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조원짜리 ‘공룡’ HMM(011200)을 놓고 세 원매자가 한판 승부를 벌이고 있는 가운데, 업계에서는 끊임없이 유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최종 후보에 오른 세 곳 모두 현금 동원 능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온 데다, 최근에는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이 “적격 인수자가 없으면 매각을 강행하지 않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현재 숏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세 곳은 업계의 우려대로 ‘부적격자’일 뿐일까. 본입찰까지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만큼, 이들이 HMM 인수 후보로서 가진 강점과 적격성 등을 다뤄봤다.

① M&A로 사업 확장…”HMM 인수는 꿈의 정점”

지주사 동원산업(006040)을 앞세워 HMM 인수전에 참전한 동원그룹은 HMM 인수 의지를 가장 강력하게 드러내고 있는 곳으로 꼽힌다. 동원그룹 창립자인 김재철 명예회장이 직접 나서 “동원그룹은 바다와 함께 성장해 온 기업”이라면서 “HMM 인수는 꿈의 정점”이라고 했다.

그래픽=손민균

참치캔으로 잘 알려진 동원그룹은 김 명예회장이 20대에 참치잡이 원양어선을 타면서 일궜다. 1969년 창업해 2003년 금융그룹(한국투자금융그룹)을 분리했고, 2000년대 중반부터는 국내외 시장에서 잇따라 인수합병(M&A)을 진행, 수산, 식품, 포장재, 물류 등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동원그룹은 2005년 유제품 제조사 디엠푸드 인수를 시작으로 총 17개 기업을 품었다. 특히 2010년대 후반에 들어선 화물 운송, 항만하역, 보관 등 사업을 갖춘 동부익스프레스(현 동원로엑스)와 물류 포워딩 기업 BIDC를 인수하며 물류를 강화했다.

동원그룹은 여기에 국적 원양 컨테이너선사인 HMM 인수로 국내 최대 해양기업을 이루겠다는 목표다. 동원산업이 이미 총 40척의 선단을 운용하는 글로벌 원양 회사(참치 선망 선단 규모 세계 1위)인 데다 지난 20여년간 M&A를 거듭하며 꾸준한 성장을 이뤄왔다는 자신도 깔렸다.

동원그룹 측은 “피인수 기업의 임직원을 동원그룹에 융합해 성장하는 ‘그로스 투게더’ 문화를 구축했다”면서 “스타키스트만해도 새우가 고래를 삼켰다는 평가가 나왔지만, 착실한 통합작업과 철저한 손익 중심의 영업으로 인수 반년 만에 흑자로 전환시킨 바 있다”고 말했다.

② “무리한 자금 조달은 없다”…자산 유동화 카드 다양

다만 업계에선 HMM은 그동안 동원산업이 추진한 M&A와는 사이즈가 다르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실제 HMM은 지난 6월 기준 컨테이너선 38척, 벌크선 21척을 갖춘 국내 최대 국적 컨테이너선사다. 선복량은 79만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로 세계 8위에 올라 있다.

특히 HMM은 작년 18조5868억원 매출에 9조9455억원 영업이익을 냈다. 같은 해 동원그룹은 9조263억원 매출을 올렸다. HMM 1년 영업이익이 동원그룹 전체 매출보다 많은 것으로, “스타키스트조차 고래였던 동원산업에 HMM 인수는 바다를 떠안는 일”이라는 평가조차 나온다.

IB업계에서 추정하는 HMM 매각가는 5조~7조원 수준이다. 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가 보유한 주식 3억9900만주(영구채 주식 전환분 포함)로 1일 종가(주당 1만4860원) 기준 시장 가치만 6조에 가깝다. 동원그룹의 17번 M&A에 들인 비용의 총합이 2조원 수준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산업계 불안도 크다. 해운업은 전형적인 ‘시클리컬’(cyclical·경기 사이클을 타는) 업종으로, 업황 악화 시기엔 적자가 불가피한데 이를 자산총액 7조원의 동원산업이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란 불안에서다. HMM은 2020년 흑자 전까지 10년간 적자를 내기도 했다.

동원그룹이 만약 무리하게 자금 조달을 추진했다가 시황 악화의 직격탄을 맞을 경우 ‘승자의 저주’에 빠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해운업계 한 관계자는 “HMM은 실적은 이미 뒷걸음치고 있다”면서 “컨테이너선 공급 증가 속에 해상운임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손민균

동원그룹은 “무리한 자금 조달은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동원산업의 올해 상반기 말 연결 기준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5169억원으로, 숏리스트에 오른 다른 2곳(하림, LX인터내셔널)보다도 적은 수준이지만, 자산을 유동화할 수 있는 카드가 다양하다는 판단에서다.

③ 동원그룹의 ‘히든카드’ 스타키스트 주목

동원그룹은 최대주주와 동원산업, 동원산업과 자회사, 자회사와 손자회사 간 지분 고리가 튼튼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올해 상반기 말 기준 최대주주 등 특수관계자의 동원산업 지분율은 자사주를 포함해 90%를 넘는다. 22.5% 규모의 자사주의 시장 가치만도 3200억원이다.

당장 동원산업의 해외 자회사이자 미국 내 참치 브랜드 1위 업체인 스타키스트의 역할이 주목받고 있다. 공정거래법 등 현행법에서 지주회사가 자회사와 공동으로 하나의 기업을 인수하지 못하게 하고 있지만, 해외 자회사는 지주회사의 행위제한 요건 적용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2008년 6월 동원산업이 3억6300만 달러에 지분 100%를 인수한 스타키스트는 올 상반기 말 기준 약 1조원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2009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누적 6837억원 당기순이익을 냈다. 동원그룹은 배당과 차입, 교환사채(EB) 발행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HMM을 인수할 때 동원산업과 동원F&B가 공동 출자할 수는 없지만, 동원산업과 스타키스트는 공동 출자할 수 있다”면서 “한화오션(옛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한 한화그룹도 앞서 한화컨버전스와 한화에너지의 해외 자회사를 적극적으로 이용했다”고 말했다.

동원그룹의 HMM 인수 재무 자문 역시 한화오션 인수 자문 경험이 있는 삼정KPMG가 맡았다. 동원그룹은 아울러 동원산업 지분 일부를 활용해 전환사채(CB)를 발행하거나, 2000억원대로 추정되는 동원F&B 강남 빌딩을 파는 등 자산 유동화 방안을 다각도로 추진하고 있다.

또 다른 IB업계 관계자는 “동원산업은 다른 후보들에 비해 부채비율이 낮다는 점 역시 강점으로 평가된다”면서 “동원산업의 지난 6월 말 기준 부채비율은 53%(별도 기준)로 지주회사 부채비율 제한인 200%를 크게 밑도는 것으로 추가 차입 여력이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④ 김남정 부회장 직접 주도…”스마트항만과 시너지”

동원그룹의 HMM 인수는 김 명예회장의 차남인 김남정 동원그룹 부회장이 주도하고 있다. 김 부회장은 통조림 공장 생산직, 영업사원을 거쳤다. 2014년 동원그룹 부회장을 맡으며 사실상 그룹 경영을 진두지휘했다. 동부익스프레스, BIDC 등 굵직한 M&A를 김 부회장이 주도했다.

김 부회장은 최근 HMM 인수 자금 조달 방안 검토는 물론 인수 후 경영 계획안 마련에 특히 힘을 쏟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HMM 매각에는 최고가 낙찰 원칙 외에도 인수자들의 자금 조달 계획, 인수 뒤 경영 계획, 해운업 발전 방안 등 3가지 항목 ‘정성적 지표’까지 반영된다.

김남정 동원그룹 부회장. /동원그룹 제공

조승환 해양수산부 장관은 지난달 30일 세종시의 한 식당에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재무 능력과 경영 능력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겠다”면서 “인수자의 해운산업에 대한 이해도와 향후 어떻게 발전시켜 나갈 것인지에 대한 계획도 평가 기준에 마련하고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동원그룹은 스마트항만을 활용한 항만 하역 효율화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동원그룹은 컨테이너 항만 사업을 하는 동원부산컨테이너터미널 지분도 100% 보유하고 있다. 또 부산 신항에 국내 최초로 완전 자동화 기술을 도입한 스마트 항만 ‘DGT부산’도 개장한다.

김 부회장은 지난달 19일 기자들과 만나 “앞으로의 해운업 발전은 누가(사업자가) 좋은 포트(항만)를 운영하느냐에 달렸다고 생각한다”면서 “동원그룹의 부산 스마트 항만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선박 효율화도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동원그룹은 최근 HMM 출신으로 지난해까지 SM상선을 이끈 박기훈 전 SM상선 대표를 고문으로 영입하기도 했다. 또 글로벌 컨설팅 기업인 ‘베인앤드컴퍼니’와 사업 자문 계약을 체결해 HMM의 발전 방안 등 계획을 세우고 있다. 법무법인 세종에서 법률 자문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