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 /우리금융 제공

“절대 손해 볼 일 없어요.” 우리은행 직원들이 독일 국채금리와 연계한 DLF(파생결합펀드)를 판매하면서 고객들에게 장담하며 건넨 말이다. 우리은행은 독일 국채금리가 -0.20% 이하로 내려가지 않으면 일정한 수익을 낼 수 있다며 판매하는 DLF에 대해 안전한 상품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2019년 독일 국채금리는 하락에 하락을 거듭했고, 결국 원금까지 잃은 투자자들이 거리로 나와 울부짖었다.

금융감독원은 펀드를 판매한 은행들을 줄줄이 징계했다. 금감원의 칼끝은 은행 수장들로 향했다. 그중 하나가 당시 우리은행장이었던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이다. 금감원은 대표가 총 책임을 져야 하는 이유로 ‘내부통제기준’ 마련 의무 위반을 꼽았다. 내부통제기준이란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금융회사 임직원이 일할 때 준수해야 할 기준과 절차를 뜻한다.

그러나 법원은 손 회장을 징계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봤다. 금감원은 우리은행이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기준을 마련하지 않았다고 봤지만, 법원은 우리은행의 내부통제 내용이 핵심적인 내용을 대부분 포함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운영 과정에서 다양한 부당 행위나 세세한 사항까지 미리 내다보고 내부 통제할 수는 없다고 봤다.

또 금융감독기관인 금감원이 내부통제기준을 실효성 있게 마련하라고만 했을 뿐, 세부적인 기준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우리은행측 주장도 사실상 받아들였다. 금융소비자들에게 피해를 준 불완전판매 사태의 책임이 어느 한쪽에만 있다는 것은 아니라는 취지다.

◇DLF사태 터지자...내부통제 ‘양호→실효성無’ 말 바꾼 금감원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강우찬·위수현·김송 부장판사)는 지난달 27일 손 회장이 제기한 ‘중징계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내부통제를 소홀히 했는지 여부는 (금감원) 제재 사유도 아니고 법리적 쟁점도 아니었다”면서 “우리은행 자체 내부규정에 흠결이 있는지가 재판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2020년 1월 손 회장은 금감원으로부터 “금융회사 지배구조법상 내부통제기준 미비로 DLF 사태를 막지 못했다”며 문책경고를 받았다.

금융회사 임원에 대한 제재 수위는 주의, 주의적 경고, 문책 경고, 직무 정지, 해임 권고 등 5단계로 나뉜다. 이 중 문책 경고, 직무 정지, 해임 권고 등은 3~5년간 금융사 취업이 제한되는 중징계로 분류된다. 사실상 금융권을 떠나야 하는 조치다.

그러자 손 회장은 금감원의 문책 경고 등 징계를 취소해달라며 소송을 냈다. 판결이 나올 때까지 징계 효력을 멈춰달라는 집행정지 신청도 냈다. 법무법인 화우는 두 건 모두 법률 대리해 가처분 신청 인용, 승소 판결까지 이끌었다.

금감원은 손 회장을 문책한 근거로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19조를 들었다. 금융회사 내부 통제가 ‘실효성’ 있게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규정이다. 하위 규정에 ▲금융사가 임직원이 업무를 수행할 때 준수해야 하는 절차 ▲임직원의 내부통제기준 준수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방법 등을 마련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특히 금감원은 금융회사 지배구조 감독규정 제11조 제2항 제4호의 “금융상품 판매 과정에서 금융소비자 보호 및 시장질서 유지 등을 위해 준수해야 할 업무절차에 대한 사항”이 내부통제기준에 포함돼야 한다고 봤다. 즉 우리은행의 경우 이러한 내용을 반영하고 있지 않다고 봤다.

이에 법무법인 화우 박정수(사법연수원 27기) 변호사는 내부통제기준을 실효성 있게 마련하라는 조항만 있을 뿐, 금융감독기관도 이에 관한 세부적인 기준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을 주목했다. 우리은행은 내부통제기준으로 방대한 내규를 제정했고, 금융상품 판매 과정에서 준수해야 할 업무절차에 관해서도 규정과 내규가 있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금감원이 2013년부터 평가해온 우리은행의 내부통제 평가등급의 “내부통제기준의 적정성” 항목은 모두 2등급(양호)이었지만, DLF 사태가 발생하자 돌연 금감원의 입장이 바뀐 점도 꼼꼼하게 파고들었다.

특히 화우는 금감원의 실효성 논리가 금융회사 내부적으로 ‘법령 준수, 경영 건전, 주주 등 보호’라는 목적 달성에 조금의 문제도 생기지 않도록 내부통제기준을 마련하라는 것이어서 사실상 불가능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변호사는 “결과가 발생한 뒤 ‘왜 이 문제를 막을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냐’는 질책은 법치 행정의 원칙에 정면으로 반하는 논리”라고 지적했다.

결국 재판부는 금감원이 잘못된 법리를 적용해 우리은행을 제재했다고 판단하면서 손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실효성의 개념이 승패를 가른 것이다. 금감원은 우리은행이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기준을 마련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우리은행의 내부통제 내용이 핵심적인 내용을 대부분 포함하고 있고, ‘세부적, 실무적 사항’까지 마련할 의무는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법인 화우 박정수 변호사. /법무법인 화우 제공

◇ 유사 선례 없던 재판, 화우의 키워드는 ‘침익적 행정처분’

금융회사의 내부통제 제도나 내부통제기준은 금융소비자 보호, 금융사고의 방지 등의 측면에서 중요하다. 이에 대한 유사한 선례마저 없었는데, 이번에 첫 판단이 나왔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손 회장의 소송은 각종 사모펀드 관련 징계를 받은 금융사 최고경영자(CEO) 중 첫 번째 불복 사례다. 재판부의 판단은 금감원이 비슷한 이유로 금융사 CEO들에게 내린 제재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금감원은 손 회장 처분 사유로 ▲상품선정위원회 생략 미비 ▲리스크 관리 미비 ▲상품선정위원회 운영 기준 미비 ▲투자자 권유 사유 정비 미비 ▲내부통제기준 점검체계 미비 등 5가지를 들었다.

재판부는 금감원 제재 사유 5건 중 4건은 무효라고 판단했다. “금감원이 잘못된 법리를 적용해 내부 통제 기준 마련 의무의 해석·적용을 그르친 잘못이 있다”고 본 것이다.

다만 법원은 이 중 세 번째 근거인 ‘금융상품 선정 절차 마련 의무 위반’ 만이 인정돼 위법하다고 판시했다. 우리은행은 형식적으로는 내부 통제를 위한 상품 선정 절차인 ‘상품선정위원회’를 마련했지만, 실질적으로는 9명의 위원에게 의결 결과를 통지하는 절차가 생략되는 문제가 있었다고 봤다. 이 때문에 상품선정위원회에서 출시 부서의 의도에 따라 수차례 투표 결과가 조작되거나 투표지가 위조되는 등 왜곡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금감원과의 치열한 법정 공방전에서 박 변호사는 ‘침익적 행정처분’ 규정에 주목했다. 행정처분의 근거 규정은 엄격하게 해석·적용해야 하고 처분 상대방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지나치게 확장 해석하거나 유추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조항에 따라 처분 사유들도 핵심적 내용이 담겼는지가 검토돼야 하고, 세부적인 내용을 가려내지 못했다고 문책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 조항을 바탕으로 금감원 제재 사유 5건 중 4건을 무효 판결로 이끌었다.

박 변호사는 화우 행정소송팀장을 맡고 있다. 주요 업무 분야는 행정소송, 조세 등이다. 2001년 대전지법 판사로 시작해 서울행정법원, 서울고등법원 판사, 대법원 재판연구원, 창원지법과 부산지법 부장판사, 의정부지법 부장판사, 서울남부지법 부장판사를 역임했다.

박 변호사는 “1심 판결에서 내부통제기준 마련 의무의 범위, 내용에 관한 합리적인 기준이 제시됐다”면서 “우리은행을 비롯한 금융회사들과 금융감독당국이 1심 판결이 제시한 기준에 따라 내부통제기준을 점검, 개선하고 내부통제 제도를 잘 운영하는 발전적, 생산적 모습을 보여 금융산업의 발전, 도약, 선진화의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