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루나 사태 이후 가상자산 시장을 규제할 근거법이 없다는 점이 지적된 가운데 금융당국과 회계업계에서 가상자산 관련 회계 기준 마련하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가상자산에 대한 정의는 여전히 모호한 상황이지만, 가상자산을 발행하거나, 보유한 기업에 대한 회계 감사는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복현 신임 금감원장이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가상자산 시장의 공정성 회복과 투자자 보호대책 긴급점검 당정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

22일 회계업계에 따르면 최근 한국회계기준원은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금융당국, 업계, 학계 등과 가상자산 회계처리기준과 관련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회계기준원은 금융위원회로부터 회계처리기준의 제·개정 및 해석에 관한 업무를 위탁 받은 기관이다. 구체적인 연구 결과가 나오는 시기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추후 세미나를 개최해 그 결과를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가상자산 발행과 상장 행위 등을 규제할 수 있는 기본 법안에 대한 논의가 몇 년째 진전이 없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현재 국회에는 가상자산에 대한 정의, 사업자 기본 요건, 투자자 보호 관련 내용 등을 담은 가상자산업법 개정안 7개,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 4개, 특정금융정보법 개정안 2개 등 13개 법안이 계류돼 있다.

물론 기업들이 보유한 가상자산 회계 처리 기준이나 공시 요구 사항이 명확하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다.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 국제회계기준(IFRS) 해석위원회는 기업이 가상자산을 영업 과정에서 판매하거나 중개할 목적으로 보유, 매매하면 재고자산, 그 밖의 모든 경우에는 무형자산으로 분류했다. 다만 투자 목적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무형자산으로 처리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올해 초 게임업체 위메이드(112040)가 자체 발행 코인 ‘위믹스’를 회계처리하는 과정에서 논란을 빚으면서, 가상자산 회계 기준 마련 작업이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는 평가다. 위메이드는 지난해 4분기 위믹스 매도 대금을 매출로 처리했다가, 한 달 뒤 감사인 의견을 토대로 부채의 일종인 선수수익으로 정정 공시했다. 위믹스 유동화분이 매출로 잡혔을 때 그 비중은 60%를 웃돌았다.

앞서 금융위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는 지난 3월 신산업의 회계처리 불확실성 해소를 위해 금융당국, 회계기준원, 회계법인, 학계 등 회계 관련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회계기준 적용지원반’을 신설했다. 회계기준 적용지원반이 출범할 당시 첫 번째 과제로는 제약, 바이오 산업이 주목받았지만, 이후 가상자산 관련 이슈를 다룰 것이라는 관측이 있었다.

한편, 테라·루나 사태를 계기로 국내 가상자산 규제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는 가상자산은 특정금융거래정보법(특금법)에 따라 관련 사업자의 자금세탁방지 영역에 대해서만 규율을 하고 있다. 나머지 상장, 거래, 가격 변동성 등 사업적인 영역은 자율 규제 형식으로 민간, 즉 거래소에 맡겨져 있는 상황이다.

정부는 새 정부의 경제정책방향을 통해 가상자산 시장 전반을 아우르는 업권법인 ‘디지털자산 기본법’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여기에는 가상자산 발행, 상장, 상장폐지 규제를 비롯해 투자자 보호, 거래 안정성 제고 방안 등이 담길 예정이다. 본격적인 입법 작업은 미국에서 가상자산 입법 논의가 이뤄지는 10월에 시작될 것으로 예상됐다.

미국에서 가상자산 회계 처리 기준과 관련해서는 이미 논의가 시작된 상태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미국 재무회계기준위원회(FASB)는 지난달 회의를 통해 가상자산과 관련한 회계 처리, 공시 가이드라인 제정 작업에 착수하기로 했다. FASB는 지난해 12월부터 가상자산 회계 기준 제정 여부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온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