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손민균

와이즐리(와이즐리컴퍼니)는 면도기를 정기 배송해주는 스타트업이다. 2017년 설립 후 해외 주문자위탁생산(OEM)으로 제품을 공급받아 광고비를 줄이고 제품 가격을 낮추는 전략을 펼쳤다. 그런데 ‘잘나가던’ 이 회사가 창업 3년 만에 위기를 맞았다. 경쟁사인 도루코가 면도날 특허 침해 금지 소송을 제기하면서다.

도루코는 면도날을 기하학적으로 구부려 강성(剛性)을 높이고 면도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게 하는 특허를 보유했는데, 와이즐리가 유통하는 제품이 이 특허를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와이즐리가 특허 침해 금지 소송에서 패소할 경우 제품 공급에 차질을 빚을 뿐 아니라 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벼랑 끝에 서 있던 와이즐리를 도운 구원투수는 김앤장 법률사무소였다. 안웅(사법연수원 39기) 변호사와 김우석 변리사는 법무법인 광장(도루코 측 대리)에 맞서 완승을 거뒀다. 와이즐리의 특허 침해 여부 판결 전 도루코의 면도날 특허가 무효라는 판단을 받아낸 것이다.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김앤장 법률사무소 사무실에서 안 변호사와 김 변리사를 만나 소송전의 뒷얘기를 들어봤다.

◇ “면도날 구조 특허 침해”vs“자연스러운 모양”

면도기의 핵심은 면도날이다. 면도날이 두꺼우면 모발을 쉽게 자를 수 있지만 날 사이 간격이 좁아져 잔해물 제거가 어렵다. 반대로 면도날이 얇으면 간격이 넓어져 잔해물 제거가 쉽지만 굵은 모가 잘리지 않는다. 따라서 얇으면서도 면도가 잘 되고 간격이 적당한 면도날을 만드는 게 관건이다.

지난 2020년 10월, 도루코는 서울중앙지법에 와이즐리를 상대로 특허 침해 금지 소송을 제기했다. 도루코는 면도기를 기하학적으로 구부려 얇은 면도날을 적절한 간격으로 배치하는 특허를 보유하고 있었다. 면도할 때 가해지는 압력을 분산해 버티는 힘을 극대화하면서도 면도날이 쉽게 변형되지 않도록 하는 기술을 갖고 있었다. 와이즐리에서 유통하는 상품이 이 특허를 침해했다는 게 도루코 측 주장이었다.

와이즐리는 도루코의 특허 침해 금지 소송에 맞서 도루코의 기하학적 면도날 구조 자체가 무효라는 심판을 특허심판원에 청구했다. 특허 침해 금지 소송이 제기됐을 경우 특허 자체를 무효로 만드는 게 가장 빠른 해결책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와이즐리는 기하학적 면도날이 도루코만의 특허가 아니라 면도날을 구부렸을 때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모양이라고 반박했다.

특허심판원은 지난 2021년 8월 와이즐리의 손을 들어줬다. 도루코의 면도날 특허에 신규성이 없다고 봤다. 특허심판원은 “얇은 금속판을 절곡(折曲)하는 경우 전면부가 돌출하고 배면부가 오목하게 형성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물리 현상으로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사건을 넘겨받은 특허법원도 지난해 10월 와이즐리의 손을 들어줬다. 도루코의 면도날 특허에 이전 제품보다 진보된 부분이 없다고 봤다. 도루코는 상고를 포기했고, 결국 면도날 특허 무효가 확정됐다. 도루코가 처음 제기한 특허 침해 금지 소송의 첫 변론 기일이 오는 3월 열릴 예정이었지만 그 전에 특허 자체가 무효라는 판단을 받아낸 것이다.

왼쪽부터 김앤장 안웅 변호사, 김우석 변리사./김앤장 제공

◇ “질레트 등 시중에 비슷한 면도날 있어 특허 진보성 없다”

이번 사건의 쟁점은 특허법 제29조였다. 해당 조항은 특허의 요건으로 신규성과 진보성을 규정했다. 신규성은 기존에 없던 새로운 기술을, 진보성은 이전보다 진보된 기술을 뜻한다. 김앤장은 와이즐리를 대리하며 시중에 비슷한 모양의 면도날이 있어 진보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도루코 측에서는 면도날 특허에 진보성이 있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김앤장은 질레트 등 다른 면도기 업체들도 기하학적 구조의 면도날을 사용하고 있기에 도루코의 면도날 특허가 이전 기술에 비해 진보된 부분이 없다고 주장했다. 김 변리사는 “만약 도루코가 철판을 구부린 면도날을 세계 최초로 발명했다면 그것 자체로 특허를 보호할 가치가 있겠지만 금속을 구부려서 사용하는 면도날은 예전부터 많았다”며 “자연스럽게 금속을 구부리는 형상 자체가 특허가 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김앤장은 와이즐리가 면도기를 공급받는 해외 업체의 기술자들과 협력해 선행 문헌을 검토하고 질레트, 쉬크 등 글로벌 면도기 업체들이 어떤 특허를 냈는지 찾아보며 허점을 파고들었다. 안 변호사는 “면도날 특허와 관련된 선행 문헌을 찾아내 이전 기술보다 진보성이 없다는 이유로 무효 판단을 이끌어냈다”고 말했다.

면도날이 구부러지는 모습을 3차원(D) 동영상으로 제작해 재판부의 이해를 돕기도 했다. 안 변호사는 “네모난 철판이 자연스럽게 휘어지는 공학적인 동영상을 만들어 시각화된 자료로 변론했다”고 말했다.

안 변호사는 “스타트업이 시장에 진출하면 기존 업체들이 특허 소송을 제기하며 공격하는 경우가 있다”며 “이번 사건은 특허 소송에 잘 대처하며 전화위복으로 만든 사례”고 했다. 김 변리사는 “스타트업을 견제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특허 침해 금지 소송으로 판매를 금지하는 것”이라며 “구독 경제는 정해진 시간에 맞춰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데, 와이즐리는 다행히 소송에 맞서 도루코의 특허를 무효화함으로써 안전하게 사업을 영위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