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 주가가 1년 새 3배 넘게 뛰면서, 시가총액 2조달러(약 2660조원) 시대를 앞두고 있다. 미국 상장사 가운데 시가총액 2조달러를 넘어선 것은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뿐이다. 엔비디아 주식에 투자자들이 열광하는 배경으로 기술적 해자(垓字·독점 기술 등을 통한 경쟁우위)와 높은 성장성, 시장 확장 등이 꼽힌다.

2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26일(현지시각) 미국 나스닥시장에서 790.92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종가 기준 역대 최고가를 다시 한번 경신했다. 지난 23일 장 중엔 820달러대까지 뛰며 시가총액이 2조달러를 넘어서기도 했다. 엔비디아 주가는 최근 1년 동안 236.55%(555.91달러) 올랐고, 올해 들어서도 64.2%(309.24달러) 상승했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주가 상승률은 더 경이롭다. 엔비디아 주가는 2015년만 해도 4달러대로 그때와 비교하면 198배 급등했다.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는 제자리걸음(1.37배 상승) 하는 데 그쳤으니, 국내 주식 투자자들의 허탈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엔비디아 로고. /로이터·연합뉴스

엔비디아는 반도체 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팹리스 기업이다. 게임기와 가상자산 채굴, 인공지능(AI) 등에 쓰이는 그래픽 저장장치(GPU)가 주력 제품이다. 비트코인 테마가 붙든, AI가 인기든, 메타버스가 화제가 됐든 모조리 수혜를 휩쓰는 기업인 셈이다.

그중에서도 AI 테마는 특별하다. 챗GPT로 대표되는 생성형 인공지능 열풍이 불면서 GPU 수요가 폭증했다. 여러 개의 명령을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는 GPU를 많이 연결할수록 처리능력·속도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만큼 AI 학습에 유리하다.

AI 맞춤형 GPU를 선제적으로 개발한 엔비디아로 빅테크 기업들의 주문이 쏟아졌다. 가장 뛰어난 성능의 GPU H100은 물론 이전 모델인 A100도 주문 후 공급까지 수개월을 기다려야 할 만큼 품귀 현상을 빚었다. H100에 쓰이는 고대역폭메모리(HBM)를 공급하는 SK하이닉스(000660) 주가도 1년 새 80% 넘게 뛸 만큼 투자자들의 기대감을 높였다.

후발 주자와의 격차도 유지하고 있다. 엔비디아는 당장 올해 상반기 중으로 H100보다 2배 뛰어난 성능의 GPU H200를 출시할 예정이다. 차세대 GPU B100과 X100도 올해부터 2025년까지 차례로 선보이겠다는 청사진을 밝혔다.

기술적 해자는 엔비디아에 높은 이익을 안겨 왔다. 엔비디아의 영업이익률(영업이익 ÷ 매출)은 2023회계연도(2022년 2월~ 2023년 1월) 33.5%에서 2024년회계연도(2023년 2월~2024년 1월) 58%로 뛰어올랐다. 2024회계연도 4분기(2023년 11월~2024년 1월)만 놓고 보면 영업이익률이 66.7%에 달했다. 40%대인 인텔이나 AMD 등 다른 팹리스의 영업이익률을 크게 웃돌았다.

엔비디아가 시장의 기대치를 웃도는 성장성을 보여주는 점도 주가 상승의 불을 댕겼다. 엔비디아는 2025회계연도 1분기(2024년 2월~4월) 매출 전망치를 240억달러를 제시했는데, 시장의 예상치(219억달러)를 10% 가까이 웃도는 수준이다. 엔비디아는 그런데도 “매출 전망치를 보수적으로 책정했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그만큼 기업가치(밸류에이션) 고평가 논란에서 엔비디아가 자유롭다. 엔비디아의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시가총액 ÷ 순이익)은 지난해 60배를 넘기도 했으나, 주가 상승 폭보다 이익이 더 많이 늘어 현재 32.9배 수준이다. 엔비디아의 10년간 평균 12개월 선행 PER이 35배 수준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현재 주가가 지나치게 올랐다고 보기 어렵다.

이는 테슬라도 못 했던 성과다. 테슬라는 최고 PER이 1100배까지 올랐지만, 이익은 그만큼 따라잡지 못하면서 끊임없이 고평가 논란이 불거졌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테슬라는 12개월 선행 PER이 2022년 34배에서 지난해 57.8배로 뛰었는데, 해외 금융투자사들은 올해 67.9배까지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이익이 뒷받침되지 못하니 PER이 고공행진하는 것이다. 테슬라 주가는 올해 들어 내림세이지만, 지난해부터 가격 인하를 지렛대 삼아 수요를 확대하는 전략을 도입하면서 이익 하락 폭이 더 클 것으로 추정된다.

증권사들은 잇따라 엔비디아 목표주가를 높여 잡고 있다. 이른바 ‘버블(거품)’은 미래 예상 수익을 끌어왔다가 이를 달성하지 못할 때 급락하는 흐름을 보이는데, 현재까지 엔비디아는 실적이 기대감을 뒷받침하고 있어 자신감 있게 목표주가를 상향 조정하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증권(BofA Securities)은 지난 22일 엔비디아 목표주가를 800달러에서 925달러로 올리며 “엔비디아의 데이터센터 부문 매출 성장이 강력하고, 신제품이 2025년까지 성장세를 도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엔비디아 매출의 80%가 데이터센터 수요에서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클라우드 업체뿐만 아니라 금융, 제약·바이오 등으로 시장이 확장하고 있는 점도 주가 상승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발목을 잡을 것으로 예상됐던 중국 시장 축소 우려도 줄었다.

미국의 대(對)중국 반도체 제제에 따라 H100 등의 수출이 막히면서, 엔비디아의 데이터센터 매출 중 중국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20% 남짓에서 한 자릿수로 줄었다. 하지만 다른 시장이 이를 보완하고도 남는 수준이었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전 세계 국가들이 자국 언어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대규모 언어모델(LLM) 구축을 위해 AI 인프라에 투자하면서, 엔비디아가 중국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강력한 매출 성장세를 보였다”며 “엔비디아가 2025회계연도 1분기에도 데이터센터 부문 중국 시장 매출이 미드 싱글(4~6%)을 유지할 것이라고 발표한 점을 미뤄볼 때 시장의 우려만큼 중국향 매출이 줄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물론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투자은행(IB) D.A. 데이비슨의 길 루리아(Gil Luria) 애널리스트는 엔비디아에 대한 투자의견 ‘중립’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빅테크 기업들이 AI를 중심으로 거대한 인프라 구축에 나섰지만, 일단 구축이 끝나면 재투자 규모가 줄어들 수 있는 점과 다른 경쟁사가 엔비디아의 AI 칩을 대체할 제품을 선보이며 경쟁이 치열해지는 점을 위험 요소로 꼽았다.

또 GPU보다 연산 효율이 좋은 신경망처리장치(NPU)가 양산에 성공하면 엔비디아의 시장 점유율을 갉아먹을 수 있다는 관측이 있다. 장기적으로 인간 이상의 사고를 하는 범용인공지능(AGI) 시대가 도래하면 현재 GPU 칩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반도체업계의 새판 짜기가 치열해질 것이라는 점 역시 엔비디아에 도전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