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캐터랩의 AI 챗봇 '이루다' 소개 문구. /조선DB

인공지능(AI) 챗봇 ‘이루다’의 개인정보 유출 논란이 법정 공방으로 이어지고 있다. 정부기구인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지난달말 이루다 개발사인 스캐터랩에 1억330만원의 과징금·과태료를 부과하는 등 정부 차원의 행정조치가 마무리되면서, 손해배상 청구 소송도 조만간 기일이 잡힐 것으로 보인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루다 개발사인 스캐터랩은 법무법인 태평양을 법률대리인에 선임해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법정 공방에 맞서고 있다. 앞서 법무법인 태림은 이루다 관련 개인정보 유출로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는 254명을 모아 서울동부지법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1인당 80만원씩, 소송 규모는 2억320만원에 달한다.

앞서 태림은 지난 1월 스캐터랩을 상대로 증거보전 신청 소송도 제기했다. 아직 손해배상 청구 소송은 첫 기일이 잡히지 않았지만, 증거보전 신청 소송은 태림과 태평양이 재판부에 서면을 내는 식으로 공방을 벌이고 있다.

아직 재판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건 아니지만, 법조계에서는 태림측에 유리한 결론이 날 것으로 전망한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지난달 28일 스캐터랩의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에 대한 책임을 물어 1억330만원의 과태료 및 과징금을 부과했기 때문이다.

배상호 개인정보위 조사2과장은 “과태료 및 과징금 산정은 ‘텍스트앳’과 ‘연애의 과학’ 평균 매출액 10억8000만원에서 산정한 것”이라며 “챗봇 ‘이루다’에서는 직접적인 매출액이 없었지만 텍스트앳과 연애의 과학 서비스 관리·운영 인력이 같아 같은 매출액이라 판정해 과징금·과태료를 부과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정부 차원에서 스캐터랩의 위법성을 인정했기 때문에 법원에서도 비슷한 취지의 결론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다만 254명의 피해자가 모두 손해배상을 받는 건 어려울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스캐터랩 측은 “문제의 소지가 있을만한 대화는 700만건 중 3~4건에 불과했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개인정보 보호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경우는 일부에 불과하다는 설명이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이루다 사태는 IT 기업의 AI 기술 개인정보 보호 위반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 처음 제재를 가한 사례인데다, 법원의 판단을 받는 것도 처음”이라며 “AI 기술 활용에 대한 기업의 책임을 어느정도 수준을 볼지 판단하는 가늠자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스캐터랩과 피해자들을 대리한 태평양과 태림의 관계에도 주목한다. 태림은 태평양 출신 변호사들이 2019년 만든 형사사건 전문 부티크펌(전문성을 갖춘 소규모 법무법인)이다. 태림의 창립 멤버인 유선경·정성훈 변호사 등이 태평양 출신이다. 태평양과 태평양 출신들이 만든 로펌의 대결이라 법조계에선 ‘태가네 형제의 싸움’으로 부르기도 한다.

태평양은 수원지방법원 지식재산권 전담부 판사 출신인 강태욱 변호사를 필두로 IT와 AI 전문 변호사들을 내세웠다. 삼성전자 법무실 출신의 김도엽 변호사, 태평양 AI팀의 마경태·이수진 변호사, 김도엽 변호사 등이 스캐터랩의 변호를 맡았다.

태림에선 김상현·신상민·하정림 변호사가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