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정다운

모르는 여성의 치마 속을 수차례에 걸쳐 불법 촬영했더라도, 경찰이 피의자 참여 없이 증거를 수집했다면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어 무죄로 봐야 한다는 대법 판결이 나왔다. 최근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아내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의 항소심 재판부도 이와 같은 취지로 휴게실 PC 등을 위법수집증거로 판단한 바 있다.

21일 법원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2018년 3월 10일 A씨는 안산시 단원구에서 마주친 여성 B씨의 치마 속을 촬영하기로 마음먹고 B씨를 따라다녔다. B씨가 여자 화장실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따라 들어간 A씨는 불법 촬영을 하려고 시도하다가 B씨에게 적발돼 미수에 그쳤다. 이후 A씨는 경찰에 넘겨졌다.

이에 수원지법 안산지원은 같은해 4월 5일 A씨의 범행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했다. 이에 경찰은 이틀 후인 같은달 7일, A씨의 휴대폰 2대를 압수해 디지털 증거분석을 했다. 그 결과 해당 사건과 관련한 사진이나 동영상은 없었고, 또 다른 불법 촬영 사진들을 다수 발견했다.

경찰은 A씨가 2018년 3월 9일과 4월 2일 사이 안산과 수원역 일대에서 총 24회에 걸쳐 신원이 특정되지 않은 여성들의 다리와 치마 속 신체 부위를 휴대전화로 촬영한 점을 파악했다. 이에 경찰은 별도의 압수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동영상을 탐색·출력했다. 이 과정에서 A씨의 참여 기회는 부여되지 않았다. 이후 A씨는 공소 사실에 대해 자백했다.

쟁점은 경찰이 확보한 동영상을 유죄의 증거로 사용할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됐다. A씨에 대한 혐의 사실과 단순 동종·유사 범행일 경우에도 ‘압수수색 영장의 범죄 혐의사실’과 관계있는 범죄로 볼 수 있는지도 주목됐다.

1심은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동영상이 형사소송법상 영장주의 원칙을 위반해 수집된 증거로서 위법수집증거에 해당하므로 증거 능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A씨의 증거 동의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유죄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별도의 범죄 혐의와 관련된 각 동영상을 우연히 발견한 경우에는 더 이상의 추가 탐색을 중단하고 별도 범죄 혐의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 받았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2심도 1심 판단을 유지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이 A씨의 휴대전화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의 범죄사실 중 일부와 동종 범행이지만, 각 동영상 파일은 영장에 기재된 범죄 사실과 구체적·개별적 연관 관계가 없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검찰의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은 “이 사건 각 동영상은 영장 혐의사실 기재 범행의 동기와 경위, 범행 수단과 방법, 범행 시간과 장소 등을 증명하기 위한 간접 증거나 정황 증거 등으로 사용될 수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며 “이 사건 각 동영상과 이 사건 영장 혐의사실 사이에 객관적 관련성은 인정된다”고 봤다.

그럼에도 대법은 “이 사건 각 동영상을 탐색·복제·출력하면서 A씨에게 참여권이 보장되지 않아 각 동영상을 유죄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면서 “A씨에게 참여권을 보장하지 않은 위법이 있는 이상 이 사건 각 동영상은 위법수집증거에 해당해 유죄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으므로 원심 판결에 영향이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