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코스피·코스닥지수가 나란히 하락 마감했다. 지난 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이사회 의장이 공식석상에서 매파적 발언을 하고 유럽중앙은행(ECB)도 이르면 7월 중 기준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을 시사하자, 신흥국인 우리 증시에서 국내외 기관 투자자들이 대거 이탈한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외국인은 이날 하루에만 유가증권시장에서 현·선물 1조2300억원어치를 팔며 하락장을 주도했다. 외국계 기관의 이탈은 미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원·달러 환율)의 급등과도 맞물려 발생했다. 이날 장중 한때 원·달러 환율은 1240원을 돌파하며 연중 최고치를 경신했다.

22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직원이 업무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 선·현물 쏟아낸 외국인…삼성전자, 국내외 기관 1개월 간 5조원 순매도

이날 코스피지수는 전날보다 23.5포인트(0.86%) 내린 2704.71로 마감했다. 오전 중 2690.48까지 내리기도 했으나 개인의 매수세에 힘입어 낙폭이 줄었다.

하락장을 이끈 것은 국내·외 기관의 동반 매도세였다.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은 1561억원, 국내 기관은 6986억원어치의 현물을 순매도했다. 외국인은 코스피200 선물도 1조756억원 순매도했는데, 국내 기관이 이를 6059억원어치 사들이고 그 대신 가격 변동으로 인한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현물을 대량 매도한 것으로 해석된다.

국내·외 기관은 최근 한 달 간 우리 증시에서 강한 매도세를 지속하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1개월 간 외국인과 국내 기관은 유가증권시장에서 각각 2조8000억원, 4조원을 순매도했다. 이 기간 개인 투자자들은 총 6조6000억원어치를 사들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날 하루 국내·외 기관은 삼성전자(005930)NAVER(035420), 삼성전기(009150) 등 대형주들을 대량 매도했다. 특히 삼성전자는 하루 만에 2000억원어치 팔았으며, 한 달 간 누적 순매도액은 총 5조원이 넘는다.

국내·외 기관은 반면 금융주를 대거 사들였다. KB금융(105560)신한지주(055550), 하나금융지주(086790) 등이 국내·외 기관 순매수액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미 연준과 ECB가 잇달아 매파적 기조를 강화하자, 금리 인상의 수혜를 볼 수 있는 금융주에 매수세가 몰린 것으로 풀이된다.

4대 금융지주 사옥 전경. /뉴스1

코스피지수뿐 아니라 코스닥지수도 대외 악재의 직격탄을 맞았다. 이날 코스닥지수는 전날보다 6.9포인트(0.74%) 내린 922.78로 마감했다. 장 초반 한때 916.65까지 하락했으나 개인이 낙폭 확대를 방어했다.

코스닥시장에서 외국인과 국내 기관은 각각 881억원, 1702억원을 순매도했다. 이들의 매도세는 게임주에 집중됐다. 외국인은 펄어비스(263750)를 129억원어치, 국내 기관은 카카오게임즈(293490)를 175억원어치 팔았다. 중국 규제당국이 외국산 게임에 대한 규제 강도를 잇달아 높이는 상황에 우리 증시에 대한 전반적인 투자 심리가 악화하자, 차익 실현 매물이 쏟아져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개인 투자자들은 2795억원어치를 사들였다.

◇ 파월 “5월 FOMC서 빅스텝 검토”, ECB 부총재 “7월 금리 인상 가능”

이날 국내 주가지수가 나란히 하락 마감한 이유는 미 연준과 ECB의 매파적 행보에서 찾을 수 있다. 파월 의장은 21일(현지 시각) 국제통화기금(IMF) 총회에서 열린 토론에 참석해 “(기준금리를) 좀 더 빨리 움직이는 게 적절할 것”이라며 “50bp(를 올리는 방안이) 5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 회의에서 검토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시장에서는 연준이 5월 FOMC에서 곧장 빅스텝(기준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 인상하는 것)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해왔다. 지난 6일 공개된 3월 FOMC 회의 의사록에 따르면, 여러 위원들이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지거나 강해진다면 향후 회의에서 한 번 이상의 50bp 인상이 적절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5월 FOMC는 오는 3∼4일 개최된다. 연준은 앞서 지난 3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했으나, 경제 전문가들은 그 정도 인상폭으로는 치솟는 물가를 잠재우기 어렵다고 지적해왔다. 연준은 다음달부터 빅스텝뿐 아니라 대차대조표 축소(양적 긴축)에 돌입할 가능성도 있다. 양적 긴축 규모의 상한선은 월 950억달러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암마인에 위치한 유럽중앙은행(ECB). /AFP연합뉴스

미 연준뿐 아니라 ECB도 매파적 기조를 강화했다. 루이스 데 긴도스 ECB 부총재는 21일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오는 7월 중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을 종료하고 기준금리 인상에 돌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ECB는 지난 2016년 3월 이후 약 6년 간 ‘제로 금리’를 고수해왔다.

한편, 이날 원·달러 환율은 연중 최고점을 찍었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장중 한때 1245.4원까지 오르며 지난달 15일(1242.8원)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다. 파월 의장이 빅스텝을 시사하며 미 달러화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졌기 때문으로 해석된다.