락앤락 광고.

주방생활용품 제조사 락앤락의 기업 가치가 급락하면서 최대주주인 홍콩계 사모펀드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가 투자금 회수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어피니티는 2017년 락앤락 창업자이자 최대주주인 김준일 회장 측으로부터 락앤락 지분 63.56%를 6293억 원에 샀다. 주당 매입가가 1만8000원이었는데, 현재 락앤락 주가는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락앤락 주주들 사이에선 밀폐용기를 만드는 회사의 주주답게 어피니티가 락앤락에 밀폐됐다는 웃픈 얘기가 나온다.

매각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어피니티는 최근 투자 손실 줄이기에 나섰다. 지난해 하반기 수백억 원 규모 배당 이후 한동안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다가, 이달 유상 감자(자본을 감소시킨 만큼 주주에게 나눠주는 것)를 통해 1000억 원가량을 확보했다. 락앤락 최고경영자도 잇따라 교체하며 쇄신을 시도 중이다.

어피니티는 최근 락앤락 유상 감자를 진행해 현금을 일부 확보했다. 락앤락 이사회는 8월 29일 유상 감자를 결정했다. 감자 비율은 13.69%(687만4033주)로, 주당 5819원에 유상 소각하기로 했다. 어피니티는 전체 유상 소각액 400억 원 중 283억 원을 가져간다. 락앤락 주식은 10월 17일~11월 3일 매매 거래 정지를 거쳐, 11월 6일 유상 소각 대금이 지급될 예정이다. 유상 감자 후 특수 관계인 포함 최대주주 측 지분율은 70.64%다.

앞서 어피니티는 락앤락 인수를 위해 특수목적법인 ‘컨수머 스트렝스(CONSUMER STRENGTH LIMITED)’를 세우고, 2017년 8월 김 전 회장 측으로부터 지분 63.56%를 6293억 원에 인수했다. 총 3496만1267주를 주당 1만8000원에 매입했다. 당시 락앤락 주가는 1만2000~1만3000원 선이었는데, 여기에 경영권 프리미엄이 더해졌다.

어피니티가 락앤락을 인수한 직후 락앤락 주가는 2017년 12월 2만8000원을 넘어섰으나, 이후 내리막길이다.

인수 후 초기엔 투자금 회수를 서두르지 않았다. 어피니티는 2017년엔 45억 원, 2018년엔 28억 원의 배당만 챙겼다. 2018·2020·2021·2022년 각 한 차례씩 자사주 총 479만9556주를 소각해 주가를 관리했다. 어피니티가 가져간 배당금이 확 늘어난 건 지난해다. 지난해 10월 락앤락이 주당 1653원 배당을 결정해 어피니티가 587억 원을 받았다. 이어 지난해 12월 말 결산 배당을 통해 주당 300원, 총 106억 원을 받았다. 지난해 락앤락이 순손실을 냈음에도 어피니티는 연간 배당 693억 원을 손에 쥔 것이다. 배당과 유상 감자를 통해 어피니티가 인수 후 지금까지 확보한 돈은 1000억 원 수준이다.

어피니티는 인수 대금 절반을 주식 담보 대출로 조달했기 때문에 상당한 이자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 어피니티는 2017년 12월 락앤락 보유 주식 전체(3496만여 주)를 담보로 한 대출로 3000억 원 이상을 조달했다. 주식 담보 계약 기간 5년간 어피니티가 락앤락 매각을 성사시키지 못하면서 지난해 12월 담보 계약을 최장 3년간 연장했다. 금리 급등으로 대출 금리는 4%대 초반에서 8%대로 높아졌다. 이자 비용이 두 배 비싸진 것이다.

락앤락 실적이 악화하고 기업 가치가 떨어지면서 매각을 통한 엑시트(투자금 회수)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2022년 락앤락 매출은 5212억 원으로 전년 대비 4% 감소했고, 영업이익도 230억 원으로 30% 줄었다. 특히 연간 154억 원 순손실을 내면서 적자 전환했다. 올해 상반기에도 33억 원 규모 순손실을 기록했다. 회사 측은 “중국 시황 악화에 따른 수요 감소, 영업권 및 자산 손상, 충당금 적립 등으로 이익이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락앤락은 주력 제품인 밀폐용기 시장에서 더는 독보적 경쟁력을 갖고 있지 않다는 평이 나온다. 다른 업체들이 유사 제품을 쏟아내면서 브랜드 가치가 약해졌기 때문이다. 오프라인 점포에서 재고 상품을 떨이로 파는 ‘창고 대개방’ 행사에도 소비자 반응은 시큰둥한 상황이다. 올해 상반기 기준 전체 매출에서 밀폐용기 매출 비중은 32%로, 텀블러·물병 등 베버리지웨어 매출 비중(31%)과 비슷했다.

락앤락 대표 제품인 밀폐용기.

어피니티가 인수한 직후 주가가 오르며 2017년 12월 락앤락 주가는 2만8000원을 넘기도 했으나, 이후 줄곧 우하향하고 있다. 유상 감자로 인한 거래 정지 직전인 10월 16일 주가는 5950원에 불과했다. 어피니티의 인수가 대비 67% 낮은 수준이다. 최근 1년간 주가는 5000~6000원대에 갇혀 있다.

락앤락 대표이사는 지난해 1월부터 올해 8월까지 다섯 차례 바뀌었다. 특히 락앤락 동남아 사업을 맡다가 올해 7월 대표이사로 선임된 천해우 대표는 두 달이 채 안 돼 사임했다. 어피니티는 그 자리에 이영상 전 투썸플레이스 대표를 앉혔다. 이영상 대표는 보르네오가구 최고경영자, 오비맥주 최고재무책임자(CFO)를 거쳐, 2019년부터 지난달 락앤락 대표 임기를 시작하기 직전까진 투썸플레이스 대표를 맡았다. 이영상 대표는 어피니티가 투자 포트폴리오 회사로 오비맥주를 갖고 있던 당시 CFO로 연을 맺었다. 이영상 대표 영입을 두고 어피니티가 락앤락의 베버리지 용기 사업을 키우려는 움직임이란 해석도 나온다.

락앤락의 잦은 대표 교체는 최근 어피니티 경영진이 대대적으로 물갈이된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올 들어 박영택 회장, 이철주 회장, 이상훈 한국 대표 등 한국인 창업 멤버들이 회사를 떠났다. 주요 포트폴리오 기업 상장과 매각이 어그러지면서 내부가 어수선한 상황으로 알려졌다. 어피니티 측에선 최근 민병철 한국 대표와 김동하 상무, 이상진 상무가 락앤락 기타비상무이사로 합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