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의 ‘IPO(기업공개) 개선안’ 시행을 앞두고 공모주 투자자 간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그간 공모주는 수익률 대비 위험도가 낮은 투자처로 여겨졌는데, 상장 당일 주가 변동 폭이 커지면서 투자자 간 눈치싸움이 치열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우선 ‘따상’(시초가가 공모가 2배에서 형성 후 상한가 직행)이 사실상 사라지고, 공모주 투자에서도 손실 폭이 커질 수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과거처럼 따상만을 목적으로 시장가로 매수 주문을 넣을 경우, 공모가의 4배 가격에 주식을 사게 될 수도 있어 유의해야 한다.

일러스트=이은현

오는 26일부터 적정 공모가 선정에 방점이 찍힌 ‘상장 당일 가격변동폭 확대’ 조항이 시행된다. 지난해 12월 금융위원회가 ‘허수성 청약 방지 등 IPO 시장 건전성 제고 방안’을 발표했고, 한국거래소가 관련 시행세칙을 개정했다. 상장 당일, 신속하게 균형가격 발견 기능을 제고한다는 의도가 반영됐다.

현재 신규 상장 종목은 개장 30분 전 공모가의 90~200% 내에서 주문을 받아 개장 직후 시초가가 결정된다. 당일 시초가 기준으로 마이너스(-) 30%에서 플러스(+) 30%까지 가격제한폭이 적용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신규 상장한 A기업의 공모가가 한 주당 1만원이라면, 시초가는 9000~2만원에서 결정된다. 시가가 9000원에 결정돼 가격제한폭까지 떨어질 경우, 최저 6300원으로 장을 마치게 된다. 반대로 ‘따상’을 가면 2만6000원으로 마감한다.

그러나 이달 말부터는 현재 적용되는 시초가 기준이라는 개념이 사라지고, 공모가가 기준가격이 된다. 공모가 기준으로 60%에서 400% 사이에서 당일 주가가 움직이는 셈이다. 이 범위를 공모가 1만원인 A기업에 적용하면, 상장 당일 최저 6000원에서 최고 4만원 사이에서 시가부터 종가까지 모두 결정된다.

한국거래소 배포 자료 중 일부.

새로운 제도 도입을 앞두고 공모주 전문 기관투자자들은 긴장하는 분위기다. 공모가로 받아도 상장 당일에만 최대 40%까지 손실을 볼 수 있어서다. 그간 공모주는 저위험 투자처로 간주되곤 했다. 대다수 기관투자자는 시초가에 공모주를 파는데, 공모주 투자심리가 꺾여도 대체로는 시초가 최저선인 마이너스 10% 수준에서 정리할 수 있었다.

그간 기관투자자 자격으로 공모주에 투자하던 고액 자산가들의 투자 난도도 높아졌다. 고액 자산가 중에는 자산운용사, 투자자문사를 인수해 기관투자자 자격으로 공모주에 투자하는 이들이 있었다. 개인과 달리 기관투자자로 공모주에 청약할 경우, 증거금이 필요 없고 배정되는 물량도 많아서다. 시행세칙이 바뀌면, 공모주 배정 후 매매 역량이 중요해질 가능성이 있다.

소규모 투자자문사 관계자는 “그간 투자할 공모주를 고를 땐 기관투자자 수요예측 참여율, 희망 공모밴드에서 기관이 제시한 가격, 보호예수 기간별 기관 참여 비중 등을 참고하면 수익률이 높았고, 손해 보는 일이 거의 없었다”며 “상장 당일 매도 타이밍, 가격은 예측이 어려운 변수여서 기관 입장에서 투자 난도가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따상’은 사실상 사라질 전망이다. 어지간한 저평가 기업이 아닌 이상 기준가격이 공모가의 4배 수준까지 오르는 것은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엔 대다수 신규 상장 기업이 상장 직전 최대 기업가치를 인정받는 분위기다. 올해 들어서는 이미 따상 자체가 줄어든 상황이다. IPO 투자 열기가 한풀 꺾인 지난 4월 이후로는 신규 상장한 기업 중 시초가가 공모가의 2배에서 결정된 기업은 기가비스가 유일했다.

따상 후 연상을 노리던 개인투자자들의 주문 실수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공모주는 장 시작 전에는 시장가 매수 주문을 넣을 수 없지만, 개장 이후에는 가능하다. 9시 이후 기존처럼 시장가에 매수 주문을 넣을 경우 공모가의 4배 가격에 주식을 사게 될 수 있다. 시행세칙이 바뀌면 시가는 지정가호가로 결정되는데, 매매 기술이 필요한 전문가의 영역으로 취급된다. 극단적인 사례를 가정하면 공모가 1만원 기준으로 최고가인 4만원에 매수했다가 최저 6000원까지 떨어지면, 당일 85% 손실을 입게 된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현재는 정해지는 시초가 수준에서 과도한 거래량이 발생하곤 하는데, 이렇게 가격을 왜곡하는 과정이 없어지면서 장기적으로 합리적인 시장 형성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며 “당장 제도가 바뀌면서 투자자들도 적응이 어렵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적응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