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에 투자하는 이른바 ‘큰손’들은 예전부터 비상장 주식 등 비(非)시장성 자산을 투자처로 선호했습니다. 투자자가 비상장기업에 관심을 가져도 비상장기업을 펀드에 담으면 정작 수탁이 안 되니 어쩔 수 없는 상황입니다. 점점 사모펀드가 공모펀드와 다를 바가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사모펀드 매니저 A씨)

“사모펀드에 비시장성 자산을 편입한다고 하면 은행과 증권사에서 경기(驚氣)를 일으킵니다. 코넥스(코스닥시장 상장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벤처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장할 수 있도록 한 중소기업 전용 주식시장)에 상장된 종목의 전환사채(CB)에 투자금을 넣어 코스닥벤처펀드를 만들겠다고 해도 거부합니다.”(사모펀드 관계자 B씨)

일러스트=정다운

라임·옵티머스 펀드 사태로 인해 수탁사인 은행과 판매사인 증권사 등이 비시장성 자산에 투자한 사모펀드의 수탁, 판매를 거부하는 상황이 계속되자 펀드 업계에서는 사모펀드 운용에 한계가 있다는 하소연이 이어지고 있다.

비시장성 자산이란 비상장·비예탁 증권(사모사채 등), 부동산, 장외파생상품, 해외자산 등 한국예탁결제원에 예탁돼 중앙집중적인 방식으로 보관 또는 관리 될 수 없는 투자자산을 말한다. 시장성 자산보다 유동화(현금화)가 어려워 최근 라임·옵티머스 펀드 등이 환매 중단됐을 때 투자자 피해가 커지는 문제가 발생했다.

금융당국이 이런 비시장성 자산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이에 따라 판매사·수탁사가 비시장성 자산이 포함된 새로운 사모펀드를 수탁, 판매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사모펀드 운용역을 중심으로 “사모펀드가 제 역할을 못 하고 있어 공모펀드와 다를 바가 없다”는 말까지 나온다. 운용사가 새로운 펀드를 설정, 운용하려면 판매사(펀드를 판매하는 금융사)와 수탁사(펀드 자금을 보관하는 은행)가 꼭 필요한데 비시장성 자산에 전혀 투자할 수 없는 사모펀드는 공모펀드와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 非시장성 자산 거부에 사모펀드 울상 “우리가 공모펀드냐”

3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판매사와 수탁사가 비시장성 자산에 투자한 사모펀드를 판매, 수탁하기를 꺼리는 일이 이어지면서 사모펀드 운용사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모펀드는 전문화·특화를 기반으로 투자하는데, 비시장성 자산에 투자하지 못하면서 이런 운용 자율성이 없어졌고, 비상장기업이나 벤처기업 등에 투자해 모험자본을 공급하는 역할도 하기 어려운 상황이 된 것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 C씨는 “최근 불거진 사모펀드 사고에서 펀드 자산 유동화 문제가 불거진 이후, 은행과 증권사에서 비시장성 자산이 들어간 펀드는 현금화가 어렵다는 이유로 수탁, 판매를 거부하고 있다”며 “(증권사·은행 등) 회사마다 다르겠지만 대체로 비시장성 자산에 대해 굉장히 보수적인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사모펀드가 지향하는 ‘하이리스크(위험) 하이리턴(수익)’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사모펀드 펀드 매니저 D씨도 “일반적으로 투자 기업을 정하고 자금을 모집하는 ‘프로젝트 펀드’보다 투자 대상을 정해놓지 않는 펀드인 ‘블라인드 펀드’에서 비시장성 자산에 투자한다고 하면 거의 수탁이 안된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친분이 있는 수탁사에서는 그나마 사정을 봐주려고 하지만 시장성 자산을 더 늘려야 하는 상황은 같다”고 말했다.

사모펀드 업계 관계자 E씨도 “한 2~3달 전까지는 판매사를 통과해도 수탁에서 안 받아줬는데, 이제는 수탁사가 가능하다고 해도 판매사에서 판매가 어렵다고 한다”며 “판매사·수탁사 몸 사리기에 주식으로만 100% 구성된 펀드나 채권형 펀드가 아니면 새 펀드를 설정할 수도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라임·옵티머스 사건 이후 사모펀드가 공모화(化)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일러스트=정다운

◇ 은행·증권사 “그래도 非시장성 자산은 ‘NO(노)’”

라임·옵티머스 사태 이후 은행들은 펀드 규모 100억원 이하, 비상장사 주식의 경우 실물 주권이 없으면 펀드를 수탁하지 않고 있다. 여기에 최근에는 예탁원에 전산등록이 돼 있거나 한국거래소가 운영하는 코넥스(KONEX)에 상장돼 있는 비상장 종목에 투자한다고 해도 수탁사가 받아주지 않는 분위기다.

다만 은행들도 할 말은 있다. 수수료는 0.05~0.07%정도에 불과한데 이런 수수료를 받기 위해 비시장성 자산에 투자한 사모펀드를 일일이 감시·감독 하기엔 리스크가 너무 크다는 게 수탁사 입장이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7월부터 수탁사에도 펀드 감시·감독을 요구하면서 수탁사들이 수탁 업무 부담이 더욱 커졌고 오는 10월부터 시행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에는 수탁사의 감시 책임이 법에 명시화돼 한층 부담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한 수탁사 관계자는 “금융당국부터 투자자까지 서슬 퍼렇게 사모펀드 사고를 지켜보고 있는데 예전처럼 위험 부담이 큰 비시장성 자산에 대해 호의적인 수탁사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판매사도 마찬가지다. 판매사들은 비시장성 자산이 편입돼 현금화가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가 있는 위험한 상품을 판매해 라임·옵티머스 판매사와 같은 책임을 지고 싶지 않아 한다. 이와 함께 금융소비자법 시행도 비시장성 자산이 편입된 사모펀드 판매를 어렵게 하고 있다. 금소법 시행으로 고객의 펀드 이해도를 파악하기 위해 많은 절차와 시간을 투입해야 하는데, 비시장성 자산이 편입된 사모펀드는 설명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앞으로 사모펀드 규제는 더욱 엄격해질 전망이다. 오는 6월 28일부터 금융감독원과 금융투자협회가 신탁업자의 펀드 수탁업무 처리과정에서 준수사항, 운용행위에 대한 감시, 확인사항 등을 규정하는 가이드라인이 시행된다. 또 같은 날 예탁원은 사모펀드 투명성 강화를 위한 비시장성자산 투자지원 플랫폼을 개설한다. 투자지원 플랫폼은 예탁원이 비시장성자산을 편입하는 사모펀드 종목 명세와 신탁업자의 자산 보관 명세를 상호 대사·검증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