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레고랜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사태로 부동산 시장이 한층 더 얼어붙으면서 리츠(REITs·부동산 투자 신탁 회사)도 휘청대고 있다. 다만 리츠별로 손실 규모는 엇갈렸는데 수도권 외곽 물류센터나 백화점에 투자한 리츠는 폭락한 반면 서울 도심 오피스나 주유소 등을 담은 리츠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흐름을 유지했다.

24일 ESR켄달스퀘어리츠는 전날보다 20원(0.6%) 하락한 3330원에 거래를 마쳤다. ESR켄달스퀘어리츠는 이번 달 들어 첫 거래일인 4일 하루를 제외하고 13거래일 내내 하락 마감했다. 이 기간 주가는 34.06% 빠졌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ESR켄달스퀘어리츠는 이달 기준 유가증권 시장에서 두 번째로 낙폭이 큰 종목에 해당된다.

ESR켄달스퀘어리츠는 물류센터에 투자하는 대표적인 리츠 중 하나로 수도권과 지방의 물류센터를 주요 자산으로 편입하고 있다. 시가총액은 7096억원으로 롯데리츠(9002억원), SK리츠(8678억원), 제이알글로벌리츠(7747억원) 뒤를 잇는다. 국내 상장 리츠 21개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규모다. 운용자산은 2조3239억원으로 롯데리츠(2조3737억원) 다음으로 규모가 크다.

그래픽=이은현

최근 ESR켄달스퀘어를 비롯한 리츠는 금리 급등과 부동산 시장 위축으로 연일 낙폭을 키우고 있다. 통상 리츠는 안정적인 배당과 낮은 가격 변동성을 앞세운 대표적인 인플레이션 방어주로 꼽힌다. 지금처럼 금리가 오르는 시기에는 대출을 받아 신규 자산에 투자하는 리츠 특성상 자금 조달 비용이 늘어 수익률과 배당 여력에 대한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다.

강원도 레고랜드 ABCP 채무불이행(디폴트) 사태로 인한 부동산 시장 위축도 리츠 투자심리를 짓눌렀다. 레고랜드 사태는 강원도가 2050억원 규모 ABCP 보증 이행을 거부해 부도 처리되면서 촉발된 사건이다. 사실상 최고 신용등급으로 여겨지는 지자체가 보증한 ABCP가 지급 불능에 빠진 것은 처음 있는 일로 단기 자금 시장은 물론 회사채, 국채 시장이 일제히 충격에 빠졌다.

같은 기간 NH올원리츠는 31.1% 빠졌고, 디앤디플랫폼리츠(-25.51%), 롯데리츠(-24.39%), 마스턴프리미어리츠(-23.15%), 신한서부엔디리츠(-20.95%), 미래에셋글로벌리츠(-20.49%)가 줄줄이 20% 넘게 하락했다. ESR켄달스퀘어리츠와 마찬가지로 수도권 물류센터, 백화점 등 리테일 부동산을 주요 자산으로 담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마찬가지로 주가는 빠졌지만, 낙폭이 10%를 밑돌며 상대적으로 양호한 흐름을 보인 리츠도 있다. 모두투어리츠(-9.88%), NH프라임리츠(-9.65%), 코람코더원리츠(-8.58%), 코람코에너지리츠(-8.48%), 이지스밸류리츠(-7.50%)다. NH프라임리츠의 경우 이지스자산운용이 지난 13일 93만4388주를 투자하기도 했다. 전체 주식 수의 5.01%에 해당하는 규모다.

지난 23일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도심. /권유정 기자

상대적으로 선방한 리츠들의 특징은 서울 도심 오피스나 주유소 투자했다는 점이다. 코람코에너지플러스리츠는 전국 187개 주유소를 기초자산으로 2020년 8월 상장한 리츠다. NH프라임리츠와 이지스밸류리츠, 코람코더원리츠는 종로·중구, 강남, 여의도 등 서울 시내 주요 오피스에 투자하고 있다. 모두투어리츠만 명동 소재 호텔을 주요 자산으로 담고 있다.

배상영 대신증권 연구원은 “기초자산에 대한 우려가 부동산 시장 거래에서 현실화되고 있다”며 “최근 여의도 IFC 매각이 불발된 세부적인 원인은 다양할 수 있지만, 기저에는 금리 상승이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반면 오피스 임대 시장 자체는 견조한 편”이라며 “낮은 공실률과 꾸준한 임대료 성장은 금리 안정세 이후 투자를 결정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미숙 KB증권 연구원은 “상업용 부동산 자산 중에서 오피스는 투자자들 사이에서 가장 견조한 자산으로 평가받는다”면서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오피스 수요가 회복되는 지역도 있고, 일부 도시의 경우 오피스의 임차 및 투자 수요가 여전히 증가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신중한 투자 행보가 이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증권가에서는 레고랜드발(發) 불안이 촉발한 리츠에 대한 시장 우려는 과도하다고 평가했다. 리츠는 지속적인 배당 역량을 중시하는 만큼 임차인과 자산의 안정화 여부가 인가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 단순 금리 상승으로 인한 비용 부담 리스크, 부동산 가치 하락, 금융 시장 불안이 맞물리며 극단적 밸류에이션 하락을 유발했다는 지적이다.

이경자 삼성증권 연구원은 “대체로 리츠들의 차입 만기는 2023년부터 점차 도래하기 시작해 2024년부터 비중이 증가하는 만큼 현재 우려는 과도하다고 판단된다”며 “채무상환비율(DSCR) 역시 평균 3배에 형성돼 있어 대부분의 대출 약정 조건인 1.2~1.5배를 크게 웃도는 안정적인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주요 리츠 대부분이 자산 편입을 위한 유상증자는 없고, 기존 자산 관리를 통한 임대료 인상에 전력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