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과 유관기관이 올해 안으로 국내 주식 소수점거래를 활성화한다는 방침을 내놓은 가운데 상장지수펀드(ETF)는 그 대상에서 제외된 것으로 확인됐다. 해외처럼 고가주식이 많지 않고, 상장사의 액면분할에 대한 제약도 덜한 국내 시장에서 굳이 소수점거래 서비스를 도입할 이유가 모호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위원회 제공

1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와 한국예탁결제원(이하 예탁결제원)은 오는 9월부터 허용되는 국내 주식 소수점거래 서비스를 개별 종목 아닌 ETF에는 허용하지 않기로 했다. 소수점거래는 주식을 온주(1주)가 아닌 0.1주, 0.2주 등 소수 단위로 쪼개서 매매하는 것을 말한다. 그동안은 국내에서 해외 주식에 대해서만 소수점거래가 가능했다.

최근 증권가에서는 국내 주식 소수점거래 서비스 도입 실효성에 대해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금융위는 지난해 해외 주식에 이어 올해 2월 국내 주식 소수점거래를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했다. 중개업자로 선정된 증권사는 모두 24곳으로, 9월부터 인프라 구축 상황에 따라 순차적으로 서비스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예탁결제원, 금융투자협회는 올해 안에 국내 주식 소수점거래 제도를 정착시키겠다는 의지를 거듭 드러냈다. 나재철 금융투자협회장은 12일 기자간담회에서 “지난해 해외 주식에 적용된 소수점 거래 제도의 국내 도입을 위해 정부 및 관계기관과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예탁원은 국내 주식 소수점거래 지원 시스템을 8월 테스트를 거쳐 9월에는 정식 오픈할 예정이다.

그러나 국내 주식 소수점거래를 장려하는 금융위와 유관기관 분위기와 달리 막상 서비스 도입을 앞둔 증권사들은 고심이 깊어졌다. 증권업계에서는 개인들의 주식 투자 접근성을 높인다는 취지는 공감하지만, 기대 만큼 효과가 크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한다. 구체적인 서비스 조건, 국내 시장 특수성을 따져보면 시스템 개발 및 운영에 투입하는 비용 대비 장점이 적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국내 주식시장에 미국과 달리 고가주식이 손에 꼽힌다고 지적했다. 한국거래소 등에 따르면 국내 시가총액 1조원, 일일 거래량 20만주, 주가 5만원 이상인 종목은 약 60개다. 이 중 주가 10만원 이상인 종목으로 범위를 제한하면 절반인 약 30개에 그친다. 심지어 개인이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코스피 시총 상위 10개 종목 중에서도 기준을 충족 못하는 경우도 있다.

미국 시장을 대표하는 주식 대부분이 고가주식인 것과 대조적이다. 미국의 경우 시총 20억달러(한화 약 2조6476억원), 거래량 20만주, 주가 50달러(6만6190원) 이상인 종목은 약 950개로 집계됐다. 같은 기준에 주가만 100달러(약 13만원) 이상인 종목은 460개 수준이다. 한화로 주당 100만원을 웃도는 주식이 많을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비싼 주식으로 알려진 버크셔 해서웨이 주식(A클래스)은 5억원을 웃돈다.

같은 소수점 거래더라도 해외 주식과 달리 국내 주식은 신탁(수익증권발행신탁) 방식을 적용해야 하는 만큼 추가적인 개발 및 운영 부담이 클 것으로 예상됐다. 해외 주식 소수점 거래는 증권사가 소수 단위 주문을 1주로 취합해 매매 주문을 넣는 방식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기존 해외 주식 예탁 체계를 그대로 활용할 수 있었다.

반면 소수 단위 해외 주식과 마찬가지로 의결권은 없지만, 배당금을 나눠줘야 한다는 점은 서비스 도입 발목을 붙잡는 또 다른 요인이다. 신탁 구조에서 배당금 분배까지 고려하다 보면, 시스템 개발 난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국내 주식을 소수 단위를 보유한 투자자는 해당 주식의 권리를 직접 보유하지 않고 예탁결제원이 발행하는 신탁재산의 수익증권을 대신 갖는다. 이때 배당금은 투자자의 수익증권 보유 비율에 따라 나눠줘야 한다.

국내 시장에서는 상장사가 의지만 있다면 액면분할을 통해 가격을 낮추고 유동성을 늘릴 여지가 오히려 크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최근 빅테크 기업을 중심으로 주주 환원 정책 일환으로 주식 분할이 연달아 이뤄졌다. 오너 기업 중심의 국내 시장의 경우 미국보다 액면분할 빈도수 자체는 적지만 실제 분할을 위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을 비롯한 제약은 훨씬 적다.

한편, 이날 기준 국내에 상장된 ETF 중 거래가격이 10만원을 웃도는 종목은 약 28개다. 대부분은 채권 관련 종목으로 가장 비싼 ETF에는 ‘KOSEF 국고채10년’가 이름을 올렸다. 이 가운데 시총이 1조원을 넘는 종목은 ‘TIGER 단기통안채’, ‘KODEX단기채권PLUS’, ‘KODEX종합채권(AA-이상)’ 등 5개 종목이다. 가장 거래량이 많은 종목은 200만좌 수준으로 집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