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사가 여행사에 지급하는 항공권 발권 대행 수수료를 자유롭게 정해도 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앞서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는 항공사가 일방적으로 수수료를 정하게 한 규정 때문에 중소 여행사와 고객 피해가 크다고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 시정명령을 내렸다. 협회는 공정위 처분이 부당하다며 소송을 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협회에는 120여개국의 항공사 290곳이 가입돼 있다.

제주 기점 노선 항공편 운항이 재개된 24일 오전 제주국제공항 국내선 출발층에서 승객들이 셀프 체크인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행정7부(부장판사 김대웅 김상철 배상원)는 지난 1일 국제항공운송협회가 공정위를 상대로 낸 시정명령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하고 시정명령을 취소하라고 밝혔다.

발권 수수료를 둘러싼 분쟁은 국제항공운송협회에서 정하는 발권 수수료율 규정이 바뀌면서 시작됐다. 협회는 2007년 항공사가 여행사에 지급할 발권 수수료를 자유롭게 정할 수 있도록 규정을 바꿨다. 이전까지 발권 수수료율은 모든 항공사가 9%로 통일하도록 규정돼 있었지만, 항공사들이 담합을 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단일 수수료 규정은 폐지됐다.

규정이 바뀌자, 여행사들은 발권 수수료를 거의 지급받지 못하는 상황에 처했다. 국제항공운송협회에 가입된 항공사들이 수수료를 지속해서 인하한 탓이다. 대다수 항공사는 수수료를 0%로 정하기도 했다. 여행사들은 결국 이 같은 수수료 규정에 반발해 공정위에 심사를 청구했다.

공정위는 국제항공운송협회의 규정이 약관법에 위배된다며 시정명령을 내렸다. 약관법은 돈을 주고 받는 일에 대해 사업자가 일방적으로 결정하거나 변경할 수 있도록 권한을 갖지 못하도록 정하고 있는데, 협회의 규정은 사업자인 항공사에 이런 권한을 부여했다는 점에서다. 또 공정위는 해당 조항이 여행사에 불리한 ‘신의성실의 원칙을 위반한 공정성을 잃은’ 규정이라며 약관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이런 공정위 판단이 잘못됐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발권 수수료율을 항공사가 정할 수는 있지만, 정해진 수수료율로 계약을 체결 여부를 정하는 것은 결국 여행사이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항공사는 규정에 따라 원하는 수수료율을 항공권 판매 관련 통합 정산 시스템에 제시할 뿐, 결국 이 시스템에서 어떤 수수료를 제시한 항공사의 티켓을 판매할지 결정하는 것은 여행사이고 여행사도 각자의 판단에 따라 계약을 체결한다”며 항공사가 일방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또 재판부는 발권 수수료가 사라진 이유가 단순히 국제항공운송협회의 규정 때문으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21세기로 들어서면서 항공권의 형태가 실물 항공권에서 전자 항공권으로 바뀌었고 발권 시스템도 상당히 간소화됐다”며 “이로 인해 항공권 판매 대행에 지출되는 비용도 과거에 비해 상당히 감소돼 큰 비용이 들지 않게 되는 등 시장과 기술 환경이 변화했기 때문에 발권 수수료율 폐지 경향을 단순히 이 사건 약관 조항으로 인한 결과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이어 재판부는 “협회의 조항은 항공사들의 담합을 막기 위한 취지였지 여행사들에 불이익을 주기 위한 의도로 도입된 것으로 보기 어렵고, 여행사들이 항공사들이 제시한 발권 수수료율에 구속돼 계약 체결이 강제되는 것도 아니다”라며 공정위 처분이 부당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