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차법 계약갱신청구권 소송과 관련해 사법부 판단이 엇갈리는 가운데 두달 여만에 동일한 사실관계를 두고 같은 법원(서울동부지법)에서 ‘정반대 판결’이 나와 논란이 예상된다. 앞선 판결(민사2단독)에선 임대차법 개정에 따른 구조적 결함을 지적하며 임대인 손을 들어준 반면, 이번 판결(민사17단독)에선 임대인의 실거주 목적은 “주관적 사유에 불과”하다며 임대인이 갱신 거절을 할 수 있도록 한 ‘예외 조항’을 사실상 무력화했다.

서울 중구 남산에서 바라본 용산, 강남 지역 아파트. /연합뉴스

◇前 집주인에 계약갱신 청구한 임차인

서울동부지법 민사 17단독 임범석 부장판사는 지난달 29일 서울 송파구 소재 아파트 소유권자인 A씨 부부가 임차인 B씨(이하 임차인)를 상대로 낸 건물인도 소송에서 원고 청구를 기각했다. A씨 부부는 현재 해당 아파트 주변에서 월세로 임시거주하고 있다.

2018년 12월 29일, 임차인 B씨는 당시 아파트 소유자인 C씨와 △보증금 10억원 △임대차 기간 2년(2019년 2월 26일부터 2021년 2월 25일까지) 조건으로 임대차 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2020년 9월 25일, 원고 A씨 부부는 C씨로부터 이 사건 아파트를 매수(계약금 납부)했다. 매매대금 16억5000만원에, 전세보증금 10억원을 A씨 부부가 인수하는 조건이었다. 이어 9월 29일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쳤다.

앞서 B씨는 소유권 등기 직전인 8월 28일자 문자메시지로 C씨에 계약 갱신 의사를 표했고, 10월 20일자 내용증명 등으로 재차 요구했다. 이에 A씨 부부도 각각 9월 29일자 문자메시지와 10월 14일자 내용증명으로 실거주 목적을 이유로 B씨에 ‘거절 의사’를 통보했다.

A씨 부부는 “개정 주택임대차보호법 제6조의3제1항 본문에 따라 계약갱신을 요구했고, 단서 8호 또는 9호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된다”며 “B씨가 아파트를 인도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B씨는 “A씨 부부의 갱신거절은 제6조의3 제1항 단서 각호에 해당되지 않는다”면서 “계약갱신요구에 따라 그 기간이 연장됐으므로 A씨 주장은 이유 없다”고 반박했다.

◇法 “실거주 목적, 임대인 사정만 고려한 ‘주관적 사유’”

쟁점은 실거주 목적(주택임대차보호법 제6조의3 제8호)으로 임대인이 아파트 양도를 요구했을때, 임차인이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며 이를 거절할 수 있는지 여부였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임대인 지위를 승계한 양수인의 실거주목적을 이유로 한 갱신거절이 개정 임대차보호법 제6조의3 제1항 단서 제8호와 9호의 사유에 해당하는지가 관건이었다.

재판부는 임대인 지위를 승계한 양수인인 A씨 부부가 실거주 목적을 이유로 갱신요구를 거절한 것은 개정 임대차법 제6조의3 제8호 ‘임대인이 목적 주택에 실제 거주하려는 경우’나 제9호의 ‘그밖에 임대차를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즉, A씨 부부를 임대인으로 보지 않은 것이다.

재판부는 “계약갱신 요구를 거절할 정당한 사유로 ‘실제 거주하려는 임대인’에 계약갱신의 의사표시가 도달된 이후에 (건물) 양수로 임대인 지위를 승계하는 양수인까지 포함시키는 것은 소유권 변동이 임차권의 존속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임대차법의 대항력을 인정한데 더해 갱신요구권 조항을 도입한 취지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는 지난 8월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부가 “실제 거주를 이유로 한 갱신 거절이 가능한지는 임차인이 계약갱신을 요구할 당시의 임대인만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며 세입자 승소 판결을 내린 것과 같은 취지로 풀이된다.)

특히 단서 제8호 ‘실거주 목적’에 대해서는 “‘임대인이 목적 주택에 실제 거주하려는 경우’로 임차인 측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임대인의 사정만을 고려한 주관적 사유 갱신요구기간 내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임대차관계의 존속에 영향이 없는 사유”라고 지적했다.

또 “갱신요구로 임대차계약이 갱신된 이후 소유권 변동이 있다면 더 이상 주장할 수 없는 사유”라며 “(만약) 양수인에게도 실거주목적의 갱신거절 사유를 인정한다면 결국에는 소유권 변동이 이미 형성된 임차권의 존속을 무효화하는 결과가 된다”고 판시했다.

이 같은 결과는 “양수인의 ‘실거주 목적’은 임대인 지위를 주택의 소유권과 결합시킨 주택임대차법의 근본 구조상 ‘부득이한 결과’로 판단된다”는 같은 지법 민사2단독 판결과는 180도 반대되는 판단이다. 특히 이번 판결은 재판부가 당초 9월 29일 예정돼 있던 선고를 “좀 더 고민을 해봐야겠다”며 한 달간 미뤘다가, 고심 끝에 나온 판결이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 받았다.

◇'판사 복불복?...’ “대법 판단 전까진 혼란 감당해야”

법조계에선 “개정 임대차법의 취지에 충실했다”는 반응도 있지만, ‘실거주 목적’이라는 예외 조항을 아예 무시한 판결이라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국회에서 입법을 잘못해놓고 해석을 ‘국토부 해설서’를 통해 시장에 강요하고 있는 꼴”이라며 “이는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볼 수 없었던 행태”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런 식으로 입법의 공백을 해설서로 덮고 시간이 지나면 시장이 거기에 적응하도록 만드는 방식은 한마디로 강압적이고 폭력적”이라고 덧붙였다.

결국 대법원 판례가 나오기 전까지는 ‘엇갈린 판결’에 대한 대가는 일반 서민들이 치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다른 변호사는 “동일한 사실관계를 두고 같은 법원에서 정반대 판결이 나왔다”면서 “판사 복불복도 아니고…한마디로 ‘어떤 판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승소나 패소가 결정되는 셈”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