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그룹 워크아웃의 핵심으로 꼽히는 종합환경기업 에코비트 매각전이 예상외 흥행 성공 조짐을 보이고 있다. 폐기물 매립 사업 가치를 과대계상해 시장 눈높이를 훌쩍 넘는 몸값을 내세워 국내 인수 후보자들로부터 외면을 받았지만, KDB산업은행이 인수자 자금조달 구원투수로 나서면서다.

서울 여의도 태영건설 본사 모습. /연합뉴스

24일 투자은행업계에 따르면 에코비트 매각 주관사인 UBS·씨티글로벌마켓증권은 22일 에코비트 원매자 10여곳을 대상으로 투자설명서(IM)를 발송했다. 여기에는 글로벌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블랙스톤, 블랙록, 그리고 국내 IMM인베스트먼트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IMM인베스트먼트는 인프라투자본부를 앞세워 뒤늦게 비밀유지계약(NDA)을 체결, 인수 검토에 나선 것으로 파악됐다. 또 매각 측이 매각 희망가 3조원을 고수하면서 인수 검토를 중단했던 일부 전략적투자자(SI)들도 최근 전략을 변경, IM을 수령했다.

앞서 LX인터내셔널과 SK에코플랜트 등 유력 인수 후보로 주목받았던 SI들이 높은 몸값에 인수 검토 철회를 택했던 것과 대조된다. 실제 UBS와 씨티글로벌마켓증권이 IM을 발송하기 전에는 매각 개요가 담긴 티저레터를 수령한 잠재 인수 후보가 글로벌 PEF 운용사 몇 군데밖에 없었다.

산업은행이 꺼낸 ‘스테이플 파이낸싱’이 분위기 반전으로 이어졌다. 스테이플 파이낸싱은 매각 측이 잠재 인수자를 대상으로 주선하는 인수금융을 말한다. 산업은행은 에코비트 매각의 원인이 된 태영건설의 주채권자다. 그런 만큼 스테이플 파이낸싱에 대한 잠재 인수 후보자들의 기대치는 높다.

시장에선 산업은행의 스테이플 파이낸싱이 3조원으로 책정된 에코비트의 실질 몸값을 낮추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산업은행이 스테이플 파이낸싱 규모를 최대 2조원으로 책정하고, 또 시장 수준보다 약 1% 낮은 금리로의 인수금융 주선을 검토한 것으로 전해졌기 때문이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LX인터내셔널과 국내 PEF들은 에코비트 인수가로 최대 2조원을 산정했다가 매각 측이 3조원을 고수하면서 매각 의사를 접었다”면서 “최근 거론되는 수준으로 인수금융이 지원될 경우 에코비트 인수자금 부담은 최대 천억원대가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뉴스1

금융업계에 따르면 현재 시중은행 기준 인수금융 금리는 6% 수준에 머물고 있다. 조달 금리나 자본력에서 앞서는 은행권의 주선 경쟁력이 반영된 것으로, 증권사는 6%대 후반에 달한다. 산업은행으로부터 5% 금리로 2조원을 빌릴 경우 연 200억원 비용을 낮출 수 있게 된다.

다만 일각에선 매각 성사를 위한 과도한 정책 지원이라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산업은행의 스테이플 파이낸싱은 매각 측이 희망하는 3조원 몸값을 그대로 고수하면서도 인수자의 인수 부담은 낮추는 효과를 내지만, 그만큼 산업은행의 혈세 지원이 동반될 수밖에 없는 탓이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매각이 불발될 경우 태영건설 기업개선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을 수 있다는 불안이 작용한 것”이라면서 “KKR이 산업은행 측에 스테이플 파이낸싱을 요청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편 에코비트 매각전을 둘러싸고 본격화했던 시중은행과 증권사들의 인수금융 주선 물밑 작업은 완전히 중단됐다. 내부 검토 정도로 알려졌던 산업은행의 스테이플 파이낸싱이 최근 확정, 시중은행과 증권사는 주선 경쟁력에서 밀릴 수밖에 없게 된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