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찾은 충남 아산 스마트밸리 산업단지에 있는 엔시스(333620) 공장. 이곳은 엔시스가 지난해 167억원을 투자해 대지 면적 1만4600㎡ 지은 신규 공장이다. 신발을 벗고 제품 생산이 이뤄지고 있는 공장 안으로 들어가 보니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등 제품이 납품될 업체명이 적혀진 팻말 뒤로 장비 여러대가 조립되고 있었다. 성인 허리 정도 높이에 카메라와 조명 등이 장착된 긴 가로 바(막대기) 형태의 검사 장비는 물론 성인 키를 훌쩍 넘는 대형 검사 장비 등 종류가 다양했다.

별도의 작업 공간에서는 엔시스가 고객사와 함께 연구·개발하고 있는 파일럿(초기 시험용) 검사장비의 테스트가 이뤄지고 있었다. 2차전지 핵심 소재인 하얀 분리막을 검사하는 장비도 눈에 띄었다. 진승언 엔시스 전무는 “2차전지 생산 업체들이 완제품은 물론 동박이나 분리막도 직접 검사하고 싶어 한다”며 “검사장비 매출이 완제품에서 소재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엔시스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양극재·음극재 등 2차전지 원단부터 모듈·팩 등 완제품까지 전 공정에서 불량을 검사할 수 있는 장비를 생산하는 업체다.

2차전지 검사장비를 생산하는 엔시스 아산 공장 모습./연선옥 기자

LG산전(지금 엘에스일렉트릭) 엔지니어 출신인 진기수 대표가 2006년 설립한 엔시스는 머신비전(카메라와 영상인식 알고리즘이 사람의 눈과 뇌를 대체해 제품을 검사하는 시스템) 분야 전문성이 높은 기업이다. 처음 PDP(플라즈마디스플레이패널)와 LCD(액정표시장치) 분야로 시작해 태양광 셀·모듈 검사장비로 사업을 넓혔는데, 중국산 저가 제품이 쏟아지면서 핵심 사업을 2차전지로 전환했다.

2차전지 검사장비는 카메라로 제품 이미지를 인식해 제품 상태를 분석하고 품질을 판단하는 장비다. 사람이 맨눈으로 검출하던 제품의 불량을 카메라와 조명, 렌즈 등 광학계를 이용해 빠르고 정확하게 검출하는 시스템으로, 생산 효율성을 높이는 것은 물론 제품의 완전성과 안전성,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한 필수 공정이다. 일반적으로 2차전지 제조 업체의 초기 수율(생산품 중 정상품 비율)은 60%에서 시작해, 90% 수준으로 높여야 수익을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엔시스 검사장비는 제품 불량을 99%까지 잡아낼 수 있다고 한다.

현재 엔시스 경영을 총괄하고 있는 진 대표의 아들 진승언 전무는 “현재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분야 투자가 축소·지연되면서 관련 검사장비 업체들이 2차전지 분야로 많이 진출하고 있다”면서도 “엔시스는 2009년부터 지금까지 15년 동안 2차전지 검사장비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제조공법 역사와 노하우를 축적해 왔고, 고객사와 긴밀하게 협력하면서 향후 제품 개발 방향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한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진승언 엔시스 전무.

특히 엔시스는 단순히 불량을 인식하는 검사장비(하드웨어)를 생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판단하는 알고리즘(소프트웨어)도 직접 개발하고 있다. 150여명의 직원 중 60명 정도가 소프트웨어 담당 조직인 ‘비전그룹’ 소속이다. 진 전무는 “큰 관점에서 보면 검사장비는 스마트팩토리의 핵심 솔루션 중 하나”라며 “무인 자동화 시장에 상당한 투자가 이뤄지고 있는 만큼 회사가 관련 분야에서 더 적극적으로 역할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지금은 LG에너지솔루션(373220)삼성SDI(006400)가 주요 고객사이지만 올해부터는 미국과 유럽 업체로 고객사가 확대될 예정이다. 미국 전기차 업체 리비안과 협력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고, 노르웨이 2차전지 업체 모로우배터리(Morrow Batteries)로부터 제품 수주도 기대된다. LG에너지솔루션이 현대차(005380)와 합작공장을 세우고 있는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관련 투자가 확대되면서 엔시스는 이 시장도 공략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2차전지 장비업체 갑진에 지분 투자를 결정하면서 사업 범위도 확대했다. 갑진은 삼성SDI와 SK온뿐 아니라 해외 배터리 스타트업에 2차전지 활성화 공정을 턴키(일괄 수주) 방식으로 수주한 전문 업체다. 엔시스는 갑진에 100억원을 투자했는데, 이후 양사는 상당한 규모의 활성화 공정 설비와 검사장비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그래픽=손민균

최근 글로벌 전기차 판매가 주춤하고 있지만, 2차전지 수요가 꾸준히 늘어나면서 엔시스 실적도 개선되고 있다. 2019년 320억원 수준이던 매출액은 2021년 430억원으로 늘었고, 올해는 7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영업이익 규모는 2019년 37억원에서 2021년 77억원으로 증가했다. 증권사에 근무하던 진 전무가 2017년 3월 처음 입사했을 당시 엔시스의 매출원가율이 95%에 달했지만, 최근에는 이를 78%(지난해 3분기 기준) 수준으로 낮췄다.

최근 고용이 늘어나면서 고정 비용 부담이 늘었지만, 영업이익률은 20% 안팎을 기록하고 있다. 진 전무는 “매년 고용이 15~20% 늘어나고 있어 매출액 대비 고정 비용이 많이 발생하고 있는데, 그만큼 노하우가 쌓인 인력을 확보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엔시스는 미국과 동유럽 등 해외 시장으로 수주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관련 인력을 적극적으로 채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