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 격언 중 ‘총성이 울리면 주식을 사라’는 말이 있다. 전쟁이 일어나면 시장 불확실성이 커지고, 기업가치와 무관하게 주가가 충격을 받을 수 있어 이를 저가매수 기회로 삼으라는 의미다. 이른바 ‘전쟁 공포’에 베팅하는 고위험 고수익 전략이다.

노동자연대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인근에서 집회를 갖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고 있다./뉴스1 제공

유럽의 전설적 투자자인 앙드레 코스톨라니 역시 전쟁 공포에 베팅해 큰 수익을 얻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1989년, 옛 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 공산당 서기장과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것을 보고 새로운 투자 기회를 찾았다.

코스톨라니의 그림은 이랬다. 그는 우선 옛 러시아제국의 채권을 헐값에 사들였다. 소련이 경제 활성화를 위해 채권을 발행할 텐데, 다른 나라들은 새로 발행할 채권을 인수하는 조건으로 과거 러시아 제국 당시 발행한 채권의 상환을 요구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고, 60배 이상 차익을 거뒀다.

2차대전 직후 패전국이 된 이탈리아에 방문해서도 투자 기회를 찾았다. 이탈리아의 자동차 회사 이소타 프라치니 주식 150리라에 매수 후 1500리라에 팔아 10배 수익을 남긴 사례도 유명하다. 2차대전 패전국이 된 독일의 국채를 사들여 140배의 시세차익을 얻기도 했다.

코스톨라니처럼 해외 기관 투자자들도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를 새로운 투자 기회로 보고 있다. 6일(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신흥시장 전문 투자운용사인 그레머시가 우크라이나 채권 매입을 투자 아이디어로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들은 어떤 형태로든 우크라이나가 독립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고, 유럽·미국으로부터 막대한 재정 지원을 받아 되살아날 것으로 그림을 그렸다. 현재 우크라이나 국채 가격은 달러당 45센트로 떨어진 상태여서 전쟁 후 관계가 진전되면 가격이 폭등할 것으로 가정했다.

그러나 이들도 당장 사들이진 않았다. 채권 투자자들이 얼마나 많은 부채를 탕감해줄지 확신하지 못해 불확실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그레머시가 이 같은 투자 아이디어를 내놓는 것처럼 다른 신흥시장 펀드매니저들도 러시아, 우크라이나 국채 매수를 고려하고 있다고 WSJ은 전했다.

이번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 채권 역시 주요 투자 대상이다. 2일 기준 달러 표시 러시아 국채 가격 역시 달러당 17센트로 추락한 상태다. 만약 러시아가 전쟁 후 채무불이행(디폴트)을 선언한다면, 채권 투자자들이 받을 수 있는 금액은 크게 쪼그라든다. 문제는 서방국가들의 금융제재로 러시아 국채 거래가 꽉 막혔다는 점이다. 미국, 유럽은 러시아 국채 신규 거래를 금지하기로 하면서 거래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개인투자자들도 전쟁을 기회로 보고 불나방처럼 뛰어들었다. 최근 증시에선 러시아 관련 상장지수펀드(ETF)가 화제였다. 국내 상장된 유일한 러시아 증시 ETF인 KINDEX 러시아MSCI는 롤러코스터와 같은 변동성을 보이다가 이날부터 거래가 정지된다. 미국 증시에 상장된 디렉시온 데일리 러시아 불 2X ETF’(RUSL)는 상장폐지 과정을 거쳐 오는 18일 청산하기로 했다. 그야말로 폭탄을 돌리다가 떠안은 투자자들은 하루아침에 큰 손실을 입게 됐다.

시계를 돌려보면 코스톨라니는 전쟁에 베팅한 게 아니라 한 국가의 경제 활성화 계획에 투자했다. 그는 미국과 옛 소련의 정상회담에서 우호적 관계 회복의 신호를 읽었다. 최근 해외 기관투자자들이 러시아, 우크라이나 채권을 선뜻 사들이지 않는 이유 역시 위험지표가 도처에 깔린 탓이다. 세계 3대 신용평가사 중 하나인 무디스는 러시아의 신용등급을 Ca,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CCC-로 평가했다. 투자부격격으로, 국가부채 상환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우크라이나 국채 가격은 정부가 나서 국채 이자부터 갚겠다고 선언했지만, 러시아 진군이 이어지면서 더 떨어졌다.

전설적 투자자인 코스톨라니도 항상 성공 가도만 달린 건 아니다. 그는 손해를 보는 것도 모험의 일부라고 말했다. 실제 투자 실패로 파산 상태에 놓인 적도 있다. 그는 투자 실패를 통해 “훌륭한 투자가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두 번 이상의 파산 경험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파산 경험이 꼭 필요한 건 아니겠지만, 코스톨라니의 말에서 실패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