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사모펀드 운용사(PEF)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가 HD현대마린솔루션에 쏟은 6500억원에 대한 투자금 회수(엑시트)에 나선다. HD현대마린솔루션이 내년 상반기 상장을 목표로 기업공개(IPO) 절차를 본격화하면서다. 4조원 몸값이 목표로, KKR은 50% 비중의 구주매출을 요구했다.

HD현대마린솔루션이 입주한 경기도 성남 HD현대 사옥. /HD현대 제공

1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HD현대마린솔루션은 오는 13일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로 상장 예비심사 신청서를 제출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내년 상반기 내 코스피 상장이 목표로, 지난주 이미 한국거래소로 예비심사 신청서 초안(드래프트)을 제출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회사는 선박 정비·수리 서비스를 담당하는 HD현대그룹의 알짜 계열사로 꼽힌다. 2016년 HD현대중공업의 AS사업을 양수해 HD현대글로벌서비스로 설립됐다가 상장을 앞둔 최근 HD현대마린솔루션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해양산업 종합 솔루션 기업으로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HD현대마린솔루션의 상장은 빠른 속도로 추진되고 있다. 특히 이번 상장 예비심사 신청은 지난 9월 KB증권·JP모간·UBS-CS를 상장 대표 주관사로, 하나증권·신한투자증권을 공동 주관사로 선임한 지 약 3개월 만이다. 지난 9월 말에는 금융감독원으로 지정 감사 신청도 마쳤다.

빠른 상장 추진에는 KKR 입김이 작용했다. 세계 3대 PEF 중 하나로 불리는 KKR이 지금을 상장 적기로 점찍은 것으로 전해졌다. 2017년 2403억원이었던 매출(연결 기준)이 작년 1조3338억원이 됐고, 영업이익률 11%를 기록하는 등 성장성에 수익성까지 갖췄다는 판단에서다.

여기에 최근 공모주 시장이 호황을 맞은 것도 빠른 상장 추진에 영향을 미쳤다. 코스닥시장 상장 첫날 주가가 공모가의 4배로 오르는 이른바 ‘따따블’ 종목이 등장했고, 코스닥시장은 물론 코스피에서도 공모가 대비 2~3배 오른 새내기 종목들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KKR은 2년 전인 2021년 상장 전 지분투자(프리IPO) 형식으로 진행된 투자유치에 약 6500억원을 쏟으며 지분 38%를 보유한 2대 주주에 올랐다. HD현대그룹 지주사인 HD현대가 최대 주주지만, KKR은 박정호 KKR 한국 대표(파트너)를 이사회에 올려 경영에도 참여하고 있다.

투자은행(IB)업계 한 관계자는 “KKR의 HD현대마린솔루션 투자 당시 양사가 협의한 상장 기한이 2027년까지였던 것을 고려하면 빠른 상장 추진”이라면서도 “KKR은 이른 엑시트를 원하고, HD현대 역시 의사결정 효율화 측면에서 KKR 퇴진을 원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말했다.

그래픽=정서희

투자업계에서는 HD현대마린솔루션이 내년 상반기 코스피에 입성할 경우 시가총액이 3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021년 KKR 투자 유치 당시 2조원 기업가치를 평가받았는데, 이후 매출은 물론 당기순이익도 증가했다. 회사는 4조원 이상 몸값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공모 주식 수는 확정되지 않았지만, KKR은 모집 주식 수의 50% 이상을 구주매출로 추진한다는 내부 방침을 정한 것으로 파악됐다. 상장과 동시에 투자금의 상당 부분을 회수하겠다는 계획으로, 4조원 몸값으로 상장 시 KKR은 최대 2배 넘는 투자 수익을 얻을 수 있을 전망이다.

다만 시장에선 HD현대마린솔루션이 신주와 구주매출 비중을 약 60%대 40% 수준으로 조정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구주매출 비중이 크면 공모주로 조달한 자금이 회사로 유입되지 않고 기존 투자자에게 돌아간다는 점에서 공모주 흥행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복상장 논란도 HD현대마린솔루션과 KKR이 넘어야 할 산으로 꼽힌다. HD현대마린솔루션이 꾸준히 실적을 올리는 HD현대의 알짜 자회사인데, 자회사가 상장하면 두 기업의 가치가 중복으로 계산되는 만큼 지주사의 기업가치가 저평가된다. 이 경우 주주 반발에 부딪힐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조선업이 호황기에 접어들고 탄소 배출 규제 강화에 따른 친환경 선박 개조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은 IPO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HD현대마린솔루션은 오래된 선박을 친환경 선박으로 전환해주는 레트로피트(retrofit) 사업을 신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HD현대마린솔루션의 경우 사업이 분할된 지 7년이나 지나 소액주주들의 반발이 비교적 심하지 않을 수 있다”면서 “현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주당 약 4만3000원에 6500억원을 쏟은 KKR이 구주매출 비중을 50%로 가져갈 지가 여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