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기업공개(IPO) 시장이 침체하면서 기업인수목적회사(스팩) 상장이 급증하고 있다. 기업가치를 높게 받기 어려워지면서 다수 비상장사들이 증시 입성을 꺼리자 증권사들이 우선 스팩부터 상장시켜 공모자금을 확보하고, 시장 상황에 대응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하반기에도 IPO 시장 침체가 예상되면서 스팩 상장이 더욱 활발해질 전망이다.

일러스트=정다운

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들어 국내 증시에 입성한 스팩은 총 20개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12개 스팩이 상장한 것과 비교하면 66% 늘어난 수치다. 이달 IBKS스팩19호, 신영스팩8호, 하나금융스팩24호 등도 기관투자자 대상 수요예측을 앞두고 있어 연내 신규 상장할 스팩 수는 더욱 늘어날 예정이다.

스팩은 비상장 우량기업을 발굴해 인수합병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일종의 페이퍼 컴퍼니를 의미한다. 공모로 액면가에 신주를 발행하며, 다수 투자자금을 모아 상장한 후 3년 이내 비상장 우량기업을 합병하는 게 목적이다.

최근 공모주 투자 난도가 높아지자 스팩으로 눈을 돌리는 투자자들이 늘어났다. 일반 투자자라면, 스팩 주식에 투자하면서 기업 인수에 간접적으로 참여하는 게 가능해진다. 기업 입장에서는 증시 직상장이 어려운 경우, 스팩을 통해 쉽게 우회 상장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투자 방법도 쉽다. 일반 공모에 참여해 주식 거래로 차익을 실현하거나 기업 합병 후 가치가 올라갈 때 매각해 이익을 낼 수 있다. 스팩은 공모가가 2000원으로 고정돼 3년 내 합병할 기업을 찾지 못해 청산되더라도 2000원을 받을 수 있다.

올해 스팩 상장이 급증한 이유는 IPO 시장이 침체한 탓이다. 상장을 준비하던 다수 기업이 기업가치 저평가를 이유로 상장 철회하거나 일정을 미루고 있다. 전반적인 공모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증권사들도 스팩을 우선 상장시키는 데 주력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스팩 상장으로 당장 주식자본시장(ECM) 본부 실적을 키울 수 있고, 향후 합병 상장을 위한 길을 열어둘 수 있어서다.

이어 거래소가 스팩 합병 규제를 완화한 점도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스팩소멸방식’으로, 상장 시 회사가 존속 법인으로 남고 스팩이 사라지는 방식이 도입됐다. 과거에는 스팩이 존속 법인으로 남고 회사가 소멸되는 방식만 가능했다. 이럴 경우, 기업은 신규 사업자로 등록돼 업력이 짧아지고 기존 거래처와 새로 계약을 맺어야 한다는 단점이 존재했다.

이 같은 이점이 부각되자 기관투자자들도 스팩 투자에 관심을 키우고 있다. 그간 기관투자자들은 스팩 공모 시 의무보유 확약을 걸지 않았고, 청약 수수료도 내지 않는 게 관행이었다. 최근에는 기관투자자의 의무보유 확약이 일정 부분 이상인 스팩도 늘어나는 추세다. KB증권은 기관투자자 대상 스팩 청약에 배정된 금액의 1%에 해당하는 수수료를 받기 시작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지난해와 달리 공모주 시장이 어렵다 보니 증권사 ECM부에서도 우선 스팩부터 상장시키고 보자는 분위기가 강해졌다”며 “스팩 투자는 청산하더라도 손실은 제한적인 데 반해, 합병에 따른 수익은 크게 챙길 수 있는 상품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