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낮 12시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 인근의 한 패스트푸드점. 60대 남성 김모씨가 무인 계산대(키오스크) 앞에서 계산을 하지 못한 채 5분째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김씨는 “이런 나 자신이 몹시 부끄럽다”며 “무인 계산이 어려울 때 ‘도와달라’는 말 한 번 꺼내기가 쉽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젊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잠실의 한 패스트푸드점. /손민지 인턴기자

지난해부터 1년 넘게 이어진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비대면 문화가 일상화되면서 낯선 디지털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노인들이 불편함과 소외감을 호소하고 있다. 코로나 여파로 전국 대부분 매장에 QR코드 인증이 의무화된 데다, 최근 키오스크를 통해서만 주문을 받는 곳도 빠르게 증가해 노인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 “주문 하나도 못 해”… 무인 시스템 앞에 작아진 노인들

28일 한창 점심식사를 하려는 손님들이 몰리는 오후 12시 10분 잠실의 한 햄버거 가게. “주문은 뒤쪽 키오스크에서 해 달라”는 점원의 외침에 70대 노인 박윤배(가명·남)씨와 안기준(가명·남)씨는 어쩔 줄 몰라 했다. 이들은 “감자튀김과 사이다를 먹자”며 무인 계산대 앞에 섰지만, 취식 방식부터 할인·결제 방식까지, 선택 사항으로 가득 찬 결제 화면에 곤혹스러워했다. 심지어 박씨는 주변을 살피며 당황한 기색을 드러내더니, 이내 기자에게 작동법을 묻기도 했다.

박씨와 안씨는 “무인 계산대는 처음”이라며 “도와주는 사람이 없으면 주문을 못 할 수도 있겠다”고 말했다. 강남역이나 잠실역처럼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에는 안내 직원 없이 오로지 무인결제 시스템으로만 운영되는 곳도 많아 노인들은 아예 무인 시스템 사용을 포기하기도 했다.

강남역 인근의 한 영화관에서 만난 이모(70)씨는 키오스크 사용을 포기한 채 동행한 아들을 무인 계산대 앞에 세웠다. 이씨는 “기계로 계산하면 간편한 것을 마음으로는 아는데 몸이 안 따라준다”며 “물건 하나도 못 사는 노인이 된 게 느껴져 서럽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씨는 “영화관서 마실 음료 한 잔 시키려면 화면에서 선택해야 할 게 열 개는 된다”며 “깨알 같은 영화관 좌석을 고르는 화면은 어디가 어딘지도 모를 지경”이라고 하소연했다.

유명 프랜차이즈 카페나 대형 상점은 출입명부 없이 QR코드 기계만 있어 노인들은 출입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입을 모았다. 김모(60)씨는 “출입 명부 없이 QR코드 인증만 하는 곳은 들어가지도 못한다”면서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켜는 것도 어려운데, QR코드는 정해진 시간 안에 인증하지 않으면 화면이 꺼지기까지 해서 자신이 없다”고 했다. QR 체크인은 14초 안에 인증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화면이 꺼진다.

강남역 인근의 한 영화관. 영화관 매표소는 직원 없이 무인으로만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 /손민지 인턴기자

◇ 젊은 층도 키오스크 이용 어려운데 공감… “노인들 오죽하겠나”

젊은 세대들 역시 노인들이 비대면 주문 시스템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데 공감했다. 어린 시절부터 비대면 주문에 익숙한 중·고등학생은 “쉽다”는 반응이었지만, 20대 청년들만 해도 “비대면 주문 시스템이 낯설다”며 노인들의 하소연을 이해한다는 반응이 많았다.

직장인 허씨(28)는 “솔직히 젊은 사람도 ‘기계치’가 많은데, 어르신들은 오죽하겠느냐”며 “스마트폰이 회사마다 내부 구성이 통일된 것과 달리 키오스크는 매장마다 똑같은 형식이 아니기 때문에 가게마다 키오스크의 버튼 위치나 결제 순서가 제각각이라 새로운 기계를 다루는 기분”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허씨는 “현금 결제만 해도 어떤 곳은 키오스크로 가능하고, 어떤 곳은 현금 결제는 직원에게 부탁하라고 해서 젊은 사람들도 헷갈릴 정도”라고 말했다.

대학생 김씨(23)는 “나도 어려운데 부모님 세대만 해도 아예 못 다루시는 분들도 많다”며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아예 ‘그런 거 모른다’며 내게 필요한 건 심부름 시키신다”고 했다.

◇ 초고령 사회 ‘코앞’… 노인 친화적 사회 만들어야

코로나 사태로 비대면 시스템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노인 인구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어 디지털 격차는 한층 더 심화하고 있다.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올해 전체 인구에서 65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중은 16.5%로 지난 2017년보다 2.7%포인트 늘었다. 2025년에는 65세 이상의 고령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3%를 차지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사회가 디지털 격차를 줄이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IT에 익숙한 사람조차도 나이가 들면 사회적 변동에 적응하기 어렵다”면서 “새로운 기술은 끊임없이 나오는데 아무리 고령층이 노력해도 디지털 격차는 심화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설교수는 “변화하는 디지털 사회에서 소외된 노인들을 위한 기술적·사회적 배려가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도 “노인 중에서도 극빈층은 디지털 기기나 서비스에 더욱 취약해질 수밖에 없어 경제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면서 “노인 복지 센터에서 디지털 교육 프로그램도 활성화해야 디지털 격차를 줄일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