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메모리 반도체 업황이 ‘슈퍼사이클(장기 호황)’ 국면에 들어섰다는 기대감이 나왔지만, 국내 메모리 반도체 대표주인 삼성전자(005930)SK하이닉스(000660) 주가는 연일 급락하고 있다. 당장 반도체 업황의 ‘4분기 고점론'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깜짝 상승했던 컴퓨터(PC)와 모바일 수요가 연말에는 하락할 수 있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우려가 해소되면 반도체주의 가격이 반등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1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삼성전자(005930)SK하이닉스(000660)의 주가는 이틀간(11~12일) 각각 3.84%, 8.07% 하락했다. 삼성전자의 12일 마감 가격은 8만원으로 ‘8만전자'를 겨우 지켜냈지만, 장중 한때 주가가 7만9800원을 기록하기도 했다. SK하이닉스도 마감 가격이 11만9500원으로 12만원선이 깨졌다.

주가 하락을 부추긴 공매도 거래대금은 11일 급증했다. 삼성전자의 공매도 거래대금은 공매도가 재개된 지난 3일부터 10일까지 일간 23억~49억원 수준이었으나, 11일 840억원으로 뛰었다. SK하이닉스의 공매도 거래대금 역시 일간 6억~72억원 수준에서 11일 561억원으로 껑충 뛰어올랐다.

그래픽=박길우

메모리 반도체 업황은 올해 들어 청신호를 켰다. 코로나19로 모바일과 PC 수요가 늘면서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올랐다. 시장조사업체 트랜드포스에 따르면 지난달 PC용 디램(D램) DDR4 8기가바이트(Gb) 고정거래가격은 전달보다 26.67% 오른 3.8달러를 기록했다. 지난 2017년 1월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시작되던 시기의 상승률(35.8%)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메모리카드·USB 낸드플래시 범용제품(128Gb 16Gx8 MLC) 고정거래가격도 같은 기간 8.57% 상승했다.

주가 하락의 표면적 원인은 반도체 부족 사태였다. 미국 오스틴 지역의 한파와 대만 TSMC 정전 사태로 반도체 공급 부족 현상이 벌어지면서 수급에 차질이 생겼다. 비메모리 반도체 부문의 공급이 부족했는데, 이것이 세트(모바일·가전 등) 생산에 영향을 줬다. 세트 생산량이 줄어들면 여기 들어가는 메모리 반도체 수요도 떨어진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4분기 고점론’이 고개를 들었다. 반도체 업황이 예상대로 슈퍼사이클을 유지하지는 못하리란 시각이 나왔다. 이전의 반도체 슈퍼사이클은 신산업을 기반으로 매출 동력을 이어갔다. 2009년에는 스마트폰 출시, 2016년에는 데이터센터 설비 투자가 반도체 수요를 견인했다. 하지만 현재 모바일과 PC 수요는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에 기댄 반짝 수요라는 해석이 많다.

황민성 삼성증권 수석연구원은 “전문가들이 올해 4분기까지 반도체 영업이익이 분기별로 증가한다는 것에는 일치된 의견을 보이지만, 코로나19가 완화되는 내년에도 이런 기조가 유지될지에 대해서는 엇갈린 시각을 보이고 있다”면서 “내년에 이익이 증가한다는 방향성이 바뀌는 순간 반도체 관련주의 가격은 속절없이 내려갈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발표된 중국과 대만 자료가 이런 위기감을 더욱 부추겼다. 11일 중국 정보통신연구원(CAICT)은 지난달 중국 휴대폰 출하량이 2748만6000대를 기록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4.1%나 줄었다고 발표했다. 비메모리 반도체 공급 부족으로 출하량이 줄었을 수도 있겠지만, 수요도 함께 꺾인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대만에서는 PC 제조자개발생산(ODM) 전문업체 빅4인 퀀타, 컴팔, 위스트론, 인벤텍의 매출 합계가 전달보다 10% 감소했다. 2020년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4.5% 감소한 수준으로, 증감율은 마이너스(-)로 전환했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센터장은 “올해 4분기부터 PC 매출이 전년보다 감소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면서 “대만에서 벌써 전조 현상이 나오면서 폭발적인 PC 수요 증가세가 마무리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화성 반도체 공장(위)과 SK하이닉스 이천 M14 공장./각 사 제공

수요가 꺾일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기업들이 투자에 적극 나섰다는 점도 리스크 요인이다. 현재는 과잉 수요 형국이지만, 나중에 설비 증가로 공급이 늘면 과잉 공급 형국으로 전환된다.

앞선 1월 삼성전자는 170억달러(약 19조원) 규모의 파운드리 공장 증설 제안서를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시에 제출했다. SK하이닉스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컨퍼런스콜에서 반도체 공급 부족 현상을 해결하고자 내년도 설비투자 일부를 올해 하반기로 앞당겨 집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만 전문가들은 반도체 주가가 현재 4분기 고점론을 선반영하므로, 우려를 해소할 요소가 나온다면 주가가 반등할 여지도 있다고 내다봤다. 우선 PC와 모바일 수요 저하를 서버 수요가 메운다는 시각이 나온다. 인텔이 신형 서버용 중앙처리장치(CPU) ‘아이스레이크'를 출시했고, 이것이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기업에 공급될 전망이다. 기업들이 서버를 교체하면, 서버용 D램 수요도 증가할 수 있다.

최도연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지난 슈퍼사이클에서 모바일 반도체 수요가 둔화한 이후 2017년 2분기부터 인터넷 기업의 서버 반도체 구매가 반도체 수요를 주도했다”면서 “서버 수요는 경기 회복에 후행하는데, 이번엔 2분기부터 서버 수요가 반도체 수요를 주도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그래픽=정다운

4분기 고점론 우려를 해소하기 전까지 SK하이닉스보다 삼성전자가 주가 하락을 방어하는 것에 유리하리란 분석이 나온다. SK하이닉스의 사업 포트폴리오가 메모리 반도체 부문에 집중된 반면, 삼성전자의 포트폴리오는 반도체 파운드리 부문과 세트 부문으로 분화됐기 때문이었다.

최근까지 증권사들은 삼성전자보다 SK하이닉스를 높게 평가했다. 21개 증권사의 삼성전자 목표주가는 평균 10만6000원 수준이다. 12일 종가보다 32.5% 상승할 여력이 있다는 의미다. SK하이닉스는 평균 17만1857원으로 43.81% 상승한다고 내다봤다.

그간 SK하이닉스는 메모리 반도체 호황으로 호재를 한껏 누렸다. 반면 삼성전자는 미국 오스틴 한파로 파운드리에서 비메모리 반도체 생산량이 줄었고, 이로 인해 세트 생산에도 차질이 생겼다. 그러나 이런 추세가 변화할 전망이다.

황성민 수석연구원은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내년까지 증가한다는 시각보다 리스크를 염두에 둬야 한다는 시각이 늘어나고 있다”면서 “리스크를 반영하면 SK하이닉스의 메모리 반도체 집중적 포트폴리오가 불리하게 작용한다”고 말했다. 메모리 반도체에 집중된 SK하이닉스의 포트폴리오가 오히려 장기적으로는 악재로 작용한다는 분석이다.

이승우 센터장도 “삼성전자는 SK하이닉스와 달리 파운드리 시장에서 기대하는 수준 이상의 성과를 거둘 경우 주가를 방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