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정다운

돈을 빌릴 당시 상환 능력이나 차용 조건과 관련해 허위 사실을 말하는 등의 행위가 없었다면 민사상 채무불이행에 해당될 뿐 형사상 사기죄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21일 법원에 따르면 대법원 제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원심판결 중 A씨의 사기 혐의에 대해 유죄로 본 부분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의정부지방법원에 돌려보냈다.

A씨는 2015년 2월 1일 모처에서 피해자에게 전화를 걸어 “돈을 융통할 곳이 없는데 2000만원만 빌려주면 한달 뒤인 2월말까지 값겠다”고 했다. 이에 피해자는 다음날 A씨 은행계좌로 2000만원을 송금했다.

당시 A씨의 월수입은 200만원이 되지 않았고 A씨 명의로 된 별다른 재산도 없는데다 약 3억5000만원의 채무를 부담하고 있었다.

이에 피해자는 A씨를 사기 혐의로 고소했는데, 1은 사기 혐의를 유죄로 판단하고 벌금 500만원을 명령했다.

1심은 “A씨는 이 사건 차용 당시 자력 부족으로 인해 차용금을 2015년 2월말경까지 변제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인식하면서도 그 차용을 감행함으로써 변제 불능의 위험을 용인하였던 것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면서 “A씨에게는 원심 판결 범죄사실 기재 사기죄에 관해 적어도 미필적 고의는 있었던 것”이라고 판단했다.

2심 역시 같은 취지로 유죄 판단하고, A씨 항고를 기각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원심을 깨고 다시 심리하라고 했다.

대법은 “사기죄가 성립하는지 여부는 행위 당시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면서 “소비대차 거래에서 차주가 돈을 빌릴 당시, 변제할 의사와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비록 그 후에 변제하지 않고 있더라도 이는 민사상 채무불이행에 불과하며 형사상 사기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이어 “돈을 빌릴 당시 구체적인 변제의사나 능력, 차용 조건 등과 관련해 소비대차 여부를 결정지을 수 있는 중요한 사항에 관해 허위사실을 말했다는 등의 다른 사정이 없다면, 그 후 돈을 제대로 갚지 못했다는 사실만을 가지고 변제능력에 관해 대주를 기망했다거나 차주에게 편취 범의가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