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율 0% 전환사채가 줄줄이 발행되고 있다. 금리인상 기조로 회사채 금리가 덩달아 오르는 상황에서 이자를 배제하고 자금을 활용하겠단 의도다. 주식 전환으로만 이익을 실현할 수 있어 향후 주가가 오를 것이란 강한 기대감이 반영된 조건으로 해석된다.

일러스트=정다운

12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이달 엠플러스(259630), 코아시아옵틱스, 쎌마테라퓨틱스, 휴럼(353190), 빅텍(065450) 등 5개 상장사가 표면금리(쿠폰 프리미엄) 0%, 만기이자율(YTM) 0% 전환사채 발행을 결정했다.

한 예로 빅텍은 150억원 규모의 자금을 전환사채로 조달하며 이자율 0%를 내걸었다. 지난 6일 라이노스자산운용이 펀드에 담으며 물량을 전부 소화했다. 전환가액은 7093원으로, 11일 종가(7110원)과 비슷하다. 1년 후 주가가 최소 7093원보다 더 올라야 차익 실현이 가능하다. 전환청구기간은 내년 5월 6일부터 2027년 4월 6일 사이다.

빅텍처럼 이자율 0% 전환사채를 발행한 회사들은 이자 비용을 전혀 내지 않고, 대규모 자금을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최근 금리인상 기조로 시중 자금조달 비용이 비싸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0% 금리는 회사 측에 상당히 유리한 조건이다. 기준금리가 오르면서 국내 채권시장 금리도 덩달아 뛰었기 때문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4월 말 기준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전월 대비 29.5bp(1bp=0.01%) 오른 2.958%로 집계됐다. 3년 만기 신용등급 AA- 무보증 회사채 금리는 전날 기준 3.79%를 기록했다. 1년 전 1.51%와 비교하면 두 배 넘게 올랐다.

최근 발행되는 전환사채 금리와 비교해도 이례적인 조건이다. 시중 금리가 오르면서 표면이자율 2~10%, 만기이자율 5~12% 사이 전환사채가 발행되는 추세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이자율 0% 전환사채는 전환청구 시기에 주식으로 바꿔 시장에서 팔았을 때만 이득을 볼 수 있다”며 “회사는 지분 희석 부담은 있지만, 이자 비용이 없는 게 큰 장점이며, 향후 주가가 오를 것이란 자신감이 내포된 것으로 해석된다”고 설명했다.

최근 국내 증시가 약세인 점도 이자율 0% 전환사채 발행 배경으로 꼽힌다. 대내외 악재로 대다수 상장기업 주가가 급락하면서 기업가치 대비 저렴하다고 판단해서다. 전환청구기간인 1~3년 후 시장 분위기가 바뀌면 주식 전환으로 큰 이익을 남길 수 있다는 계산이 깔린 셈이다.

다른 관계자는 “지난해 리픽싱 상향 의무화가 생기기 전 많은 기업이 시기를 앞당겨 자금을 조달했다”며 “최근 발행 조건이 좋지 않다 보니 0% 이자율을 내세워 자금을 유치하려는 것으로 보이며, 향후 오버행(잠재적 매도 대기 물량)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