자에게 ‘기본순’으로 음식점 목록을 먼저 보여주는데, 울트라콜 광고 업체들은 이 ‘기본순’ 정렬에 무작위로 배치되기 때문에 배달 지역과 먼 곳에 있는 음식점들이 먼저 제시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대구 소재 대학교 대학원에 재학 중인 최병휘(27)씨는 “서울에서만 살다가 대구에 처음 왔을 때는 어디가 가까운 곳인지 잘 몰라 맨 위에 뜨는 음식점에서 배달을 시켰다”며 “나중에 알고보니 집과는 거리가 먼 곳이었다. 지금껏 배달비를 추가로 부담해가며 멀리서 배달시켰던 셈”이라고 말했다.

서울 서초구 고속터미널 근처에서 근무 중인 직장인 강수진(26)씨는 “배달의 민족에서 점심식사를 주문하려고 하면 가까운 잠원점이나 반포점이 아니라 거리가 먼 논현점이나 교대점이 먼저 뜰 때가 있어 늘 주의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불만에 대해 배달의 민족 관계자는 “‘기본 순’은 업주들이 깃발을 꽂은 반경에서 가까운 순으로 노출되는 것은 맞지만, ‘배달비 낮은 순’이나 ‘배달이 빠른 순’으로도 볼 수 있는 등 기준이 많다”며 “지난해 4월에 깃발 개수를 3개로 제한하려고 헸으나 비판이 생겨 철회했다”고 설명했다.

김종민 전국가맹점주협의회 사무국장은 “배달의 민족과 무제한 깃발 꽂기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며 “깃발 꽂는 기준이 아니라 소비자와 가까운 거리순으로 우선 노출될 수 있도록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