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O(기업공개) 과정에서 기관투자자 대상 수요예측 흥행 실패로 몸값을 낮춰 입성한 기업들의 주가가 상장 후 급등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이른바 ‘반값 상장’으로 해석돼 개인매수세가 몰리는 것으로 보인다. 증시 전문가들은 공모주를 받은 대다수 기관투자자는 상장 첫날 시초가에 매도하는 만큼 이후 시세 변동은 전문 투자자 영역이어서 추격매수는 위험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일러스트=이은현

지난 21일 코스닥시장에 입성한 루닛은 상한가로 장을 마쳤다. 루닛(328130)은 기관투자자 대상 수요예측에서 저조한 성적표를 받은 기업이었다. 지난 7일부터 이틀간 진행한 수요예측에는 총 162곳의 기관이 참여했고, 7.1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공모가 역시 희망밴드(4만4000~4만9000원) 하단보다 32% 낮은 3만원으로 결정됐다.

상장 첫날 루닛의 주가 상승을 이끈 건 개인투자자였다. 당일 공모주를 받은 기관, 외국인 투자자가 각각 6604억원, 4530억원어치 물량을 팔아치운 사이 개인투자자들이 1조5734억원을 순매수하면서 상한가에 안착했다.

보로노이(310210)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났다. 보로노이는 수요예측 흥행 실패 후 한 차례 상장을 철회했고, 공모가를 낮춰 지난달 24일 코스닥시장에 상장했다. 제약·바이오 업종에 대한 투자자 심리가 얼어붙으면서 최종 공모가를 희망밴드(4만~4만6000원) 하단인 4만원으로 확정해 상장을 진행했다.

상장 첫날에도 장중 최저 2만9100원까지 떨어져 공모가 대비 27% 손실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비교적 단기간에 공모가 수준을 회복했고, 지난 11일에는 장중 5만2600원까지 오르며 역대 최고가를 경신하기도 했다.

지난달 3일 코스닥시장에 상장한 청담글로벌(362320)도 수요예측 흥행에 참패했지만, 상장 후 분위기가 바뀌었다. 당시 수요예측 경쟁률은 25대 1에 그쳤고, 공모가 역시 희망밴드(8400~9600원) 하단보다 30% 낮은 6000원에 결정됐다. 회사 측이 구주 매출, 신주 발행을 줄여 상장 당일 유통가능물량 비중을 41.35%에서 24.93%까지 줄이자 매수세가 몰렸고, 상장 후 6거래일 만에 공모가 기준 175% 뛰기도 했다.

이런 현상이 반복되자 수요예측에서 몸값을 낮춘 다음 타자에 투자자들의 이목이 몰리기도 한다. 오는 28일 코스닥 상장을 앞둔 에이프릴바이오은 당초 제시한 공모가 희망범위(2만~2만3000원)의 최하단보다 20% 낮은 수준인 1만6000원에 공모가를 확정했다. 수요예측에는 국내외 기관 총 148곳이 참여해 14.43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해 매우 저조한 편이다.

29일 상장 예정인 아이씨에이치도 2.5대 1의 일반공모 청약경쟁률을 기록하며 부진한 흐름을 보였다. 앞서 진행한 기관투자자 대상 수요예측에서 공모가를 희망밴드(3만4000~4만4000원) 최하단으로 결정했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25일 “수요예측에서 기관 경쟁률이 낮은 건 해당 기업의 공모주가 매력적이지 않다는 설명”이라며 “공모주를 받은 기관투자자는 대부분 시초가에서 차익을 실현하며, 이후 시세 형성은 실체를 파악하기 힘든 전문투자자 영역이어서 개인투자자의 추격 매수는 투자 리스크를 키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