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반도체 회사의 핵심 기술을 중국으로 대거 빼돌린 전 삼성전자 부장 등 5명과 이들이 설립한 중국에 설립한 기업 신카이가 재판에 넘겨졌다.

삼성전자의 첨단 반도체 생산라인. 생산라인 근무 직원이 제품의 이상 유무를 살펴보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정보기술범죄수사부(이춘 부장검사)는 25일 국내 반도체 증착(반도체 표면에 막을 입혀 전기적 특성을 갖게 하는 핵심 공정) 장비 기술과 엔지니어들을 중국으로 빼돌려 장비 제작에 사용한 혐의(산업기술보호법·부정경쟁방지법 위반)로 삼성전자 출신 신카이 부사장 김모(56)씨와 방모(49) 장비설계팀장, 김모(44) 장비설계팀원, 신모(51) 전기팀장, 유모(45) 장비설계팀원 등 5명과 신카이 법인을 기소했다고 25일 밝혔다.

김씨 등은 2022년 2월부터 9월까지 재직 중이던 국내 회사에서 반도체 증착 장비 설계 기술 자료를 외부 서버로 유출하고, 중국 자본을 투자받아 신카이를 설립한 뒤 지난해 3∼6월 국내 기술 자료를 반도체 증착 장비 제작에 사용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에 따르면 김씨는 중국에 반도체 D램 제조 핵심 설비인 원자층증착장비(ALD) 개발에 성공한 회사가 없는 점을 이용해 중국 태양광 회사의 투자를 받아 중국에 신카이를 신설했다. 또 지인을 통해 여러 반도체 증착장비 회사의 분야별 전문가를 섭외한 뒤, 기존 연봉의 2배 이상과 신카이사 주식 배분을 약속하며 기술 유출과 이직을 설득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각자 재직하던 회사에서 접근할 수 있는 대부분의 기술 자료도 빼돌렸는데 그 규모가 수만건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수집된 자료는 공항에서 걸리지 않게 국내에 별도 서버를 구축해 저장한 뒤 중국에서 가상사설망(VPN)을 이용해 내려받았고, 중국 내 위장 회사와 고용계약을 맺어 영문 가명으로 활동했다.

김씨 등은 중국에서 불과 4개월 만에 ALD 장비 설계 도면을 작성해 제작에 들어갔다. 자료가 유출된 국내 반도체 회사들에선 총 736억원을 들여 관련 기술을 개발했는데, 이번 기술 유출로 연간 524억원의 손해가 우려된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생산 경쟁력 약화에 따른 반도체 산업 전반의 피해는 수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다.

검찰은 지난해 5월 수사에 착수해 지난해 7월 피고인들의 주거지와 협력회사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 해 이들 범행과 관련된 증거를 수집했다.

검찰 관계자는 “장비 제작 도중 검찰에 적발돼 개발이 중단됨으로써 중요 기술 유출 범행이 무위로 돌아갔다”며 “유출에 가담한 신카이의 중국인 대표 등을 피의자로 입건해 입국 시 즉시 수사할 수 있도록 했다”고 밝혔다. 이어 “신카이 법인도 기소해 추가 범행을 차단했다”고 설명했다.

검찰 관계자는 또 “반도체 증착장비 기술이 중국에 유출돼 동일·유사 품질의 반도체 제조공정 장비가 대량 생산될 경우, 국내 반도체 산업에 회복 불가능한 손해가 발생할 수 있었다”며 “적시에 국내 협력업체에서 제작 중이던 증착장비 모듈을 압수해 피해회사의 설계정보를 이용해 제작한 장비가 중국에서 유통되는 것을 차단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