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 장기화로 전 세계 시중은행들의 대출 문턱은 낮아지지 않고 있지만, 글로벌 사모대출펀드(PDF·Private Debt Fund) 시장은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주요 사모펀드(PEF) 운용사들이 사모크레딧펀드(PCF) 운용사를 만들어 벤처 대출 시장에 뛰어들고 있어 주목된다.

일러스트=손민균

8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IMM PE(IMM크레딧앤솔루션), VIG파트너스(VIG얼터너티브크레딧 ), 글랜우드 PE(글랜우드크레딧), 스틱인베스트먼트(크레딧 본부) 등은 일찌감치 크레딧 펀드 시장에 진출해 새 먹거리를 물색 중이다. PE들은 특히 벤처 대출 시장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글랜우드크레딧은 설립 이후 처음으로 크레딧 전문 블라인드 펀드 조성에 나선 상태다. 최소 2000억원에서 최대 3000억원까지 자금을 모집해 펀드 결성을 마친다는 계획이다. 이는 우정사업본부가 지난 7월 ‘국내 메자닌 펀드 출자사업’의 앵커 출자자(LP)로 나서면서 가능했다. 우본은 글랜우드크레딧에 500억원을 출자했다. 자금의 80% 이상을 신주인수권부사채(BW), 전환사채(CB), 교환사채(EB) 등에 투자해야 한다는 조건이다.

IMM크레딧앤솔루션(ICS) 등 주요 하우스들도 벤처 대출 시장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IMM크레딧앤솔루션은 한 기관 출자사업에 참여하면서 투자설명서(IM)에 벤처 대출에 대한 내용을 포함하고 프레젠테이션(PT) 발표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IB업계의 한 관계자는 “여러 PE들이 LP들에게 벤처 대출의 유용성을 피력하고 있다”며 “사채 금리를 안정적으로 받으면서도 대출금의 일정 비율만큼 신주인수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향후 주식으로 기대 수익도 누릴 수 있어, 벤처 대출 전략을 선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주요 PE 중 벤처 대출 시장에서 가장 발빠른 행보를 보인 곳은 VIG얼터너티브크레딧이다. 지난해 6월 일찌감치 마이리얼트립이 발행한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벤처 대출 방식으로 인수했다. 사채 표면금리는 당시 인수금융 금리보다 2~3%포인트(p)가량 높게 설정했고, 신주인수권은 전체 사채 발행 금액의 20%만 받았다. 여기에 마이리얼트립이 다음 라운드 투자를 받으면 사채 원리금을 가장 먼저 상환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이는 미 실리콘밸리에서 흔히 사용하는 벤처 대출 구조다.

벤처 대출은 이자 부담은 있지만 에쿼티(지분) 투자와 달리 지분 희석이 당장 발생하지 않아, 대주주 지분율 하락을 우려하는 스타트업 창업자에게도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스타일 커머스 플랫폼 에이블리도 지난 3월 파인트리자산운용으로부터 500억원 규모의 벤처 대출을 받았다.

연준이 금리 인상을 멈추고 피봇(pivot·통화 정책의 방향 전환)을 한다면 크레딧 펀드가 매력을 잃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연준이 금리를 내린다 한들 예전(코로나19 팬데믹 때)과 같은 저금리는 다시 오기 힘들다”면서 “국내 연기금과 공제회에서도 크레딧 펀드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보고 출자를 늘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PE 관계자도 “금리가 내려간다고 해도 은행 대출은 기간이 길어야 2~3년인 데 반해, 벤처 대출은 1년도 가능하기 때문에 수요가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