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경제 전문가들은 ‘원자재 슈퍼 사이클(장기 상승세)’이 이어지는 가운데 산업용 금속으로 분류되는 구리에 투자하는 것이 유망하다고 전망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보급 덕에 글로벌 경기 회복 속도가 빨라지고 있고, 신재생 에너지 설비와 전기차 배터리 등에 구리가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 몸값이 점점 더 높아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조선비즈가 경제 전문가 23명에게 ‘앞으로 유망할 것으로 예상되는 원자재가 무엇인가’를 물어본 결과(복수 응답 가능) 구리가 18표를 받아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다음으로 니켈(9표)·알루미늄(7표)·금(5표)이 뒤를 이었다.

국제 구리 가격은 지난 26일영국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톤(t)당 9965달러로 마감했다. 지난 18일까지는 1만465달러 수준이었다. 국제 구리 가격은 이달 들어 2011년 2월 기록했던 역대 최고가( 1만160달러)를 10년 3개월 만에 갈아치운 이후 계속 최고가를 경신했다. 지난 14일에는 장중 1만724달러까지 치솟기도 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해 초 코로나19 여파로 내렸던 구리 가격이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고 지난 7일 전했다. 그러면서 WSJ는 “저소득 국가에서 코로나19가 만연하고 있지만, 각국의 경기 부양책과 코로나19 백신 보급으로 글로벌 경제 회복이 빨라져 상업품 수요가 늘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래픽=정다운

◇ 주인공은 ‘구리’… 친환경·전기차 덕에 수요 급증

국내 경제 전문가는 앞으로도 ‘구리 랠리’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구리는 전자제품을 비롯해 자동차, 건설 등 산업 전반에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구리 가격은 경기 회복의 선행 지표 역할을 하므로 시장에서는 구리를 ‘닥터 코퍼(Dr. Copper·구리 박사)’라고도 부른다.

오현석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산업용 금속인 구리는 변동성이 있는 원자재인 만큼 경기 사이클을 타고 추가 상승할 수 있는 여력이 있다”라며 “구리는 농산물이나 귀금속보다 글로벌 경기 회복 사이클에서 눈에 띄는 원자재”라고 말했다.

구리가 최근 들어 더 주목받는 건 각국 정부가 친환경 정책을 펴고 전기차 보급도 늘고 있기 때문이다. 친환경 인프라와 환경·사회·지배구조(ESG) 투자 흐름은 장기적인 구리 수요를 견인할 것으로 보인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추진하는 태양광과 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와 관련된 인프라 프로젝트에도 구리가 들어간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코로나19가 지나면 각국 정부들은 시중에 풀린 돈을 자국의 경제 잠재력을 키우는 성장 산업에 투자할 것”이라면서 “성장 산업으로는 차세대 에너지, 녹색 산업 등이 꼽히는데 이런 기술 개발에 필요한 것이 구리 등 비철금속”이라고 설명했다.

글로벌 투자은행(IB)인 골드만삭스도 “친환경 인프라의 주요 에너지원으로 구리가 주목받을 것”이라며 “1년 안에 구리 가격이 톤당 1만1000달러에 도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주요국이 친환경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 전환을 서두르는 것도 전문가들이 앞으로 구리 가격이 상승할 것으로 보는 이유 중 하나다. 전기차의 핵심 부품인 배터리 제작에 필수적인 음극재 원료가 구리인데 전기차 한 대를 만들기 위해선 기존 내연기관차를 만들 때보다 4~10배 이상의 구리가 필요하다. 전기차를 운행하기 위한 충전기에도 구리 배선이 사용된다.

구리 주요 생산국의 공급 차질도 구리 가격 상승의 원인이 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칠레다. 세계 1위 구리 생산국으로 전 세계 구리 공급의 25%가량을 차지하는 칠레는 정치적 이유로 구리 생산이 차질을 빚고 있다. 원자재 시장 관계자는 “칠레 의회는 지난달 구리와 리튬 생산업체들에 대한 세금 인상안을 통과시켰다”라며 “광산 투자와 지원이 줄어들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세금 인상으로 인해 구리 공급업자들의 생산량이 줄어들 처지에 놓인 것이다.

코로나19로 광산 채굴 작업이 원활히 이뤄지지 못한 것도 구리 가격 상승에 영향을 주고 있다. 이 관계자는 “페루에서 코로나 확산세가 이어지면서 채굴 작업이 지체돼 생산성 자체가 줄었다”라며 “페루가 엄격한 봉쇄 조치를 시작하면서 물량 이동이 제한된 점도 공급이 줄어드는 이유”라고 말했다. 페루는 칠레에 이어 세계 2위의 구리 생산국이다.

일러스트=정다운

◇ 개인이 투자하려면 ETF·ETN 통한 간접투자가 간편

개인 투자자가 구리에 투자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구리를 포함한 산업용 원자재나 이런 원자재를 채굴하는 회사를 모아놓은 상장지수펀드(ETF)를 통해 간접 투자하는 게 유리하다고 조언한다. 현물로 투자가 가능한 금·은 등을 제외하면 다른 원자재는 실물 자산에 투자하기 쉽지 않은 탓이다.

정 센터장은 “금속원자재 ETF나 이들을 채굴하는 회사들에 간접 투자하는 ETF 상품을 주목하면 좋다”면서 “ETF는 소액으로도 구리 등 원자재에 쉽게 투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삼성KODEX구리선물특별자산상장지수투자신탁[구리-파생형](H)’ ‘미래에셋TIGER구리실물특별자산상장지수투자신탁(금속)’ ETF 등에 투자할 수 있다. 이들의 연초 대비 수익률은 각각 26.18%, 30.31%를 기록했다.

구리 가격을 기초로 상장된 상장지수증권(ETN)도 있다. ETN 중에서는 레버리지 상품도 있는데 구리 선물 수익률의 2배를 추종하는 ‘삼성 레버리지 구리 선물 ETN(H)’과 ‘신한 레버리지 구리 선물 ETN’이 있다.

다만 이런 파생상품에 투자할 때는 괴리율을 반드시 살펴야 한다. 괴리율은 시장 가격과 실제 가치의 차이를 나타내는 투자 위험 지표로, 괴리율이 크다는 것은 매매 가격이 기초자산보다 고평가돼 있다는 얘기다. 괴리율이 줄어든 후에 매입하는 것이 향후 손실을 줄일 수 있다. 투자자는 괴리율에 해당하는 가격 차이 만큼 잠재적 손실을 떠안기 때문이다.

그래픽=김란희

요즘 해외주식 매매가 간편해진 만큼 미국 시장에 상장된 ETF도 눈여겨봐도 좋다.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된 ETF인 ‘인베스코 DB 베이스 메탈 펀드(DBB)’는 구리, 아연, 알루미늄 등 금속 선물 상품에 투자한다. 또 ‘SPDR S&P 메탈&마이닝(XME)’ ETF도 구리, 철광석, 알루미늄, 금, 은 등 금속과 광산회사에 집중 투자하는 상품이다. ‘글로벌 X 코퍼 마이너스(COPX)’,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코퍼 인덱스 펀드(CPER)’ 등의 구리 ETF도 있다.

단기적으로 구리 공급 부족이 완화하면서 가격이 소폭 내릴 수도 있다는 점에도 유의해야 한다. 조병현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지난 11일 보고서에서 장기적으로는 상승 추이를 보일 수 있으나 단기적으로 공급 부족 정도가 완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