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커뮤니티 캡쳐

‘스승의 은혜’는 옛말이 된지 오래다. 요즘 공교육 현장에 선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폭행당하거나 성희롱을 당해도 제지할 방법이 없다. 학과 수업은 사교육에 넘겨주고, 아이들이 잘못해도 바로잡을 수조차 없는 학교 교사들은 자신들이 “허수아비가 됐다”고 입을 모은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했고, 대책은 무엇인지 짚어보고자 한다.[편집자 주]

“선생님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만, 편법으로 아이들을 조지시면(호되게 때린다는 뜻) 저도 편법으로 선생님을 조질 수 있다는 것만 기억해 주시겠어요?”

지난해 온라인 공간을 뜨겁게 달군 문자 메시지 내용이다. 자신을 초등학교 교사라고 밝힌 한 커뮤니티 이용자가 새벽 1시 46분 학부모에게 협박성 메시지를 받았다고 토로했다.

학부모는 이 교사가 교과서를 안 가져온 학생들에게 ‘수업 시간 내내 서 있는’ 벌을 주겠다고 해 ‘아이가 경기를 일으켰다’고 주장했다. 글 작성자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며 학부모에게 정중하게 해명했다고 한다.

진위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운 커뮤니티 글이지만 당시 많은 네티즌들이 학부모의 행동에 경악했다. 새벽에 자녀의 담임 교사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낸다는 게 이해가 안 갈 뿐더러, ‘선생님을 조지겠다’는 위협도 상식을 한참 벗어났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비상식적 교권 침해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학생뿐 아니라 학부모 등 보호자에 의한 교권 침해도 우리 주변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교권을 보호하는 법이 있음에도 문제는 나날이 심각해지고 있다. 현행법의 한계 때문에 ‘아슬아슬하게 선을 넘나드는’ 교권 침해 행위는 처벌하거나 규제할 방도가 없다는 것이 그 원인 중 하나다.

◇의무 교육 과정 학생, 전학이 최고 수위의 벌

교사의 지위와 권리는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교원지위법)’으로 보장된다. 기존 ‘교원지위향상을 위한 특별법’을 2016년 개정해 만들었다.

이 법 제18조에는 교육활동 침해행위의 유형이 열거돼있다. 형법상 처벌 대상인 상해·폭행, 협박, 명예훼손, 그리고 성폭력, 음란물 등 불법정보 유통 행위 등이 여기에 속한다. 교육활동에 대해 반복적으로 부당하게 간섭하는 행위도 침해행위가 된다. 교사에게 반복적으로 문자 메시지를 보내 부당한 요구를 하는 것도 침해행위로 인정될 수 있다는 얘기다.

학생이 교권을 침해하면 학교 내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교권보호위원회가 처분을 결정하게 된다. 교내봉사·사회봉사·특별교육이나 심리치료·출석정지·학급교체·전학·퇴학처분이 가능하다. 문제는 그중 가장 강한 ‘퇴학 처분’이 의무교육과정에 있는 학생에게는 적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은 교사 폭행 같은 중대한 잘못을 저질러도 타 학교로 전학을 보내는 게 최고 수위의 벌인 셈이다.

실제로 최근 서울 양천구에서 담임 교사의 얼굴과 몸에 주먹질과 발길질을 한 초등학교 6학년생은 교권보호위원회의 결정으로 타 학교에 전학을 가게 됐다. 양천구내 초등학교의 한 학부모는 “걔(가해 학생)가 전학 가게 될 학교의 선생님이나 학생들은 대체 무슨 죄냐”며 “이런 경우엔 다른 사람들까지 불안에 떨게 만들지 말고 부모나 보호자가 집에서 직접 홈스쿨링을 하는 게 맞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키 160㎝ 초반대에 몸무게 70~80㎏ 초등학생 제자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한 교사. 전치 3주 상해와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진단 받았다. /SBS 뉴스

이태규 국민의힘 의원이 작년 8월 발의한 교원지위법 개정안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이 의원은 교권을 침해한 학생에 대한 조치 내용을 학교생활기록에 기입하자고 건의했다. 이 개정안에는 교육지원청이 시·군·구 교권보호위원회를 설치하는 내용도 포함돼있다. 법안은 1년이 다 돼가도록 계류 중이다.

교권보호위원회가 신속하게 열리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다 위원회 심의 전 피해 교사와 학생을 분리하는 ‘긴급 조치’가 불가능하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한석종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는 “어린 학생들이다보니 교사에게 전치 몇주의 상해를 입혀도 형사 처벌이 불가능해 교권보호위원회에서 처분을 결정하는 게 최선인데, 학교장이 학교 이미지에 영향을 받을까봐 위원회를 빨리 열지 않고 주저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재성 법률사무소 장우 변호사는 “학교폭력예방법에는 학폭위원회 개최 전에도 학교장이 먼저 가해 학생에 대한 출석 정지 등 긴급조치를 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지만, 교원지위법에는 그런 규정이 없어 피해 교사에 대한 특별 휴가나 배치 전환 등의 간접적 방법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며 이 부분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서정숙 국민의힘 의원이 작년 9월 발의한 교원지위법 개정안이 있으나, 역시 계류중이다. 서 의원은 학교장이 긴급하다고 인정할 경우 교육활동 침해 학생의 우선 출석 정지 등 조치를 취하고 학생이 이를 거부하거나 회피하면 징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건의한 바 있다.

◇교사 괴롭히는 학부모, 처벌도 어려워

더 큰 문제는 교권 침해가 학부모에 의해 이뤄질 때 드러난다. 학부모가 교사를 폭행하는 등 형법상 명백한 잘못을 저질렀다면 고소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면 되나, 실제로는 애매한 ‘경계선’에 놓여있는 사건이 많다.

박종민 서울동부교육지원청 변호사는 “형법상 공무집행방해나 업무방해를 적용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특히 국·공립 학교에서는 업무방해 범죄가 성립이 안 돼 공무집행방해죄만 적용 가능한데, 문제는 폭행이나 협박 수준은 돼야 공무집행으로 인정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밤 늦게 상습적으로 교사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거나 전화를 걸어 민원을 넣는 경우에도 ‘스토킹’으로 보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박 변호사는 “스토킹 범죄는 정당한 이유 없이 상대방을 괴롭힐 때 성립하는데, 학부모의 민원에는 어찌 됐든 ‘학생’이라는 명분이 있지 않냐”고 반문했다.

결국 학부모에게 피해를 입은 교사는 교원지위법에 기댈 수밖에 없는데, 여기에도 허점이 많다는 게 법조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현행 교원지위법상에는 학부모에게 직접 가할 수 있는 제재가 포함돼있지 않다. 학부모는 학교 구성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학부모의 교권 침해 행위로 인해 교권보호위원회가 열리더라도, 학교나 교사가 보호자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조치는 피해 교사의 치유나 회복에 필요한 비용 청구다.

교원지위법 제15조에 따라 피해 교사는 심리상담 및 조언, 치료와 요양 등의 보호조치를 받을 수 있다. 비용은 교육활동 침해행위를 한 학생의 보호자 등이 부담해야 하는데, 먼저 관할청이 부담하고 이에 대한 구상권을 학부모에게 행사할 수 있도록 돼있다. 다만 학부모가 끝까지 돈을 지불하지 않겠다고 버틴다면 민사소송을 걸 수밖에 없다.

이 변호사는 “구상권 청구 같은 건 사후적인 조치일뿐, 심각한 교권 침해가 발생하기 전에 미리 제대로 예방하는 게 중요하다”며 “스토킹 범죄에서 먼저 처벌 경고를 할 수 있듯, 교권지위법에도 학교장 명의로 서면 경고를 할 수 있는 조항을 넣는 게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변호사는 “학부모의 교권 침해 범위를 좀 더 넓히거나 구체화하고,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교육활동 침해행위 예방교육을 지금보다 더 활발히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