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리 배송 차량 이미지. /컬리

지난해 초 상장을 중도 철회했던 컬리가 기업공개(IPO) 준비 작업에 다시 착수했다. 작년 12월 처음으로 흑자를 내자 청신호가 들어왔다고 판단한 것이다.

컬리는 최소 3조원의 기업가치를 기대하며 상장을 재추진하는 상황으로 알려졌다. 두 차례 대규모 투자를 집행했던 사모펀드(PEF) 운용사 앵커에쿼티파트너스 때문이다. 그러나 3조원은 시장의 눈높이와는 괴리가 커서, 원하는 몸값을 인정 받으려면 의미 있는 실적 개선세를 꾸준히 보여줘야 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13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컬리는 연내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에 상장 예비심사를 신청하기로 하고 대표주관사 NH투자증권·한국투자증권·JP모간과 논의 중이다. 가급적이면 올 하반기에라도 상장을 다시 추진하고 싶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컬리는 한때 기업가치 6조원을 바라볼 정도로 촉망 받는 커머스 플랫폼 업체였다. 그러나 금리가 오르고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지며 전세계 유니콘(기업가치가 1조원 이상인 비상장 스타트업)들의 몸값이 떨어지자 컬리의 기업가치도 급락했고, 결국 지난해 1월 상장 계획을 철회한 바 있다. 당시 시장에서는 컬리의 몸값이 8000억원까지 급락했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컬리가 중도 하차의 아픔을 딛고 상장에 다시 나설 수 있게 된 건 흑자 전환 덕분이다. 회사는 지난해 12월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 기준 흑자를 달성했다고 밝혔다. 설립 9년 만의 첫 흑자다.

IB 업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컬리가 작년에 거래소 심사에서 탈락해 상장을 못한 건 아니지 않느냐”며 “허들이 되는 가격을 못 맞춰서 상장을 철회했던 것인 만큼, 이번에는 그 허들을 맞출 수 있을지 조금 더 지켜보며 다시 한번 준비해 보자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가 말하는 ‘허들’이란 앵커가 투자했던 기업가치를 뜻한다. 컬리는 지난 2021년 기업가치 4조원을 인정받고 앵커로부터 2500억원을 투자받았다. 그러나 시장에서 원하는 몸값을 인정받기 어려워 상장을 철회했고, 자금난이 심해지자 앵커로부터 두 번째 투자를 유치했다. 지난해는 2조5000억원 몸값에 1200억원을 수혈받았다.

두 번의 투자 유치 당시 컬리가 앵커로부터 인정받은 기업가치의 평균치는 3조원대 초반이다. 앵커는 컬리 지분 10.87%를 보유한 2대주주인 만큼, 기업가치가 원하는 수준에 미달할 시 상장을 반대할 비토권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IB 업계에서는 3조원에 대해 “아직은 터무니 없는 숫자”라고 말한다. 현재 장외 가격이 7000억원에 불과한 데다, 흑자를 얼마나 더 지속할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컬리가 올 하반기에 상장 심사를 청구하고 싶다면, 적어도 6월까지 2분기 연속 EBITDA 흑자를 내고 그와 별도로 영업이익도 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파두 사태 이후 거래소의 심사 기준이 깐깐해진 만큼, 단기적 실적 개선만 갖고 향후 손익을 함부로 예측해 증권신고서에 기재할 순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EBITDA 흑자에 큰 의미를 부여해선 안 된다는 시각도 있다. EBITDA가 감가상각비를 차감하지 않은 값이기 때문에, 이를 지표로 활용하면 감가상각비를 의도적으로 늘리려고 불필요한 설비에 과잉 투자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또 EBITDA에는 재고자산이나 외상매출금 등 영업현금흐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항목들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는 한계도 있다.

한 회계사는 “이 때문에 EBITDA만 단독으로 활용하기보다는 이자 및 세전이익(EBIT)을 당기순이익이나 영업이익 등의 지표와 함께 사용해야 기업가치를 제대로 가늠해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